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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공습 계획 연기:
미국의 전술 변화와 끝나지 않은 위험

미국의 시리아 공격이 일단 미뤄졌다. 9월 14일 미국과 러시아가 한 합의 때문이다.

이 합의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는 9월 21일까지 화학무기 보유 현황을 완전히 공개하고, 11월까지 국제 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하고, 2014년 상반기까지 화학무기 폐기를 완료해야 한다.

9월 20일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보유 현황을 보고하며 이 합의가 실현의 첫걸음은 뗀 듯 보인다.

이처럼 미국이 애초의 군사적 개입 계획을 접고 ‘정치적 해법’으로 돌아선 것은 우선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

기관총과 장갑차로 무장하고 ‘구호 활동’?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주둔 유엔군 ⓒ사진 출처 UN PHOTO

미국은 시리아 공격을 위한 국제적 동맹 구축에 실패했고, 오바마는 민주당 의원들조차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사실, 대통령 권한으로 시행할 수 있었던 군사적 개입을 두고 의회에 승인을 요청한 상황 자체가 오바마의 궁색함을 드러냈다.

오바마는 의회 승인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리하기보다는 명분 쌓기용 시간을 벌려고 전술적 변화를 꾀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패배로 말미암은 위상 약화, 경제 위기 속에서 국방 예산을 줄여야 하는 처지, 2000년대 초 강력한 반전 운동이 남긴 광범한 반전 정서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번 합의 자체가 미국에 새로운 난제를 던져 줄 수도 있다.

이번 합의를 배경으로 이란 혁명 이후 30여 년 만에 최초로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이란과 미국 사이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동맹국들의 불만을 살 수 있다.

당장 이스라엘이 ‘속임수에 속지’ 말라며 반발했다. 이란과 경쟁 관계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탐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핵심 동맹국 이스라엘의 화학무기 보유 의혹이 떠올랐다.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CIA가 1983년 작성한 기밀문서를 토대로 이스라엘의 화학무기 비축 가능성을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993년 화학무기금지협약에 서명했으나 20년이 지나도록 비준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과 러시아의 이번 합의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우선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적다. 시리아는 화학무기를 1천 톤가량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보관 시설은 40곳이 넘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많은 화학무기를 1년 안에 모두 폐기하는 것은, 더구나 내전 상황에서 그리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이 기술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연결된다. 화학무기 폐기가 안 됐다는 이유로 서방이 무력 개입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미국·영국·프랑스는 시리아 정부의 실천을 강제할 보장책이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한다.

오바마는 9월 24일 유엔 총회 기조 연설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유엔은 국가 간 전쟁을 방지하고자 설계됐지만 국가 내 살육을 방지해야 한다는 과제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즉, 오바마는 군사개입 카드를 아직 버리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이번 합의는 언제든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