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지인과 길을 걷던 중 있었던 일이다. 행렬 사이로 높이 올라간 ‘노동자연대’ 깃발을 보고, 지인이 물었다. “‘노동자연대’ 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밝혀두자면, 지인은 노동자연대와 같은 사회주의 운동 단체에 반감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지인은 단지, 다른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 사이에 ‘노동’과 ‘연대’를 이름으로 한 깃발이 있는 것을 꽤나 신기해했을 뿐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동성애자다. 어떤 글을 쓰며 매번 나의 성적 지향을 밝혀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동성애자이며, 어버이연합이나 보수 종교 단체의 시위에 막혀 행진을 하지 못한(하지만 결국 성공한) 동성애자이다. 나는 평소엔 내 정체성을 숨기고 살지만, 축제에서 나와 같은 다른 사람들을 보고 든든해하던 사람이며, 동시에 나와 다른 정체성의 누군가가 나를 혐오하는 것을 보고 서러워한 사람이다. 지인은 다른 의미로 노동자연대의 깃발에 주목했다면, 이런 내게도 그 깃발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들린 여러 촛불들, 그리고 그 사이의 깃발을 보며 항상 생각하곤 했다. ‘당사자에게 과연 저게 어떤 의미일까.’ 물론 사회적 연대의 움직임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당사자의 자리에 섰을 때, 내가 생전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깃발을 들고 내 광장에 서 주었을 때, 그 깃발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나는 항상 궁금했다. 든든할까? 혹은 의뭉스러울까?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보듬고, 사람 때문에 고통받는 나를 지지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이 왔을 때,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퀴어 퍼레이드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던 내가 당사자의 자리에 서는 경험이었다. 나와 같은 소수자들을 확인했지만 나를 반대하는 다른 이들을 확인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어떻게 보면 생뚱맞을 수도(?) 있는 노동자연대의 깃발은, 내게 가슴 벅찰 정도의 힘을 안겨 줬다. 성소수자 단체가 아니라도, 당신들의 옆에는 당신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누군가가 있다, 당신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맞서고 대항해 줄 누군가가 있다, 그 깃발은 그렇게 말해 줬다.

용기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름만 다른 또 다른 당사자들, 밀양, 강정마을, 삼성서비스 노동자 동지들, 삼성 반도체 산재 피해자 동지들, 세상 그 모든 힘없는 서로 다른 당사자들이 군중 속에서 깃발을 발견했을 때, 그런 용기와 힘을 얻지 않았을까 하고. 노동자연대의 붉은 깃발은, 내게 희망을 준 무지개 깃발의 한 축에 당당히 자리해 주었다.

이듬해, 노동자연대의 깃발을 발견한 지인이 내게 또 질문한다면, 나는 이 장황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 주고 싶다. 그리고 연대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내가 얻은 용기와 힘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이 힘을, 세상 모든 다른 당사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퍼레이드에서 본 깃발 중 ‘노동’과 ‘사회주의’를 내건 깃발은 노동자연대의 깃발이 유일했다. 연대의 힘을 실어 준 노동자연대에 큰 감사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