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석학으로서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 위원장인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8월 7~10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4’ 참가를 위해 방한했다. 이 글은 캘리니코스가 8월 10일 강연한 ‘오늘날의 국제 계급투쟁’을 녹취한 것이다. [ ] 속의 말은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올해로 2007년 8월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한 지 정확히 7년이 됩니다. 2008~09년에 일어난 대침체(Great Recession) 국면은 비교적 짧았지만, 그 뒤로 위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클 로버츠는 이것을 장기 불황(Long Depression)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오랜 기간 경제성장률이 예전 추세보다 낮은 수준으로 정체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많은 부분들에서 이런 현상이 관측됩니다. 이렇게 오래 끄는 위기 속에서 전 세계 계급투쟁은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을까요? 이것이 이번 강연에서 다룰 주제입니다.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이윤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지배계급은 그동안 아주 치열하고 악랄하게 계급투쟁을 벌여 왔습니다. 전 세계의 지배계급들은 신자유주의를 더 급진화시켜서 이 문제를 극복하려 합니다.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긴축 정책, 즉 공공지출을 급격히 줄이려는 움직임은 이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공공부문을 더욱 민영화하려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 정책들의 목표는 모두 착취율을 끌어올려서, 즉 노동자들에게서 잉여가치를 더 많이 뽑아 내서 이윤율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배계급은 이번 위기에 대응해서 [그들 편에서의] 계급투쟁을 더 강화했습니다.

국제 계급투쟁이 최고점에 이르렀던 2011년 아랍 혁명

노동자들의 대응은 어떤가요? 노동계급 쪽에서는 양상이 더 복잡합니다. 지금까지 국제적 저항 운동의 최고점은 2011년이었습니다. 2011년 초, 아랍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포문을 연 것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이었습니다. 그 혁명으로 그 나라들의 독재자들이 타도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그 두 나라의 혁명이 독재 정권뿐 아니라 그 정권들이 시행하던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신자유주의는 빈부격차를 더욱 키웠습니다.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고 대중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빈곤이 대규모로 확산됐습니다. 신자유주의를 가장 앞장서서 추진한 곳이 벤 알리 치하의 튀니지와 무바라크 치하의 이집트였습니다.

이런 빈부격차 증대에서 가장 크게 득을 본 자들은 부자이기도 했고, 정권과의 유착도 끈끈했습니다. IMF와 세계은행은 이 두 정권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정실 자본주의의 표본인 정권들을 말입니다. 이집트와 튀니지, 더 나아가 시리아 등지에서 일어난 반란의 주요 요인 하나는 빈곤과 실업이었습니다. 특히 대졸자 청년들의 빈곤과 실업이 심각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경제 위기에 맞서 싸우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아랍 혁명, 그중에서도 이집트 혁명을 보며 영감을 얻었던 것입니다. 특히 2011년 1~2월의 타흐리르 광장 점거 운동은 집단적 자체 해방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 줬습니다. 혁명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를 알기 위해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을 다룬 책을 읽을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습니다. 타흐리르 광장을 보면 됐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선진국에서도 타흐리르 광장 점거 운동을 모방한 운동들이 등장했습니다. 2011년 5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 등지에서 ‘광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에서 광장을 점거했습니다.

또, 그해 가을에는 미국에서 점거하라(Occupy) 운동이 시작됐죠. 점거하라 운동은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됐습니다. 점거하라 운동은 투쟁이 얼마나 빨리 국제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매우 흥미로운 사례였습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청년들이 투쟁에 나섰습니다. 뉴욕은 시온주의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런 도시의 사람들이 아랍 세계의 (가장 큰) 도시에서 일어난 운동을 모방했습니다.

그 뒤, 점거하라 운동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해 가을 저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큰 행운이었죠. 주코티 공원에서 연설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필라델피아 점거하라 운동의 행진에도 참가해 1960년대 미국 운동의 영웅이었던 앤절러 데이비스가 총파업을 호소하는 연설을 직접 들었습니다.

