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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주년 3.8 여성의 날 맞이 ‘시간제 일자리 문제점과 현실’ 토론회 및 증언대회:
“시간제 일자리는 강요된 선택일 뿐입니다”

3월 5일, 106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106주년 3.8 여성노동자대회 공동기획단’이 주최한 ‘시간제 일자리 문제점과 현실’ 토론회 및 증언대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퍼센트'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날 여성노동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은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들을 위한 것이기는커녕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값싸게 부려서 더한층 쥐어짜는 방식일 뿐임을 보여 줬다.

발제자로 나선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시간제 일자리의 실태를 폭로했다.

2013년 3월 현재 시간제로 일하는 노동자는 1백75만 명으로 임금노동자의 9.9퍼센트 규모다. 2001년(87만 명)에 비교하면 10여 년 만에 두 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그런데 시간제 노동자 세 명 중 한 명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고, 근속기간이 1년 미만인 노동자가 전체의 66.3퍼센트다. 이런 점들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가 불안정하고 저임금인 저질 일자리 양산일 뿐임을 보여 준다.

한편, 시간제 노동자 네 명 중 세 명은 여성인데, 특히 30대에서 40대로 갈수록 시간제 일자리가 급속히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우근 정책위원은 “이것은 경력 단절 여성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경우 갖게 되는 일자리의 대부분이 시간제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남우근 정책위원은 시간제 노동 보호를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현실화, 단시간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 적용 확대, 비례보호 원칙의 보완, 시간선택권 보장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심선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보육협의회 의장은 정부가 ‘일과 가정의 양립’ 운운하며 시간제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지만, 이것은 “육아와 가정 돌봄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시키고, 고착화하는 것”이라면서 여성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 보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일과 생활을 제대로 병행할 수 있도록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선혜 의장은 “대자본이 노동착취를 통해 24개월째 경상수지 ‘흑자 행진’이라며 떠들썩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하고 말했다.

0.5 계약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30분 단위 근로 계약 문제는 이미 잘 알려진 문제다. 증언에 나선 김진숙 서비스연맹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은 30분 단위, 20분 단위 계약제는 홈플러스의 노동착취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에 의해 일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무를 할 수 없지만, 7.5 계약제로 인해 홈플러스에서는 일주일에 최대 14시간 30분 연장근무를 시킬 수 있고,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의 2시간 30분은 법정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홈플러스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7.5시간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노동자들의 평균 업무시간은 준비시간과 마무리시간을 합치면 8시간을 초과합니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4.4시간부터 7.5시간까지 다양한 계약시간이 존재합니다. 회사측은 매장에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인력을 배치하기 위한 방도라고 하지만, 이 때문에 일하는 노동자는 단 10분도 쉬지 못하고 미친듯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근무 스케줄이 2~3일 전 혹은 하루 전에 나와서 부족한 임금을 벌충하기 위한 투잡을 뛸 수도 없고 다른 약속을 잡는 등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동료들 간에 존재하는 차별적 계약시간은 월 10만원 남짓의 월급 차로 이어지고, 이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14년 내내 지속돼 왔습니다.”

지난해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단체협상을 통해 30분 단위 계약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김진숙 본부장은 "여전히 8시간 미만 단시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마트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40~50대 여성노동자들이며, 이들 중 대다수는 생계형 노동자들입니다. 시간제 일자리는 그야말로 일한 시간만큼 월급이 나오는 것인데, 어떤 생계형 노동자가 짧게 일하고 적은 월급을 받길 원하겠습니까?"

김진숙 본부장은 "단시간 일자리 확산은 결국 여성노동자들에게 저임금 일자리 확대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양질의 단시간 일자리는 홈플러스와 같은 기형적 계약제를 더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간제 공무원 도입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퍼센트 달성을 위해 공공부문부터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려고 한다. 윤선문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실장은 시간제 공무원 제도에 분명히 반대했다.

