〈레프트21〉은 기업 광고나 정부 후원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레프트21〉은 이명박 정부 때 몇 번이나 탄압을 겪었다. 우리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는 박근혜 시대에 더욱 악랄해질 수 있다. 그러나 〈레프트21〉은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싸울 것을 다짐하며, 언론의 자유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소개한다.


마르크스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언급을 했다. 마르크스는 〈라이니셰 차이퉁〉(라인신문)의 투철한 편집인으로서 겨우 24살인 1842년 10월에 창간해 1843년 봄 정권의 탄압으로 폐간될 때까지 독일에서 가장 급진적이었던 (그리고 점차 성공을 거둔) 신문을 책임졌다. 그 때문에 마르크스는 번번이 프로이센 국가의 신문 검열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마르크스의 지적·정치적 발전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다. 핼 드레이퍼가 지적했듯이, 〈라이니셰 차이퉁〉을 편집하면서 “마르크스는 급진적 민주주의 자유주의자에서 혁명적 민주주의 공산주의자로 변모”했다.

마르크스가 철학자 헤겔에게서 물려받은 관념론적 세계관이 프로이센 국가의 물질적 실재, 그리고 점차 뿌리내리고 있던 자본주의 소유관계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언론의 자유라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가 직면한 역사적 환경에 주목해야 한다.

1840년대 초만 해도 독일은 반세기 이후 지니게 될 경제 강국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영국과 프랑스에 견줘 독일은 경제적·사회적으로 매우 후진적이었다. 당시 독일은 통일된 국가도 아니었다(독일은 1871년에 통일됐다). 독일은 프로이센 절대왕정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가운데 왕국들과 공국들로 이뤄진 느슨한 연방이었다.

역사적 환경

마르크스가 태어난 라인란트는 독일의 전반적 후진성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지역이었다. 라인란트는 독일에서 가장 공업화되고 사회적으로 가장 진보한 지역이었다.

또한 프로이센에 병합되기 전인 1795~1815년에는 혁명적 분위기에 젖어 있던 프랑스의 영토였으며, 이 지역에서 잘나가던 부르주아지는 독일에서 가장 급진적인 부르주아지였다. 프로이센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이 부유하고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옹호하고자 〈라이니셰 차이퉁〉을 창간하고 돈을 댔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검열에 반대해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내건 주장은 지금까지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일갈했다.

검열은 “시민들의 최상의 이익과 정신을 후견하는 양 행세한다. … 우리는 자연의 매혹적인 다양성과 한없는 풍요로움에 경탄한다. 우리는 장미꽃더러 제비꽃 향을 풍기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풍요로워야 할 정신은 왜 오로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당국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해 정치적 자유를 누릴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주장의 모순을 이렇게 지적한다.

“언론의 자유를 반대하려면, 그 사람은 인류는 영원히 성숙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고집해야 한다. … 인류가 미성숙한 것이 언론의 자유를 반대하는 주장의 신비한 근거라면, 확실히 검열은 인류의 성숙을 가로막는 가장 합당한 수단일 것이다.”

검열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교육은 한 사람을 평생 동안 포대기에 싸 두는 것이라고 본다. 걷기를 배우자마자 넘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걷기를 배우려면 넘어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포대기에 싸여 있어야 한다면 도대체 보살피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가 모두 요람 안에 있다면 요람을 흔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가 모두 감옥에 있다면 간수 노릇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적 조건 때문에 사람들이 자유를 누릴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면, 우연히 통치자가 된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경찰은 누가 단속하는가?

그런데 마르크스가 국가의 언론 검열을 강력하게 공격했다고 해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기성 언론의 악행들도 모두 그대로 수용하는 인물이었다고 봐야 하는가? 마르크스의 실제 핵심 주장이 이런 것이 아니었음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마르크스의 목표는 단순히 언론의 자유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언론의 자유를 민주적 자유를 이루기 위한 더 넓은 투쟁의 일부로 봤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언론은 일반적으로 말해, 인간 자유의 실현이다.”

둘째, 마르크스는, 〈라이니셰 차이퉁〉 편집인 시절 사적 소유의 필요성을 여전히 인정할 때조차, 재산 소유자의 자유가 가장 가치 있는 자유라는 관념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가차없이 이렇게 썼다.

“언론의 자유를 영리 추구의 자유보다 하위의 것으로 본다면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그 자유를 죽이는 셈이다. … 확실히 저술가는 생활하고 글을 쓰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돈을 벌려고 생활하고 글을 써서는 결코 안 된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민주적 자유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민 정신의 파수꾼

마르크스는 자유 언론은 진정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조건을 들춰내야 하고 그 목적은 대중이 세계를 더 잘 이해해서 그 세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을 더 많이 갖게 하는 것이라고 봤다.

비록 마르크스 자신은 이런 주장을 철학자 헤겔의 낡은 관념론(마르크스는 당시에는 아직 이것을 벗어 버리지 못했다)의 언어로 표현했지만 말이다.

“자유 언론은 인민 정신의 파수꾼이며 인민의 신뢰 자체다. … 자유 언론은 인민의 거침없는 자기 고백이며 그 구속(救贖)의 위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자유 언론은 인민이 자신을 비춰 보는 정신적 거울이다.”

정말이지 마르크스는 날카롭게 말한다. “언론의 자유 중에서 가장 앞세우는 것이 영리 추구여서는 안 된다.”

즉, 마르크스는 저널리즘의 실천과 영리를 추구하는 언론의 행태를 구분한다.

언론학자 하노 하르트가 예리하게 관찰했듯이, 마르크스가 보기에 “언론의 자유 개념은 표현의 자유 실현을 함의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그 개념은 언론인과 … 언론 소유자 자체를 포함한 민관(民官) 당국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개인적·집단적 권리다.”

하르트의 결론은 마르크스의 견해를 잘 알려 준다.

“이런 점에서 언론의 자유를 다룬 마르크스 저작들의 목적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소유자로부터 언론 노동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즉, 발행인과 주주들의 지배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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