‘총파업’은 [필라델피아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일어났고, 그조차 상징적 의미의 파업이었습니다. 또, 점거하라 운동은 일반으로 말해 수명이 매우 짧았습니다. 그럼에도 점거하라 운동은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티파티의 우익 광신도들이 미국의 정치 담론을 주도하다시피 했죠. 그런데 ‘1퍼센트에 맞서는 99퍼센트’라는 점거하라 운동의 구호가 미국과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구호는 (우파들의 주장과 달리 정부보다는) 극소수인 기업주들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매우 분명하게 표출했습니다. 불평등에 관해 광범하게 연구한 피케티의 책이 특히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이런 맥락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2011년의 운동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급진화가 얼마나 심화했는지를 보여 줬습니다. 그리고 이 급진화에서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됐습니다.

이데올로기의 급진화와 수세적 노동계급 투쟁 사이의 간극

조직 노동계급의 투쟁은 어땠을까요? 물론 조직 노동자들도 존재감이 상당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례는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련의 대중파업 물결이었습니다. 이 대중파업 물결의 첫 물결에 직면한 이집트 군부는 2011년 무바라크를 쫓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 물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도 총파업이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영국에서는 자본주의가 확립된 이후 2백 년 동안 총파업이 2~4번밖에 안 일어났는데 그리스에서는 총파업이 여섯 달에 한 번 꼴로 일어났습니다.

2012년 11월 흥미로운 사태 전개가 있었습니다. 남유럽 전역에서 공동 하루 파업이 일어난 것입니다. 유로존에서 긴축 공세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나라들인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에서 공동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 밖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2010년 프랑스에서 연금 개악 반대 파업이 대규모로 일어났습니다. 2011년 영국에서도 연금 문제를 둘러싸고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공공부문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 11월 30일 파업은 1926년 총파업 이래 규모가 가장 큰 파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반자본주의적인 이데올로기 급진화와 노동계급 투쟁의 수준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투쟁들은 규모가 엄청나게 컸지만, 모두 수세적인 투쟁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노동조합 관료들의 주도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노동조합 관료가 매우 빠르게 주도력을 확립했습니다. 무바라크 퇴진 뒤 결성된 신생 민주노조들에서 노조 관료층이 매우 빠르게 형성됐습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민주노조 운동의 지도자가 군부 쿠데타 이후 집권한 정부의 노동부 장관까지 됐습니다.

이런 패턴은 지난번의 대규모 경제 위기, 즉 1930년대 대불황 때 나타난 패턴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1934~36년 미국에서는 봉기에 가까운 대중파업들이 일어나고 주요 산업에서 노조가 조직됐습니다. 예를 들어, 1934년 미니애폴리스 시에서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도해서 트럭 운전사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됐고, 이 파업을 계기로 운수업이라는 매우 중요한 산업에서 노조 조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1935~36년에는 자동차 공장 점거 파업이 여러 차례 일어났고, 이 투쟁은 자동차 산업에서 노조가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1934년 프랑스에서는 파시즘의 집권 가능성에 직면해 대중 시위가 거대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을 발판으로 1936년에는 거대한 대중파업과 공장 점거 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 주는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런 투쟁들은 공세적인 투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장 조합원들이 상당한 주도력을 발휘했습니다.

반면에 최근의 노동자 투쟁에서는, 적어도 유럽에서는 노조 관료의 주도력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2010년 프랑스와 2011년 영국에서 노조 지도부가 연금 개악 반대 파업을 배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정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 세계 노동계급 중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에서는 대중파업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여전히 거리에서의 운동이 작업장에서의 운동을 압도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좌파가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2011~12년 매우 용감하지만 경험은 적고 미숙한 많은 젊은 활동가들이 선거 보이콧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 덕에 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이 혁명을 대변하는 세력인 양 행세할 수 있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은 집권 뒤 소수 종교를 차별하는 종파적 행태를 보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엘 시시가 이끄는 군부가 무슬림형제단에 반대하는 저항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혁명 운동이 거리 운동보다 작업장 투쟁을 더 중요한 중심으로 일어났었더라면 군부가 그런 식으로 대중 정서를 이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계급투쟁의 수세적 성격은 좌파의 성장에도 제약이 된다