[시간제 공무원 제도는] 공직사회가 전일제 근무자와 시간제 근무자,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 남성과 여성 노동자로 이중 구조화되는 것이며, 곧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가중시킬 것입니다. … 한시 계약직 공무원의 처우를 보면, 인건비나 고용불안 문제에서 기존 정규직 공무원과 근무조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정책적·제도적 보완을 하더라도 전일제 공무원과의 차별은 해소할 수 없습니다. 해소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전일제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일제 공무원으로의 전환은 원천 차단돼 있습니다. 정규직 공무원이던 기능직 공무원의 차별 문제도 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차별 직종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윤선문 정책실장은 “시간선택제공무원 강제할당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단시간 계약

또 다른 증언자인 경북 칠곡에 있는 한 초등 돌봄교실 전담교사는 무기계약 전환을 회피하려고 초단시간 계약을 강요하는 경북교육청과 학교장을 폭로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와 국정감사에서 무기계약 전환 회피를 위한 초단시간 계약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음에도 경북교육청은 계속해서 "시간 쪼개기, 요일 쪼개기, 이중 계약 등 편법적 계약 형태로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장의 태도는 더 황당했다. 발표자는 돌봄전담사 일을 시작하고 24개월이 되던 날 학교장에게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장은 "실업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와 3~12월만 계약해서 1, 2월은 수입이 없기 때문에 그때 실업급여를 받았던 것이 무기계약 전환을 막는 이유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학교 측은 초단시간 계약을 하든가 아니면 나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학교장은 "돌봄교사 일을 무료봉사로 생각해야지 직장으로 생각하지 말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무기계약직 전환 요구를 거부당하고 해고로 내몰린 돌봄전담사들이 참다 못해 지난 2월 경북교육청 점거 농성에 들어갔고, 2박3일간의 농성 끝에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경북교육청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경북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구두'로만 이를 전달했고, 학교장은 교육청의 공문이 없으니 무기계약직 전환은 안 된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발표자는 "저도 원래는 오늘 일을 해야 하는데, [학교측이 경북교육청으로부터] 공문이 안 왔다면서 돌아가라고 해서 여기에 오게 됐습니다" 하며 울먹였다. 그 자리에 있던 참가자들 모두 함께 분노했다.

학교나 문화 센터 등에서 강의를 하는 예술강사들의 처지도 비슷했다. 예술 강사들은 한 시간을 수업하려면 "수업 전에 수업계획을 세우고, 수업자료를 수집하고, 수업을 하고 나서는 수업일지를 작성해 그것을 통합운영시스템을 통해 보고"해야 하는데도, 수업 준비와 마무리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한 시간치 수업 일당만 받고 있다.

예술강사 이민영 씨는 "진흥원이 건강보험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예술강사들에게 주당 15시간 미만만 수업하라는 부당한 근로지침"을 강요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근로기준법이 주당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단시간 근로자로 규정하고, 건강보험직장가입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1, 2월에는 수업이 없어서 사실상 실업 상태다. 얼마전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에서 사망한 직원도 이런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참사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당해도 어느 곳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실고용주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사업의 큰 틀은 문체부에서 최종 결정하고, 예술강사지원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광역센터와 지역운영단체에 지침을 내리는 곳은 진흥원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문체부나 진흥원이 계약주체가 돼야 합니다."

이민영 씨는 "12개월 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이 안정되고 4대보험을 적용받는 것"이 자신들의 요구라고 했다. 이런 당연하고 소박한 요구는 현재 이들의 처지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 준다.

강요된 선택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여러 증언들은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님을 보여 줬다. 시간제 일자리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일할 수만 있다면 정규직의 안정적 일자리를 원했다.

또한 이날 증언들은 노동운동이 왜 시간제 일자리 보완을 넘어 도입 자체를 유보 없이 반대해야 하는지도 보여 줬다. 비례보호 원칙의 보완을 통해 임금 외의 교통비, 식사비, 가족수당, 학자금 지원 등의 복리후생적 차원에서 지급되는 비용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해도 시간에 비례해 임금 수준이 낮은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렵다. 승진도 곱절가량 뒤쳐질 것이다. 시간 선택의 칼자루도 기업주의 손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원한다 해서 전일제 전환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플로어 토론에서는 시간제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것과 더불어 시간제 일자리가 아직 도입되지 않은 부문의 조직 노동자들이 시간제 일자리 도입에 반대해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