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삼성과 경찰이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고(故) 염호석 동지의 시신이 식기도 전에, 경찰이 고인이 있는 장례식장에 난입해 시신을 탈취한 것이다.

고(故) 염호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 분회장은 5월 17일 삼성의 탄압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은 노동조합을 와해하기 위해 고소고발, 표적 탄압, 생계 압박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염호석 열사의 3월 월급은 70여 만 원, 4월 월급은 41만 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삼성 사측은 폐업센터 고용 승계, 생활임금 보장 같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해 왔다. 염호석 열사는 죽음으로라도 탄압을 멈추고 투쟁이 승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열사는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항상 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다. 고인은 떠나기 불과 3일 전에도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5월 총력 투쟁에 함께하자” 하며 조합원들에게 투쟁 의지를 북돋았다.

고인은 유서에서 “우리 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꼭 승리하리라” 믿는다며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시신을]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 곳에 뿌려주세요’ 하고 당부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고인의 뜻을 지키기 위해, 고인을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으로 모셨다. 고인이 “곁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쁨”이었다는 동료 노동자들과 조문객들이 빈소에 찾아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빈소가 차려진 지 하루도 안 돼 무장한 경찰들 수백 명이 장례식장 입구에 들이닥쳤다.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됐다. 노동자들은 “어떻게 경찰이 장례식장까지 들어오냐”, “고인을 두 번 죽이지 마라”고 울부짖었다. 한 노동자는 옷을 다 벗고 기둥에 매달려 온몸으로 저항했다. 고인의 친모는 “내 아들을 어디로 데려가냐”며 오열했다.

그러나 경찰 수백 명은 울부짖으며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최루액을 난사하며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던 경찰이, 노동자의 시신은 신속하게 빼낸 것이다. “승리할 때까지 [시신을] 안치”해 달라는 고인의 마지막 바람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노동자들은 “이게 과연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삼성의 사주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럽니까?”, “사람의 죽음도 돈으로 해결해 버리려는 삼성’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삼성은 고(故) 최종범 열사의 죽음 때처럼, 고인의 죽음으로 투쟁이 확산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경영권 3대 세습을 앞 둔 시점에서 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현재 정세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호석이의 꿈 반드시 이루자” 하며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내일(19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하고 서울로 상경해 농성에 돌입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열사의 꿈을 이루고, 승리할 때까지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