노동자 투쟁이 수세적이고 [그 수위가] 제한적인 것은 좌파가 성장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대중파업론》이라는 유명한 소책자에서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대중파업이 경제적 요구를 내걸고 일어날지라도 정치적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대중파업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힘이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체 조직들을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정치 의식도 더 명확해지고 더 발전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좌파가 크게 약진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립니다. 대중파업이 일어나면, 그 전 몇십 년 동안 지지부진하게 벌어지던 정치적 논쟁들의 의미가 갑자기 명확해집니다.

반대로 현재 유럽에서 좌파들은 지난 몇 년간 오히려 파편화되고 약해졌습니다. 2000년대 초 일어난 반자본주의적 급진화의 첫 물결에서 큰 수혜를 입은 주요 정당으로 이탈리아의 리폰다치오네 코무니스타(재건공산당)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건공산당은 [2007년] 경제 위기의 초반에 자충수를 너무 많이 뒀고, 그래서 이제는 정치적으로 거의 의미가 없는 세력이 됐습니다.

이런 위기와 파편화는 불행히도 혁명적 좌파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 NPA와 제가 속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도 여러 차례 분열과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렇게 급진좌파가 약해진 덕분에 유럽에서는 급진우파가 위기를 이용해 활개치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물론 각국 국가들이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을 더 키우고 있는 것도 급진우파의 성장에 한몫했습니다. 급진우파들은 점점 더 인기가 떨어지는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선동과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 선동을 결합시키면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5월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 프랑스와 영국에서 극우파가 1위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파시스트인 국민전선이 1위를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영국독립당이라는 매우 이상한 이름(영국은 1백 년 넘게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였으므로 독립 운운하는 것은 참 웃깁니다)을 가진 정당이 1위를 했습니다. 영국독립당은 파시스트 정당은 아니지만 매우 우파적인 정당으로, 특히 유럽의 다른 곳으로부터 오는 이민에 반대하며 성장했습니다.

물론 이에 반대되는 흐름도 있습니다. 특히 남유럽에서 그렇습니다. 똑같은 유럽의회 선거였지만, 그리스에서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1위를 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광장 운동’에서 생겨난 신생 급진좌파 정당[포데모스]이 마치 혜성처럼 등장해 8퍼센트를 득표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그리스와 스페인 같은 곳의 투쟁 수준이 더 높은 상황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그리스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뿐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져 왔습니다. 그 덕에 유럽 전체에서 급진좌파의 상대적 규모가 가장 큽니다. 스페인에서도 큼직한 거리 운동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2011년뿐 아니라 그 뒤로도, 주택 가압류와 강제 퇴거에 반대하는 운동이나 천대받는 집단들에 대한 연대 운동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공세적 노동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남아공

유럽이 아닌 곳으로 눈을 돌리면 다른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가장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번 달[2014년 8월]은 남아공 서북부 마리카나에서 파업을 벌이던 광원들이 학살당한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달입니다. 마리카나 학살은 남아공 정치에서 핵폭탄급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격리] 체제의 종식 이후 남아공 노동자들은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정부를 강력하게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ANC 정부는 (부자들에게 유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일부가 매우 부패하게 됐습니다. 특히, 남아공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산업인 광산업에서 그랬습니다. 전국광원노조 NUM의 지도자들은 기업들에 사실상 매수당했습니다. 노조 지도자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장과 더 가까운 직장위원들도 일반 노동자 임금의 세 배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습니다.

