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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반대 운동 내 노무현 퇴진 논쟁에 붙여

파병 반대 운동 내 노무현 퇴진 논쟁에 붙여

김하영

김선일 씨 피살을 계기로 떠올랐던 파병 반대 운동의 새 국면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피랍 사실이 알려진 6월 21일부터 시작된 집회는 26일 1만 5천 명으로 늘었다가 30일 장례식이 끝나면서 수천 명 규모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파병 반대비상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지도부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운동이 소강을 맞은 게 주로 지도부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장례가 끝나 상황이 일단락된 인상을 준다는 점과, 반전 여론은 높은데 반전 행동은 광범하게 일어나지 않는 그 동안 계속돼 온 객관적인 문제가 있다.
반전 여론에 비해 반전 행동 참가가 크게 떨어지는 데는 여러 원인들이 있다. 한국에서 대중적 반전 운동이 초유의 일이라는 점, 노무현에 대한 대중의 혼란스런 정서 때문에 그에 대한 일반적 불만이 반전 행동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일부 이라크 저항세력의 테러 행위에 대한 반감으로 양비론을 유력해 지고 있다는 점,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파병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과 국익론 등이 사람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 등등.
그러나 국민행동 지도부가 김선일 씨 피살에 대한 노무현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읍소형 추모 집회로 일관함으로써 대중의 분노와 투지를 억눌렀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국민행동 집회의 한 사회자는 김선일 씨가 피살된 뒤에도(6월 26일 집회) “대통령님, 국민들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고, 빗속에서 진행된 7월 3일 집회는 3분의 2 가량이 추모 공연이었다.

탐욕스런

매우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노무현에 대한 퇴진 위협까지 쏟아져나온 첫 날(6월 21일) 이후 집회가 급격히 읍소형 추모제로 변한 데에 국민행동 소속 주요 시민단체들의 압력이 작용했으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시민단체들은 열린우리당 지지 세력의 압력을 흡수했던 듯하다. 친노무현 사이트 ‘서프라이즈’에는 “그 동안의 부적절한 구호였던 ‘살인정권 타도’ 등의 목소리는 시민단체에서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글이 실렸다.
주요 시민단체들은 김선일 씨 피살이 파병 강행과 직결되면 노무현 진퇴 문제와 연동될 것이라는 점에 강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미국 책임론은 노무현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과연 지금 이 사안을 놓고 주된 타겟을 노무현 대통령에 두어야 하는가. … 정치적으로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책임이냐 노무현의 책임이냐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일방주의적으로 이라크를 침략한 것은 미국이지만, 그 침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세계 3위 규모의 파병을 결정한 것은 바로 노무현이다. 더구나 목숨을 살려 달라는 김선일 씨의 애원을 뿌리치고 파병 강행 방침을 발표한 것은 살인방조나 마찬가지다.
노무현도 파병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파병해야 하는 나약한 신세라는 것이다. “힘이 약한 대한민국의 현실과 노 대통령의 현실에 대해서도 좀 이해하고 마음 아파하자”는 주장이 국민행동 게시판에 오르곤 한다.
하지만 노무현이 파병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단지 미국의 압력만은 아니다. 파병은 이라크인들의 시체더미 속에서 돈을 긁어모으고 이라크 석유의 일부라도 차지하기를 열망하며 세계에 한국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싶은 탐욕스런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의 능동적인 결정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은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향후 10년간 1천5백억 달러가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라크 복구 사업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3월 초 현대건설이 3천억 원 가량의 건설 계약을 따낸 것을 비롯해 이미 1백 개 기업이 이라크 재건 사업에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대우, 현대건설 등이 엑손모빌·더치셸 등 미국 내 석유 메이저와 벡텔·플로어 다니엘 등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들과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라크 분소를 확대하고, LG는 지사 설립을 재개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도 발전소 복구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선전의 자유

주요 시민단체들과 좌파민족주의 계열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집회에서 노무현 퇴진 주장이 나온 것이 집회 규모가 축소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노사모와 열우당 지지자들을 아우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도 “파병에 반대하는 여론 55퍼센트 가운데 … 열린우리당 지지자가 다수고 나머지는 작다. … 작은 동력으로 파병을 철회시킬 수 없다”며 같은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김선일 씨 피살 이후 급락한 노무현과 열우당 지지율을 보면 이 말은 더는 사실이 아니다. 집회의 주요 참가층인 20대와 30대에서 열우당과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막상막하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열우당 지지율은 30.9퍼센트,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이보다 불과 2.5퍼센트 낮은 28.3퍼센트였다. 또, 30대의 열우당 지지율은 31.6퍼센트,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이보다 2.4퍼센트 낮은 29.9퍼센트였다(한국사회연구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TNS에 의뢰해 6월 2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서프라이즈 대표 서영석 씨는 파병 반대 집회가 잘 안 되는 게 노무현 퇴진을 외치는 “민노세균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며 “민노세균들은 참여정부 지지자들을 화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지지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것은 참여정부 자신이었고(서영석 씨의 청탁도 여기에 한몫했다), 그 결과 열우당 지지층 이탈자 가운데 45.5퍼센트가 민주노동당으로 옮아갔다.
파병 반대 운동이 “대중적으로” ― 대중추수적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 나아가야 한다며 국민행동 지도부가 노무현 비판을 삼가는 동안, 대중은 지도부보다 왼쪽으로 급속히 이동했던 것이다.
물론 국민행동이 노무현 퇴진 요구를 내거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 국민행동은 파병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공동전선이므로 노무현 퇴진 같은 것을 걸자고 하면 분열하거나 마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행동은 파병에 반대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 노사모나 열우당 지지자들도 ― 함께할 수 있는 게 좋다.
그 대신, 국민행동에 속한 단체들은 나머지 소속 단체들의 회원들을 향해 ‘노무현 퇴진’ 주장을 포함해 자기 입장을 선전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동행동에 참가한 대중이 어떤 단체와 지도자가 올바른 주장과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지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파병 반대 집회에서 노무현 퇴진 주장을 가로막는 것은 운동을 대중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운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민주주의야말로 운동의 제1원리이다. 민주주의가 돼야 중앙집권도 제대로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