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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부의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해야 하는가

일각에서는 해고자 9명 때문에 법외노조를 감수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니 규약을 개정해 일단 소나기를 피해 보자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먼저 있고 노동조합이 있는 것이지 노동조합이 먼저 있고 노동자가 있는 게 아니다.

한 예로, 미국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LWU) 활동가 출신인 레그 테리오가 쓴 《노동계급은 없다》(실천문학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날, ILWU의 강성 활동가가 임기를 마치고 현장에 복귀하려 하자, 사측이 이를 막았다. ILWU는 이 단 한 명의 노동자를 위해 파업에 들어갔다. 사측은 결국 지침을 철회했다.

더욱이 이 문제는 단지 해고자 9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규약시정명령을 수용해 해고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다면, 다른 조합원들도 징계·해고도 무릅쓰고 조합의 결정에 따라 투쟁에 나서길 주저하게 될 것이다.

올해 공무원노조의 쓰디쓴 사례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공무원노조는 지난 7월에 해고자 조합원 인정 규약을 개악해 설립 신고를 냈지만, 정부는 설립 신고서를 반려했고 이 과정에서 공무원노조가 크게 흔들린 틈을 타 내년 공무원 실질임금 삭감 안을 발표했다.

어떤 노조가 필요한가

물론, 법외노조가 되면 타격이 클 것이다. 단체협약을 맺지 못할 것이고, 노조 사무실 임대료 지원이 끊길 것이며 무엇보다 조합원 수가 감소할 수 있다.(그렇다고 법외노조가 곧 불법이라는 뜻은 아니므로 1989년 때처럼 노조 가입이나 활동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가투쟁 등 전력 투쟁을 통해 정부의 법외노조화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설사 법외노조로 내몰릴지라도 규약 개정을 거부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름지기 노동조합은 단결력과 투쟁력이 강력할 때 노동자들의 조건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격에 굴복해서 법내노조 지위만 지킨다면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사기저하와 위축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 되면 정부가 과연 그런 노동조합을 겁내겠는가. 그런 상태라면 정부가 전교조와 단체협상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체결한 단체협약도 지키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전교조가 굳건하게 원칙을 지킨다면 비록 일시적으로는 조합원 감소 등 어려움을 겪겠지만 운동이 전진하는 상황에서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 전교조 결성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일시적으로 조직이 와해되고, 투쟁력이 약화되는 등 쓰라린 상처를 입”었지만, “전교조는 사회적으로 교협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는 대중조직의 실체로서 자리 잡았”다.(《참교육 한길로》)

따라서 정부가 이미 시한을 정하고 최후통첩을 한 만큼, 정부의 규약시정명령과 해고자 조합원 자격 박탈 요구를 분명하게 거부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원칙과 투쟁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교조 집행부가 9월 28일 대의원대회에서는 총력 투쟁을 결의하고 최종 결정은 10월 19일 대의원대회를 재차 열어 결정하자는 안을 낸 것은 매우 아쉽다.

아마도 지도부는 노동조합의 분열을 우려한 나머지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미 노동조합 내에서는 규약 개정과 찬성으로 입장이 갈려 있다. 이런 상태에서 ‘무조건 단결하자’는 생각은 오히려 규약 개정론에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지금은 단호하게 거부 입장 쪽으로 조합원들을 최대한 결집시켜 조합 내 분열과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강력한 투쟁과 광범한 연대를 건설하며 박근혜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자.

9월 28일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전교조의 투쟁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관련 기사는 〈레프트21〉 웹사이트에 게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