이에 반발한 현장 조합원들이 광원노조에서 떨어져나와 광원건설노조연합 AMCU를 결성했습니다. 최근에 광원건설노조연합은 백금 광산에서 다섯 달 동안 파업을 벌여 승리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태 전개가 남아공노총(코사투) 내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 NUMSA에서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12월 금속노조는 ANC 정부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새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남아공에서는 금속 노동자들이 큰 투쟁을 벌여 왔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NUMSA는 남아공에서 새 좌파 정당을 건설하는 문제를 놓고 국제적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도 노동운동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철도파업이 전환점이었던 듯합니다. 물론 김하영 동지의 강연을 들어 보니 한국에서도 노조 관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오늘날 계급투쟁에서 나타나는 악순환

유럽에서는 왜 노동계급 투쟁의 부활이 그리 힘든 것일까요? 한 가지 원인은 유럽의 노조 관료가 다른 지역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고 노동계급 조직들에 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민주노총 관료의 역사는 20~25년밖에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노조 관료의 역사는 1백50년이나 됩니다. 때로는 노조 지도자들의 생물학적 나이가 1백50살이나 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요인은 신자유주의가 30년 동안 지속된 뒤에 경제 위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미국에도 해당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에서 조직 노동계급을 상당히 약화시켰습니다.

영국에서 우리 동지들은 1984~85년에 일어난 위대한 광원 파업의 3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광원 파업은 1년 동안 지속된 매우 크고 영웅적인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거릿 대처 정부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 각지의 광산촌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한국에서도 박근혜가 쫓겨난다면 그런 축제 분위기가 재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원 파업이 패배한 뒤에 영국에서는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악순환은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됐습니다. 그 악순환은 이렇습니다. 투쟁이 패배한 결과로 노동조합 자체가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현장 조합원보다 노조 관료의 힘이 더 강해집니다. 그리고 노조 관료가 강해질수록 그들이 투쟁을 배신하기 더 쉬워집니다. 노조 관료가 배신해 투쟁이 패배하면 현장 조합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그 결과 노조 관료의 힘이 더 강해집니다.

그러나 역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영국에서 일어난 연금 개악 반대 공공부문 파업도 그런 희망을 보여 줬습니다. 그 파업을 처음에 추동한 것은 SWP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좌파 노동조합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너무 성공적이었던 것이 문제로 작용했습니다. 우리가 영향력을 미치던 작은 노조들을 행동에 나서게 함으로써 더 큰 노조들도 행동으로 딸려오도록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형 노조들이 행동에 나서니까 파업에서 그 노조들의 힘이 커진 것입니다. 대형 노조의 지도자들이 파업을 접으려 할 때 우리에게는 그것을 막을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새로 생기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영국 공공부문 노동자 1백만 명 이상이 임금 인상 파업을 벌였습니다. 다가올 10월에도 그런 파업이 일어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활용해 악순환의 고리를 깨도록 분투해야 합니다.

또한 더 넓게 봤을 때, 전 사회적으로 이데올로기 급진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어제 런던에서 15만 명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에 일체감을 갖게 되는 것은, 체제가 진정한 문제임을 깨닫는 의식 발전 과정의 일부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투쟁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계속 부침을 겪는 것은 혁명적 조직이 매우 중요함을 보여 줍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마르크스주의를 실천으로 구현하는 조직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실천에서 떼어내 단지 책에서만 존재하는 이론으로 만든다면, 그 마르크스주의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이론과 실천을 통합시킬 수 있게 해 줍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기초로 하므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투쟁의 상태와 모순을 엄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도구가 있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일상의 투쟁과 운동에 체계적으로 개입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단련된 핵심 활동가를 조직합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노동계급 투쟁의 전진을 가로막는 요인이 노조 관료의 주도력이라면, 그것에 도전할 수 있는 현장 조합원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내 활동가와 투사들을 설득하고 조직해야 합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이 작고 약하다는 사실이 현재의 계급투쟁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오늘날의 계급투쟁에서 최선두를 달리던 이집트 혁명은 지난해 7월 군부 쿠데타로 커다란 후퇴를 겪었습니다. 이 후퇴는 무엇보다 이집트의 좌파가 취약하다는 사실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이집트 전통적 좌파의 핵심을 차지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은 이슬람주의보다는 그래도 군부가 낫다고 봅니다. 지난해 스탈린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민족주의자들과 함께 엘 시시의 군부 쿠데타를 지지했습니다.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한국의 노동자연대, 영국의 SWP와 정치사상이 같은 이집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 RS가 이집트 혁명에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RS는 이집트에서 규모가 훨씬 더 크고 기반이 더 넓은 다른 좌파들의 영향력을 상쇄할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투쟁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합니다.

