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독자편지
진주의료원 투쟁에서 ‘자발적 구조조정’의 문제

홍준표의 진주의료원 폐쇄에 저항하기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벌어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오늘 4월 16일에는 진주의료원 지부의 조합원 65명이 명예퇴직과 조기퇴직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합원들은 진주의료원의 정상화를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조합원들의 퇴직이 받아들여지면 현재 진주의료원 직원 수의 3분의 1이 줄어들며, 운영비용 중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폭으로 감소한다.

물론 공공의료를 사수하려는 조합원들의 의지는 존중해야 한다. 아마 조합원들은 병원 폐업만은 막아야 한다며 절박하게 호소하는 내원 환자들을 보며 스스로라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환자들을 책임져야 할 이들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자발적인 퇴직을 선택하면, 오히려 홍준표와 우파들이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적자’ 논리에 말려들어 투쟁이 한풀 꺾일 위험이 있다.

홍준표는 지금껏 진주의료원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로 진주의료원의 부채를 들먹였다. 진주의료원이 도민의 세금을 ‘낭비’하면서 적자를 보전하고 있다며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진료비 때문에 민간 병원에 가기 어려운 지역 주민들에게 공공의료기관이 적은 비용을 받고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래서 저렴하고 보편적인 의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착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홍준표는 각계의 엄청난 비판을 받자 적자를 운운하던 주장을 슬그머니 철회했다.

보건복지부와 새누리당도 홍준표의 일방적인 진주의료원 폐쇄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경남도청과 노동조합이 서로 양보하자고 하면서 노동자들에게도 적자의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희생을 대놓고 바라는 자들에게 노동자들의 양보는 곧 노동자들의 후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다고 해도 노조 측은 제대로 된 요구를 낼 수 없고,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이나 안을 수용하게 된다.

또한 환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노동자들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익히 알려진 대로 지금까지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은 수년 동안이나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다. 폐업 선고 전 8개월 동안은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경남도청에게 몇 번이나 ‘양보’한 상황인데도, 홍준표와 경남도청은 독단적으로 진주의료원 폐쇄를 강행했다. 지금 와서 노동자들이 또 한 번 양보한다 치더라도, 홍준표와 경남도의회를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생각을 쉽게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책임 전가

또한 조합원들의 이러한 행동을 “양보와 희생의 결단”이라며 지지하는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지금 조합원들을 포함한 조직 노동자들과 진보세력이 진주의료원 폐쇄를 막아 내려면 무엇보다 굳건한 대오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투쟁의 중심에 자리 잡은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으로 굳게 뭉쳐 있어야 연대하는 세력들이 힘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진주의료원노조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대항해 강력한 단결을 보여 주며 싸워 왔다. 그래서 진보세력은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에게 광범위한 연대를 보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서울에서는 진주의료원 폐쇄를 막기 위한 촛불문화제가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노동자들이 퇴직 등으로 투쟁의 현장에서 이탈하면 운동의 동력이 약해질 위험이 있다. 특히 적자를 해소하려고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노동자들의 선택이, 오히려 우파들의 수익성 논리와 부합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또한 설사 홍준표가 감동이라도 해서 진주의료원의 정상화를 수용해도, 노동자들의 수가 줄어든 만큼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합의는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얻어 낸 반쪽짜리 승리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퇴직을 지지하기보다는, 우파들의 논리에 말려들지 말고 좀 더 힘을 내서 투쟁의 전열을 유지하자고 설득했어야 했다.

이미 진주의료원 문제는 우파에 맞선 진보진영의 공공성 사수로 확대됐다. 진주의료원 투쟁이 약해지거나 제대로 된 해결을 보지 못하면, 공공의료는 물론이고 복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힘 있게 투쟁한 진주의료원노조의 구실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지금보다도 더욱 ‘강성하게’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