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미국과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아지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전쟁 방지, 군비축소와 이를 통한 복지 확대 등의 염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먼저, 정전협정이 무력화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협정의 문구 자체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기존의 정전협정 문구 자체는 상당한 긴장완화 조처라고 볼 수 있다.

적대적 무력 행사 금지, 신무기 도입 금지, 실향민의 자유로운 귀향 보장을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한반도 통일과 외국군 철수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들은 현실에서 아무런 구속력을 지니지 못했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 이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들이 당사국 정부 사이에서 몇 차례 존재했고, 2007년 2·13합의로 본격화되는 듯했지만, 번번히 휴지조각이 된 사례들이 있다. 이런 데는 당사국 간의 이해관계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 반영돼 있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동맹이다. 냉전 시기 내내 미국과 남한의 지배자들은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을 순전한 ‘위장 평화 공세’ 쯤으로 치부하며 거부해 왔다.

물론 냉전 이후 미국과 한국의 지배자들도 평화협정 체결 운운하기는 한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보수 우익들은 평화협정을 북한의 일방적 무장해제 수단쯤으로 여기고 있다. ‘선 핵포기, 후 협상’ 논리가 전형적이다.

그러나 설령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한다고 해서 북한이 바라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는 이미 한 번 겪어 본 일이다. 1994년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경수로를 제공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한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얼마 안 가서 이 합의를 폐기해 버렸다. 이런 점에서 특히 박근혜 같은 우익 정부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것은 완전히 ‘나무에서 물고기 찾기’다.

평화협정 체제에서 핵심 쟁점이 될 주한미군 문제도 그렇다. 미국과 한국 지배자들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변경할망정 철수할 생각이 없다.

물론, 북한 지배자들은 이에 타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역할 변경된 주한미군이 자신을 겨냥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설령 중국을 제외하고 북미 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동북아시아에서 긴장과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한국전쟁과 정전협정은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패권경쟁이 한반도 ‘정전체제’를 규정해 왔다. 그리고 남한의 지배자들은 미국의 패권에 편승해 성장해 왔다.

오늘날 북핵을 빌미로 한 미국의 대북 압박 역시 제국주의 패권 경쟁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체제의 수립은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패권 경쟁 자체를 폐지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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