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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 최후진술:
“제 신념과 의지는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습니다”

8월 23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회운동 활동가 김무석 씨의 첫 재판이 열렸다. 김무석 씨가 자신의 굳은 신념을 밝힌 최후진술문을 본지에 보내 왔다.

저를 비롯해 지금까지 1만 7천여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법정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고 사회와 격리돼 감옥에서 수년씩 보내야만 했습니다.

검찰의 공소 사실에는 제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묻겠습니다. 정당하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더 우선한다고 판결해 왔는데, 이 판단의 정당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심지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 중 다수가 징병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데, 어떤 정당한 근거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까.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 사회와 격리돼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가는 체제 유지를 위해 억압 기구를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제가 거부하고자 하는 군대와, 제가 곧 갇히게 될 감옥이 바로 그 대표적인 억압 기구들입니다.

군대가 얼마나 끔찍한 짓들을 저질러 왔습니까.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고, 베트남의 민중들을 짓밟았으며,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도왔고, 평택 대추리 주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광주 학살과 베트남 파병은 군사 정권 시절에 일어났고, 이라크 파병과 대추리 군 투입은 노무현 정권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떤 시절이건 군대는 평화를 짓밟는 도구로 사용됐습니다.

군대가 태생적으로 권력자들의 억압 도구이기 때문에, 군내부에 민주주의가 없는 것입니다. 군대에 끌려간 젊은이들은 생각을 멈출 것을 강요당하고, 오직 명령에 따를 것만을 요구받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평범한 민중의 자녀들이 다른 민중에게 총칼을 겨누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는 여전히 가혹행위가 존재하고, 구타가 존재합니다. 5년간 실제로 자살한 군인의 숫자는 3백68명입니다.

군대가 권력자들의 도구라는 것에는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소득과 학력이 높은 사람의 자녀일수록 군대에 가는 비율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더 건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왜 이 나라의 군대는 건강할수록 면제 받을 확률이 높은 것입니까? 진정 ‘국방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신성한 것’이라면 권력자들부터 최전방에 배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양심을 팔아먹는 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는데, 양심을 지키려는 저는 감옥에 가야 합니까.

이런 끔찍한 억압 기구에 동원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서 존중받고 인정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대체복무제는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로 시급히 도입돼야 하며, 징병제는 모병제로 전환돼야 합니다.

‘북한의 위협’은 거짓된 명분일 뿐입니다. 북한의 GDP는 남한의 군사비 지출보다 규모가 작습니다.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한 것입니다. 북한 민중이 굶주리고 있는데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 정권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복지 공약은 후퇴시키면서 전투기를 구입하는 데 수조 원을 쓰는 남한 정부도 똑같은 이유로 비판받아야 합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 전투기를 구입하는 데 수조 원을 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감옥에 수감되고야 말 것이지만, 제 신념과 의지는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양심의 울림에 따른 제 실천입니다.

저 멀리 이집트에선 혁명가들이 군부의 반혁명 시도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혁명의 전진을 위해 군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그들의 무사와 승리를 기원하며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