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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등 소수의 인권이 존중되는 법치국가”?

“이주노동자 등 소수의 인권이 존중되는 법치국가”?

이정원

정부의 이주 노동자들 마녀 사냥은 해를 넘겨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지금까지 11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죽었다. 법무부는 추방 정책을 고용허가제 이후 ‘불법체류자 방지 대책’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올해 “청주외국인보호소를 신설, 인력 증원 등 단속 인프라를 강화”할 방침이다.

또, 법무부는 생체정보 인식 기술을 활용한 ‘개인식별 다중검색시스템’을 구축해 아예 입국 단계부터 철저히 봉쇄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일부 외국인들에게는 문호를 더욱 개방하고 있다. ‘미화 50만불 이상 고액 투자 외국인’들에게는 체류허가제도를 개선해 이주 노동자들은 그토록 얻기 힘든 영주 자격 취득 조건을 완화해 주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앞으로 출입국우대카드를 발급해 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줄 계획이다.

법무부는 명백히 계급 차별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고용허가제가 이주 노동자 인권을 개선시켜 줄 획기적 제도라고 우기고 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을 단속과 추방이라는 상시적인 감시 체제로 몰아넣고 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주 노동자 ‘사냥’을 위해 도입된 그물총과 이주 노동자 인권 보호는 양립할 수 없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들이 ‘인권’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라고 대답할 만큼 한국의 이주 노동자 억압은 끔찍한 수준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이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을 싼값에 부리고 싶어하는 기업주들의 이윤을 위한 것이다.

인권

지난 4월 27일 중국 출신 이주 노동자 정육홍 씨는 승강장에 들어오던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올 4월 합법 체류 기간이 끝나 중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근무하던 공장 사장이 임금을 고의로 체불하며 계속 남아 일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임금 체불 문제로 옥신각신하다 체류 기한을 넘기게 되자, 사장은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며 협박을 했다. 노동부에도 상담을 청해 봤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뿐이었다. 극도의 절망감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육홍 씨가 사장에게 청구한 임금은 겨우 80여만 원이었다.

노동부는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 고용허가제”를 홍보하면서 기업주들에게 이런 ‘수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프랑스, 독일 등과 달리 작업장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기업주가 원하는 인력을 직접 선정해 계약을 체결하므로 기업주들에게 매우 이롭다. 게다가 “외국인 근로자가 노조 활동 중 국내법을 위반하여 처벌받는 경우 강제 퇴거, 입국 금지 등의 적용을 받고, 근로 계약을 1년마다 갱신하므로 노사분규 가능성이 낮”다는 보너스도 제공한다. 여기에 체류 기간을 최장 3년으로 제한해 두고, 가족 동반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의 정주화를 막을 수 있어 “장기 체류, 범죄 등을 방지하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득이란다.

정부는 이렇게 역겨운 정책을 시행하려 하면서도 자신들이 ‘인권’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는 양 행세하고 있다.

“대만, 싱가폴에서는 정주화 방지를 위해 임신 또는 내국인과 결혼시 추방” 등의 엄격한 규제 장치를 두고 있는 데 반해, “우리 나라의 경우 유엔 인권 규약 등 국제규범을 고려해 인권보호 차원에서 금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이런 강제 장치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

싱가폴과 대만 정부의 이주 노동자 정책이 더없이 악랄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정부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다.

많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은 자식을 출산하고도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본국의 가족과 친지에게 아이를 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주 노동자 부모들은 1개월 내에 관할지역 출입국관리소에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자식들도 ‘불법체류자’가 돼 과태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보통 1개월 내에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처지다.

아이

자식을 본국으로 보내지 않고 한국에서 키우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이주 노동자 부부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탁아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아이가 자라면 학교에 보내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들에게도 학교를 개방했다고 하지만, 그나마도 청강생 자격만 부여하는 게 대부분이고, 학교측이 입학을 거부하면 달리 방도가 없다.

지난해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 노동자 자녀 수를 3천 명으로 추산하는데, 지난해 7월 현재 이들 중 139명 만이 국내 초·중·고교에 재학하고 있었다.

정부가 말하는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이 법무부 장관 강금실이 얘기하는 “여성·아동·난민·이주 노동자 등 소수의 인권이 존중되”는 법치 국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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