정리 발언

제가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한 분이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세계 자본주의에서뿐 아니라 세계 노동운동에서 남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1970년대 말 저는 여러 개발도상국 중에서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노동운동이 새로 떠오를 유력한 지역으로 남한을 지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1987년 남한에서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졌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연대 단체의] 최일붕 동지를 처음 만났을 때, 더욱 기뻤습니다.

어떤 분은 모든 조직이 어쩔 수 없이 부패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개인들 사이에 해소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을 그 이유로 말씀하신 듯합니다. 물론 개인들의 관심사가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란 개인의 개성이 자유롭게 꽃피는 사회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모두 똑같아지는 것은 공산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수많은 차이가 있고, 이런 차이는 공산주의 사회가 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공산주의 사회, 달리 말해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개인들의 차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으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겠지만, 저는 축구가 매우 지루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운동을 잘하는 분도 있을 텐데, 보다시피 저는 정말 못합니다. 즉, 사람들의 관심사와 취향은 다양합니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 즉 어떠한 개인도 다른 개인보다 권력을 더 많이 갖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들의 차이는 쉽게 공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는 개인들 사이의 관심사 차이뿐 아니라, 계급 간 적대도 있습니다. 즉, 사람들 사이에 체계적으로 대립하는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이해관계 대립은 소수가 나머지 압도 다수를 체계적으로 착취하는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또, 어떤 분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그나마 존재하는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제약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은 일반으로 말해 자본주의 하에서 가장 민주적인 조직입니다. 그러나 노조 관료의 득세는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크게 제약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 본성에 자본가적 속성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동운동의 문제가 모두 노조 관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930년대에 트로츠키가 매우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서인도제도 출신 마르크스주의자인 C L R 제임스와 나눈 여러 대담 중에 한 말입니다. C L R 제임스가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스탈린주의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을 배신하며 그들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들은 결국 우리 쪽(트로츠키주의)으로 올 것이다.' 트로츠키는 '나는 상황을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의 배신으로 패배를 겪으면 노동자들의 사기와 자신감이 떨어져 결국 기존의 조직과 지도자들에게 더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문제점은 단지 노조 관료들이 노동자들을 배신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배신으로 운동이 패배하면 노동자들이 위축돼 기존 지도자들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패턴도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계기로 노동자 투쟁이 크게 일어나고,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 그 투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면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습니다.

지배계급에 매수될 유혹을 느낀 적이 있었느냐고 한 분이 질문했습니다. 그런 유혹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럴 유혹을 느낄 만한 진정한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예컨대 이집트 군부에 의해 수감된 이집트 혁명가 엘 마스리가 겪은 것 같은 혹독한 시험을 저는 치르지 않았습니다. 마스리는 결코 무릎 꿇지 않았는데, 저라면 어떨지 모르죠. 이런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노동자연대의 여러 동지들을 비롯해 그런 시련을 겪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험대에 오른 사람들은 결국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와 그 정치를 실천하는 조직이 있을 때 버틸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겁을 먹거나 사기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가장 중요한 물음은 ‘과연 그 사람이 혼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투사들의 공동체의 일원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한 나라의 공동체가 아니라 국제적 공동체입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영국과 태국의 동지들이 발언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이 세 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와 터키에도 있고, 남아공과 나이지리아 등지에도 있습니다. 이 혁명적 투사들의 공동체에 동참하시고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태시길 바랍니다.

녹취 김종현·이재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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