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본격적으로 시장 개혁·개방에 나선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중국 사회에 몰아친 변화 때문에 중국 인민의 삶은 극적으로 변했다. 

《다큐멘터리 차이나》(고희영, 나남, 304쪽, 20,000원)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평범한 대중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난 때문에 이산의 아픔을 참아야 하는 농민공 가족, 요리사의 꿈을 안고 도시로 온 청년 등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고도성장 신화에 가려진 중국 사회의 이면을 들춰내고 있다. 

시장 개혁·개방으로 중국의 빈부격차는 매우 커졌다. 돈을 물 쓰듯 쓰는 소수 부자들이 있는 다른 한편에, 하루 40~60위안(원화 약 6천5백~1만 원) 벌이로 사는 농민공과 아직까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에 사는 농민이 있다.

개혁·개방 과정에서 고위 관료나 그들에 연줄을 댄 자들은 엄청난 부를 모았다. 예컨대 전(前) 국가주석 장쩌민의 아들은 중국 IT업계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전(前) 총리 원자바오의 아들은 사모펀드 설립자다.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이런 자들은 부동산 투기로도 돈을 긁어모았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광둥성과 장쑤성의 대형 부동산업체 12개와 22개는 모두 고관 자제들 소유였다.”

그러나 이런 자들의 개발과 투기는 주요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 폭등에 일조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평범한 인민이 지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의 한 네티즌은 중국의 집값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자신만의 계산법’을 통해 공개했다. … ‘소작농’이 베이징에서 집을 사려면 자연재해가 없는 상태에서 당나라 때인 서기 907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1천1백 년 이상 줄곧 일을 해야 한다.”(39~41쪽)

유혈 낭자한 강제 철거

부동산 투기와 개발 붐은 “딩즈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딩즈후’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당국의 이주 명령에 불복해 남아 있는 가구이다. 우리말로 하면 ‘못 세대’이다. … 이 딩즈후라는 단어는 그 외형적 모습에서 유래됐다. 주변은 다 개발됐는데도 혼자 남아 있는 모습이 마치 못과 같은 모양이[기 때문이다.]”(124쪽)

그러나 지방정부는 개발업체와 손잡고 딩즈후를 없애는 강제 철거를 비호한다. 이 과정은 말 그대로 “피의 철거”다. 2009년 11월 쓰촨성 청두시에서 철거반원들이 딩즈후를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 철거반원의 무자비한 구타와 철거에 분노한 탕푸전 씨가 분신 자살했다. 이 소식이 중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강제 철거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피의 철거”는 진행 중이다.

중국 사회의 계급 간 격차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교육이다. 영·유아원 입학부터 부모의 재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중학교의 경우 부모의 권력과 재력에 따라 학생의 명칭이 달라지고, 교육의 등급도 세분화된다.”

대학 입학 과정에서도 차별의 장벽은 너무 두껍다. 대도시 호구(호적)를 가진 학생은 그 도시 대학 입학에서 엄청난 특혜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촌 출신 학생이 베이징대나 칭화대 같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음식에도 계급이 있다

중국인들이 먹는 음식에서도 빈부격차가 드러난다. 어떤 계급의 사람이 먹느냐에 따라 동일한 음식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카오야(오리구이)의 경우, 음식점마다 최고 8백 위안에서 최저 26위안까지 무려 30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러나 26위안짜리 카오야를 평생 못 먹어 본 농민공도 수두룩하다.

1백68위안짜리 카오야를 판매하는 고급식당 “취엔취더” 옆에서 하수구 공사작업을 하던 한 농민공은 왜 카오야 가격이 식당마다 차이가 나느냐는 질문에 체념 가득 찬 눈빛으로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사람마다 등급이 다르니까 그렇죠. 고(高), 중(中), 저(低). 돈 있는 사람도 있고 돈 없는 사람도 있으니 당연히 먹는 것이 다른 거죠.”(79쪽)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체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강조해 왔다. 그리고 “샤오캉(의식주 걱정 없는 풍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대중에게 약속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 주는 오늘날 중국의 현실은 사회주의나 샤오캉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중국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끔찍한 빈부격차, 부패 등은 지금 중국 사회를 불만과 저항으로 들끓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다. 

농민공, “우리는 일회용 밴드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차이나》를 읽다 보면, 여러 군데에서 농민공의 삶을 마주치게 된다. 그만큼 오늘날 중국 사회가 겪는 모순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집단이 농민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가난에 허우적거리던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해 저임금 이주 노동자(농민공)가 됐다. 이 숫자는 매년 1천만 명씩 늘어, 2012년 현재 2억 6천만 명에 이른다. 

그동안 중국은 농민공의 값싼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이 됐다. 따라서 “세계 최고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부자 국가 중국의 일등공신은 단연 ‘농민공’들이었다.”

그러나 농민공은 고도성장의 대가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체계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2011년 외지농민공의 월평균 수입은 2천49위안으로 이는 베이징 도시근로자 평균임금 4천5백1위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하지만 그들에겐 주거, 교육, 의료, 노후보장 등 도시인들이 누리는 기본적인 ‘5험(險) 1금(金)’(중국의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조차 없다.”(88쪽)

출생지에 따른 차별도 있다

농민공들이 이런 차별을 겪는 이유 중에는 중국의 호구(호적) 제도가 있다. 호구는 태어난 지역에 따라 농촌과 도시 호구로 나뉜다. 마오쩌둥 시절부터 호구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호구를 현대판 신분제라고 부른다. 지금도 도시 호구가 없는 농민공들은 도시로 이주해도 취업은 물론이고, 온갖 혜택에서 철저히 제외돼 있다. 

그러나 최근 농민공들은 중국에서 저항의 핵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광둥성 등지에서 농민공들의 시위와 파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저항은 신세대 농민공이 이끌고 있다. 그들은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는다. “자신들이 싸구려 노동력, 일회용 밴드, 도시의 부속품으로 취급받는 것에 강하게 저항한다.”

《다큐멘터리 차이나》는 어렵지 않은 문체로 읽는 데 부담이 없다. 바다 건너 중국의 현실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손에 쥐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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