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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의 기원

노무현은 ‘국익’(‘국민’ 또는 ‘민족’의 이익)의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남한과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둘러싸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고 있다. 북한은 ‘강성대국’을 표방하며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일본도 북핵, 개헌과 유사법제, 자위대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국가주의(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4국이 모두 민족주의 경쟁에 돌입해 있는 듯하다.

러시아의 민족주의는 소수민족, 특히 체첸 억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하지만 미국도 국가주의(특히 아랍인을 차별하는 민족주의)를 이용하며 이라크를 강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안에도 민족주의 경향이 상대적 다수임은 흥미롭다. 김창현 민주노동당 신임 사무총장은 얼마 전 당 지도부 선거에서 후보들 간에 민족이냐 계급이냐 식으로 대립됐던 사실을 개탄하며 둘을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에서 곧 보게 되겠지만, 적잖이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인 ― 따라서 계급으로 분명히 나뉜 ― 남한에서 민족과 계급을 결합시키기는 쉽지 않다.

민족주의의 기원은 언제부터인가? 널리 장려되고 있는 통념인즉, 민족주의는 자연적인(당연한) 것이라 한다. 우리가 나라(또는 민족)를 사랑하고, 국제 스포츠 경기 대회에서 우리 나라 팀을 응원하고, 국제 경쟁에 직면해 (1998년 금붙이 모으기처럼) 국민경제(민족경제)와 국내(민족) 기업을 지원하고, 전쟁에서 자기 민족(국민) 국가를 지지하는 것은 자연적인(당연한) 것이라 한다.

실상은, 민족주의는 자연적이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오히려 민족주의는 비교적 근래에 생겨난 산물이다.

사실, 민족주의 정서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기지(基地)인 민족(국민) 국가 자체가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근래에 발생한 현상이다.

1백50만 년 동안 인류는 국가 없이 살았다. 원시 사회에는 어떤 형태의 국가도 없었다. 농업이 정착하고 사회가 계급으로 분화한 결과 국가가 생겨났다. 그러자 인류의 생활 근거지는 도시(가령 수메르의 우르)가 됐다. 결코 민족(국민)이 아니었다.

그런 도시국가들은 팽창과 정복을 통해 제국(가령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이 됐다. 제국은 방대한 영토를 통합해, 그 내부에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족이 포함됐다.

서기 200년경의 세계 지도를 보면, 요즘 말로 유라시아 대륙은 후한(後漢)·쿠샨·사카·파르티아·로마, 이렇게 5대 제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국민)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고구려가 ‘중국’에 속했다느니 ‘한국’에 속했다느니 하는 논쟁은 죄다 부질없거나 심지어 반동적인 것이다.

고구려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 유럽의 왕국과 제국도 오늘날의 민족(국민)과 유사점이 별로 없었다. 그들이 벌인 수많은 전쟁도 왕 개인의 재정적 뒷받침을 받은 소규모 용병 부대가 주로 벌인 것이었다.

당시의 신민(臣民)들도 민족적(국민적) 충성심 또는 일체감 따위를 느끼지 않았다.

근현대 민족(국민) 국가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신흥 자본가 계급들이 화폐와 사법제도가 단일하고 언어와 문화가 대동소이한 통합 자유무역지대로서 영속적 국내 시장을 확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지가 봉건 귀족에 맞서 장인(匠人)·노동자·농민 등 하위 계급들을 동원할 필요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해당 영토 내의 계급들이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고 따라서 일치단결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므로 이 과업에 안성맞춤이다.

민족주의와 함께 민족의 역사적 전통(가령 독립신문·대한매일신보 등에 실린 애국 시가詩歌들)과 신화(아서왕의 전설, 단군신화 등)가 발명되거나 각색됐다. 역사적 연속성이라는 착각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것들을 매우 먼 과거의 일로 비쳐지게 만들곤 했다.

근현대사를 좌지우지하다시피 해온 주요 국민(민족)들은 모두 이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예컨대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등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18~19세기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나, 또한 현대 민족주의는 다른 두 가지 주요 요인들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바로 제국주의와 국제 노동계급 운동이다.

신생 자본가 계급은 멀리 떨어진 땅과 인민들을 정복하고 착취하기 시작했다. 먼저,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예제와 약탈을 통한 시초 자본축적이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아편전쟁이나 인도에서처럼 유럽산 제품을 위한 시장 개방이 강요됐다. 그리고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에 경제적·군사적으로 경쟁하는 엄밀한 의미의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세계의 거주 가능 지역이 거의 다 극소수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 분할됐다. 영국이 선두주자였다.

이런 제국주의적 억압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렀다. 식민지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하자 이 저항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형태를 취했다. 민족 해방 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것은 20세기의 주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그에 따라 제2차세계대전 이후로 독립국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또한 세계 노동계급도 등장했다. 그러자 민족주의는 자본가들이 계급투쟁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결정적 무기 구실을 하게 됐다.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국가주의(민족주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포함한 노동계 지도자들을 제국주의적 시류에 편승케 하는 데 이용돼 왔다.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는 계급 분단을 은폐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를 통해 중간계급 지도자들(중국 공산당이나 쿠바 7·26운동)이 반제국주의 운동을 지도할 수 있었다.

노무현이 이라크에 파병하고 “동북아 허브”를 운운하는 등 동북아시아 지도자들이 민족주의를 농단하는 것은 민족주의(국가주의)의 바로 이런 점들을 이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남북관계의 해빙을 이용해 대북 화해협력을 내세워, 좌파 민족주의자들을 달래고 투쟁적 노동자들과 급진 좌파를 고립시켰다.

계급

민족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태도는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바로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도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얘기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이다. 언제나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진정한 적 ― 민족 자본가든 외국 자본가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 ― 의 이해관계에 묶어 두는 수단이다. 그래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민족주의를 반대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민족 자결권(분리권도 포함)과 국가 간의 자발적 통합(한반도에서의 평화적 민족통일을 포함한다)을 지지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한민족이든 이라크인들이든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족이든 민족 자결권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민족주의의 뿌리를 근절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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