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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스크린쿼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김용욱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이 다시 시작됐다. 지난 7월 14일 ‘한미투자협정(BIT)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이하 대책위)가 결성됐고, 대책위는 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다함께〉는 대책위의 투쟁을 지지한다.
다만 ‘문화 주권과 다양성’을 지키고 헐리우드 영화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 스크린쿼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대책위의 주장은 스크린쿼터의 진정한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문화 주권’, 다시 말해 단일한 ‘민족 문화’로서 한국 문화를 지키자는 것은 사실상 대상이 없는 유령을 지키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일한 민족 문화는 신화일 뿐이다.
문화적 다양성 수호는 조금은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자본주의가 문화를 상품화·획일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는 정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와 문화적 다양성의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다.
오히려 스크린쿼터의 보호 하에 한국 영화산업은 다양화보다는 독점화·획일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 영화 배급은 사실상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라는 2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두 배급사가 한국 영화뿐 아니라 전체 영화 중 거의 50퍼센트를 배급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 개봉은 다양성보다는 소수 영화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도 〈태극기 휘날리며〉 때문에 개봉이 연기되거나 개봉관을 잡지 못한 한국 영화가 부지기수였다.
최근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내에서 독립영화 등의 상영 공간을 보장하자는 마이너쿼터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 듯하다. 그러나 설사 이것이 관철된다 하더라도 독점 경향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스크린쿼터의 실제 의미는 아직 유치 산업인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보호 정책이다. 스크린쿼터 수호 운동 뒤에 충무로의 가장 중요한 자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모든 유치 산업은 국가의 보호를 요구해 왔다. 많은 국가들은 기꺼이 철강·자동차·조선 등 중요한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산업들은 투쟁을 통해서야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유치

한국 영화와 외화를 포함해서 한국의 영화산업의 연간 매출액은 통틀어서 3조 원 정도다. 기껏해야 삼성전자 한 분기 순이익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국가의 입장에서 영화는 핵심 산업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영화산업이 한미투자협정의 걸림돌이 될 만큼 중요하다고 보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한국 영화산업은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을 통해 보호 정책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보호를 바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점유율 50퍼센트 시대’ 등 온갖 팡파르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산업은 아직 불안한 단계에 있다.
7월 7일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인 〈한국 영화산업 성장 요인 분석〉은 “한국 영화는 매년 5편 미만[한해 평균 작품 수는 50∼70편―김용욱]의 소수 흥행작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 안정되지 않은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6∼7월 한국 영화 점유율이 30퍼센트대로 급속하게 떨어진 것도 같은 경향을 보여 준다. 한국 영화산업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스크린쿼터의 폐지나 축소를 원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본주의 산업의 보호 자체를 지지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구체적인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스크린쿼터는 한미투자협정 체결의 핵심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2003년 3월 재경부장관 김진표가 “스크린쿼터제가 BIT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 것이나 최근 한미재계회의 참석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노무현이 “우리 정부도 스크린쿼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이 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만약 한미투자협정이 체결된다면 자본가들은 또 다른 신자유주의 협상을 시작하려 할 것이다. 이미 한국과 미국의 자본가들은 7월 2일 모임을 갖고 연내 상호투자협정을 타결하고 FTA 협상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대책위는 7월 14일 발표한 ‘영화인 투쟁 선언문’에서 공식적으로 한미투자협정의 조인에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고 각종 신자유주의 협정을 반대한다는 맥락에서 전술적으로 우리는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지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