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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건 진상 규명하라

KAL858기 사건 진상 규명하라

정진희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KAL858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 논의가 일고 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 우파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우파들은 재조사를 ‘김정일 답방용’으로 호도하며 악착같이 가로막을 태세다. KAL858기 사건의 정치적 수혜자들이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에, 재조사 논의가 본격화하면 앞으로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공격이 쏟아질 것이다.
1987년 대선 직전에 발생한 KAL858기 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테러 폭파 사건으로 알려져 노태우가 당선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우파들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떠받쳐 온 주요 근거가 돼 왔다. 이 사건은 또한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 국가로 지정한 계기가 됐다.
당시 수사를 전담한 안기부와 그 후신인 국정원은 지난 17년 동안 진상 규명 요구를 묵살하고 활동을 방해해 왔다. 국정원은 ‘KAL858기 가족회(이하 가족회)’와 ‘KAL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가 요청한 기자 대동 면담과 증거물 촬영, 공개 토론을 거부해 왔다. 또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창해 출판사가 낸 KAL858기 사건의 의혹을 다룬 두 책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서현우 씨가 지은 소설 《배후》와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 노다 미네오가 쓴 추적 보고서 《나는 검증한다 김현희의 파괴공작(이하 파괴공작)》은 각각 2억 5천만 원과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국정원은 《파괴공작》에 대해서는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도 내고 저자인 노다 미네오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국가 기구의 방해 때문에 사건 기록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KAL858기 사건은 안기부의 행적과 수사 결과에서 수많은 의문점이 발견되면서 사건 초기부터 조작이라는 강한 의혹이 제기돼 왔다. 최근 출판된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창해, 2004)는 그 동안의 진상 규명 노력을 집대성해 안기부 수사 보고서의 거짓을 체계적으로 파헤쳤다.
저자인 다큐멘터리 감독 신동진 씨(가족회와 대책위의 사무국장)는 1987년 11월 29일 사건 발생 당시부터 2004년까지 모든 자료들을 망라했다.
당시 안기부는 이 사건을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라고 발표했지만,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항공기 사고 원인 규명의 핵심 단서인 블랙박스는 물론 기체의 잔해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방해

안기부의 수사 발표는 으레 그렇듯 오로지 ‘폭파범’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기체의 잔해는 KAL기가 실종된 지 2년이 넘은 1990년 3월에야 타이 앞바다에서 다량 발견됐다. 우연찮게도 최종심을 20여 일 앞두고 발견된 이 잔해는 대법원이 김현희에게 사형 확정 판결을 내리는 데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하지만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 잔해가 KAL858기 동체의 일부인지 분명히 밝혀 내지 못했다(《한겨레21》 2003년 11월 26일 제486호). 안기부는 이것을 사진으로만 공개하고 가족회에도 보여 주지 않은 채 폐기 처분했다.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던 김현희의 진술도 거짓말이라는 게 속속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김현희가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라고 지목한 사진 속 아이 ― 1972년 평양 남북회담 당시 남측대표단 장기영에게 환영 꽃다발을 주는 북한 소녀 ― 는 수사 발표 직후 다른 인물임이 확인됐다. 북한에서 약 7년 8개월 동안 받은 특수공작원 교육 과정을 세세히 기억하고 충성맹세문도 외우고 다닌다는 비상한 기억의 소유자 김현희가 어릴 적 자기 얼굴도 몰라본 것이다!
이밖에도 김현희의 진술은 거짓이 한둘이 아니었다. 예컨대 자기 아버지의 직업이 앙골라 주재 북한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고 진술했지만 거짓임이 드러났다. 또, 김현희의 평양 거주지 주소는 1987년 당시 북한에 없는 지역임이 드러났다(1983년에 폐지한 행정구역이었다).
신동진 씨는 수많은 자료들을 치밀하게 대조해 많은 불일치와 의문점들을 발견했다. 믿을 수 없는 탑승객 명단, 김현희가 묵비권을 행사할 때인데도 ‘폭파범’의 행적을 미리 보도한 언론들, 김현희의 진술에 근거해 작성한 안기부 수사 발표문과 ‘김현희 진술서’ 간에 발견되는 차이 등. 그는 여러 사실들을 토대로 안기부가 김현희를 사건 이전부터 관리해 왔다는 의혹(이 경우 김현희는 이중 스파이)을 제기했다.
이 가설을 비롯해 저자가 내놓는 여러 추리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진상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사건의 유력한 증인이 될 김현희를 국정원이 숨기고 있고 국가 기관들이 관련 자료를 은폐하는 등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KAL858기 사건은 의문사위에서 반드시 재조사해야 한다. 안기부·검찰·사법부 등 국가 기구들과 민정당(한나라당의 전신), 〈조·중·동〉 등 언론들이 공모해 벌인 대국민 사기극의 전모는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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