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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예고하는 한국 경제

불황을 예고하는 한국 경제

이정구

최근 ‘경제위기론 논쟁’을 벌였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결은 8월 30일 정부·여당이 재정 확대와 감세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났다.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체감경기가 하반기에 살아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제는 “회복까지 1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해 정부와 여당이 느끼는 위기감을 드러냈다.
올해 한국 경제는 5퍼센트대의 성장률과 2백억 달러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로 외형상으로는 ‘건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경제 침체로 빠져들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민간소비는 2002년 7.9퍼센트를 정점으로 계속 하락해 2003년부터 지금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설비투자도 2003년 마이너스 1.5퍼센트에서 올해 2/4분기에는 2.0퍼센트로 올랐지만 7월 이후 다시 하락하는 추세다. 산업생산도 6월과 7월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극심한 내수 침체 속에 외끌이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도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이어가지는 못할 전망이다. 수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IT 산업이 하반기에는 침체가 예상되고 있다. 또, 한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인 미국(개인 소비지출 하락)과 중국(산업 생산 증가율 감소)도 내년에는 경기 둔화가 예상된다.
불안한 조짐 때문에 각종 경제기관들과 민간 연구소들은 올 하반기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대폭 하향조정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5퍼센트대에서 4퍼센트대로 낮췄고,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4.6퍼센트에서 2005년에는 3.7퍼센트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이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7월 소비자물가가 4.4퍼센트로 급등했다.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뿐 아니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이 존재한다. 기업들은 원자재 및 유가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을 제품 가격 인상을 통해 벌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또 공공요금도 줄줄이 오를 전망이다.
유원지의 롤러코스터도 이미 내려왔을 때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올 때 더 두려운 법이다. 지금의 위기감도 침체가 예상되는 세계 경제, 얼어붙은 내수, 수출 증가세 둔화 때문에 한국 경제가 얼마나 더 추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한나라당과 친기업 연구소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 특별소비세 대상 품목 축소, 부가가치세 인하 등과 함께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노무현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불평등만 심화시켰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 카드 사용 확대로 인한 민간소비 증가, 수출 증가로 잠시 경제가 회복되는 듯했지만 이내 그 동력은 소진되고 있다.
경기 회복으로 상장기업 수익률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그 열매가 저소득층에게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지니계수, 소득 5분위 배율 등의 지표상에서 빈부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사회주의형·인기영합형” 경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사회주의형이기는커녕 오히려 한나라당과 친기업 집단들의 주장을 따르는 식이었다.
지난해 노무현 정부는 법인세와 소득세 50퍼센트를 감면하기로 했다. 또 올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부동산 취득세와 등록세를 인하했고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을 축소했다. 또 노동자들의 파업에 직권중재나 경찰력 투입 등과 함께 ‘고임금 노동 귀족들의 배부른 투쟁’이라고 매도하는 이데올로기 투쟁도 함께 진행했다.
그러나 감세 및 재정 지출 확대 정책이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 정부는 장기 불황 대책으로 1998년부터 2000년에 네 차례에 걸쳐 62조 엔을 투입했지만 그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1991∼1996년 연평균 2.3퍼센트에서 1997∼2003년 0.8퍼센트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일본의 경험은 케인스주의식 재정 확대 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보여 준다.
노무현 정부의 친시장 정책은 경제를 더 나락으로 빠뜨릴 것이다. 지금도 한국 경제는 수출 증가가 내수 확대와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수출을 주도하는 소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사이의 수익률 격차가 벌어지는 등 산업의 선순환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4년 한국산업은행은 기업의 설비투자 기피 요인을 조사한 결과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노동 비용 상승이 아니라 수요 부진과 과잉 설비가 그 원인임을 지적했다. 이는 사장들이 장래에 수익성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투자를 확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개인소비 위축으로 인한 미국 경제 침체와 중국 경제의 연착륙 실패 가능성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등은 한국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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