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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노조 결성:
“이제 우리에겐 노조라는 방패와 칼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케이블 방송, 삼성전자서비스, 대학 청소노동자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인상적으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기업들이 서비스 산업에서 간접고용을 확산하면서 열악한 처지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국내 재벌 서열 3·4위인 SK와 LG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대규모로 노조를 결성했다. 대표적인 통신업체인 SK브로드밴드(이하 SKB)와 LG유플러스(이하 LGUP) 고객센터에서 인터넷, IPTV, 전화를 개통하고 AS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다.

통신과 케이블 방송에 진출한 대기업들은 해마다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SKB는 7백32억 원, LGUP는 5천4백21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SKB와 LGUP는 마땅히 직접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협력업체를 통해 간접으로 고용해 왔다. 심지어 협력업체 내 정규직도 소수고, 다단계 하도급이 허다하다. 게다가 최근 통신 업계가 포화 상태가 되고 기업들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통신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악화돼 왔다.

4월 13일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노조 결성 보고대회. ⓒ박충범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주말 근무도 빈번해서 휴일이 없다고 말한다.

“쉬는 날 좀 쉬고 싶다. 이것이 노조를 만든 이유입니다. 저는 8주 연속 일해 본 적도 있어요.”(이경재 SKB 지부장)

“명절 당일 날만이라도 근무를 좀 빼 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저희 어머니 제사 마치고 딸 아이 세배도 못 받고, 10시에 할당된 일을 하기 위해서 신당동에서 부평까지 시속 1백20킬로로 달려가야만 했습니다.”(SKB 부평센터 조합원)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에 견줘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기본급 자체가 워낙 적은 데다가, 온갖 평가로 월급이 차감되기 때문이다. 개통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개인 도급계약을 맺고 있는데, 일이 없으면 소득도 없다.

“원청이 주는 수수료가 계속 낮아졌어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CS[소위 ‘고객 만족 경영’을 위한 평가 시스템] 때문이에요. 이건 삼성이 먼저 시작해서 SK와 LG가 따라한 거죠. 한마디로 센터를 각종 항목으로 평가해서 줄 세우고, 점수를 까고, 수수료를 까고, 월급을 까는 거예요. 원래 줘야 하는 돈인데, 이제는 S등급을 받아야 그 돈을 주는 거죠.”(경상현 LGUP 지부장)

“개통의 경우 일이 없으면 놀아야 돼요. 그러니까 센터는 할당을 무기처럼 사용합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노동자에게 할당을 안 주는 거죠.”(이경재 SKB 지부장)

사고가 나도 회사가 책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고가 났는데, 팀장이 한다는 소리가 ‘그럼 일은 어떡해?’였어요. 결국 주변의 동료 기사가 자기 일 다 빼고 뒷수습했어요. 아무리 도급계약을 했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사장들은 우리를 소모품으로 보는 거죠.”(경상현 LGUP 지부장)

소모품

노동자들은 이런 열악한 현실을 바꾸고자 노조를 만들었다. 노조가 결성되자 조합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 수도권의 대부분 센터에 노조가 생겼고, 지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전에 저는 철새였어요. 여기에 불만이 있으면 그냥 다른 곳으로 떠났죠. 그런데 이제는 통신 업계가 포화 상태예요. 더는 신규 가입자가 없고, 통신사끼리 서로 [고객을] 뺏는 겁니다. 노동조건이 다들 비슷해졌어요. 더는 갈 곳도 없어요. 벼랑 끝인 거죠. 일을 그만 두거나, 현실을 바꾸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씨앤앰에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노동조건을 개선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다들 부럽다고 한마디씩 했죠. 일단 노조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죠.”(경상현 LGUP 지부장)

“처음에는 너무 부당하니까 회사에 얘기하자고 순진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개선되기는커녕 중간에서 짓밟히기 일쑤였어요. 노조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죠. 처음엔 공허한 메아리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사람들을 한둘 만나기 시작하니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예상외로 호응이 엄청났어요. 다들 더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고 느꼈던 거죠. 그간 분노가 결집이 되기 시작한 겁니다.”(이경재 SKB 지부장)

거대 통신사 두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노조가 조직된 것도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다.

“LG에서만 노조가 생기면 회사가 우리를 자르고 다른 데서 말 잘 듣는 기사를 구해 올 수 있죠. 그런데 다른 통신사에서도 노조가 있으니까 그럴 수가 없는 거죠.”(경상현 LGUP 지부장)

“서로가 힘이 돼 주고 있어요.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하는 생각을 하고 위안을 얻어요.”(이경재 SKB 지부장)

또한 이들의 노조 결성 소식은 비슷한 처지의 다른 노동자들에게 다시 자신감을 주고 있다. 4월 13일 SKB·LGUP 노조 출범 보고대회에 참가한 삼성전자서비스 위영일 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도 든든한 우군들이 전국에서 막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이 괴물 자본 삼성과의 싸움이 언제 끝날까, 그런 두려움에 빠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주위를 돌아보니까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제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저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SK브로드밴드 한 센터의 노조를 만들기 위한 자리에 LG유플러스, 씨앤앰 노동자 들이 모두 함께 해 연대를 결의하고 있다. ⓒ이미진

노조 건설이 여러 센터로 번지자, SK는 위장도급을 은폐하려고 각 센터에 ‘명함 가이드’를 내려보냈다. 원청의 이름이 찍힌 명함을 센터 명의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이다. 경총을 내세워서 센터장을 불러 모아 세미나도 열었다. 세미나 이후 사측은 교섭 공고안을 떼 버리고, 조합원에게는 일을 안 주거나, 회사 말을 잘 듣는 기사들을 채용하거나, 어용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센터장들이 조합원에게 전화해서 “당신 때문에 본부장 집 왔다 갔다 하고, 계속 신경 쓰고, [당신이] 피해 준 것 아니냐”고 하거나, “노조 결성되면 센터 계약 폐지야. 그럼 니 탓이야”라고 협박하는 일도 폭로되고 있다.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난무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녹취를 생활화하자”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노동조합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한 게 많으면 노조 하나 만들었다고 이렇게 겁을 내는지 모르겠어요. 불합리한 시스템을 개선해 보자는 건데, 사측은 무조건 노조는 나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탄압 자체가 SK가 자신이 사용자라는 걸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됩니다.”(이경재 SKB 지부장)

일부 센터에서는 노동자들 압력에 밀려 첫 교섭이 시작되기도 했다. 노조는 사측의 탄압에 대응하면서 노조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임단협 요구를 정리하고 있다.

“저쪽만 칼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노조라는 방패와 칼이 있어요. 여태까지는 모기만 한 소리로 ‘이렇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겁니다.”(이경재 SKB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