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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팽목항, "우리는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10월 3일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서울, 안산 등 전국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이날은 ‘벌써’ 세월호 참사 1백71일째가 되는 날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3일 오전 대한문에 모인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게 메세지를 적고 있다. ⓒ이미진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 팽목항으로 향하는 마음을 꺼내놓았다.

“우리 아들이 살아갈 세상에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아들과 함께 버스를 탄 아버지)

“쌍용차 투쟁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사람들에게 잊혀지던 때 였다. … 잊지 말자는 것. 그게 위로가 되고 치료가 된다.”(쌍용자동차 해고자 윤충렬 씨)

“생존자 학생들의 얘기를 들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볼까 봐 학교 밖에서는 재잘거리지도 못한다고 한다. 서로 살리고자 했던 아이들이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죽은 민간 잠수사의 집이 가장의 죽음으로 경매에 넘어갔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은 어디까지인가. 같이 침잠하지 말고, 그 침잠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박근혜 호’라는 타서는 안 될 것과 ‘기다림의 버스’라는 타야 할 것을 알고 있다. 여전히 모일 수 있고, 모여야 하는 광장으로 모이자.”(인권운동가 미류 씨)

바람이 유독 많이 불던 3일 밤 팽목항에 걸려있는 ‘기다림의 풍등’이 흔들린다. ⓒ이미진
3일 밤 어둠이 깊에 내리앉은 팽목항 포구, 종소리만 애처롭게 울리고 있다. ⓒ이미진
3일 밤 팽목항에 도착한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이 진도 VTS를 향해 침묵 행진을 시작했다. ⓒ이미진

어둠이 무겁게 내린 시간이 돼서야 팽목항에 도착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듯,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알리는 듯 종소리가 애처롭게 울렸다.

1천여 명의 사람들은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함께 온 아이의 손을 꽉 잡은 채 진도 VTS(해상교통관제센터)를 향해 침묵 행진을 했다. 그들의 손에는 “철처한 수색이 우선이다”,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적힌 노란 팻말이 들려있다.

밤 늦은 시각,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실종자 가족를 비롯한 1천여 명이 참가한 ‘기다림의 콘서트’가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최성호 군의 아버지 최경덕 씨가 무대에 올랐다.

“한국에서 세월호 유가족으로 사는 일은 ‘더럽다’. 노숙을 밥 먹듯 해야 하고, 내 자식 죽은 이유 알려 달라고 서명 받아야 하고, 길거리에 드러누워야 한다. 이렇게 더러운 일인데도 실종자 가족분들은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 하신다.”

[우리는 지금] 덮으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

힘들게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가던 성호 아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3일 밤 차디찬 바람을 맨 몸으로 맞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 실종자 가족를 비롯한 1천여 명이 참가한 ‘기다림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이미진
‘기다림의 콘서트’가 열리는 동안, 아이와 함께 온 한 어머니가 차디찬 바람을 막기 위해 우비를 입고 담요 덮고 있다. ⓒ이미진

단원고 김시연 학생의 어머니 윤경희 씨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자, 팽목항은 울음 소리로 가득 찼다.

“오늘은 우리 딸 태어난 지 6천2백17일 되는 날입니다. 우리 딸 목소리 못 들은 지 1백70일 되는 날입니다. 내 사랑 깨박이 시연아 잘 있지? 엄마는 그렇게 믿고 싶다. 우리 딸이 잘 있으리라고. 매일 아침이면 우리 시연이 머리도 말려주고 고데기도 해 주고 학교도 데려다 주고 했는데, 네가 없는 아침은 매일 오고 그 아침이 오는 것이 엄마는 매일매일 두렵다. 지금 이 순간도 집에 들어가면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있을 거 같은데, 이제 널 볼 수 없다는 게 엄마는 믿기지도 않아. 금방이라도 문 열고 들어올 것 같은데 … 미치도록 보고 싶다.”

단원고 김동혁 학생의 어머니 김성실 씨는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에 추후 논의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요즘 가장 싫어진 말이다.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 여러분 도움 없이는 견디기 힘든 실종자 가족들을 찾아 달라”고 말을 이어갔다.

방송인 김제동 씨는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가 학교에 갈 때, 늘 해왔던 것처럼 학교에 같이 갈 친구 집 앞으로 간다. 친구 집에서 친구의 이름을 불렀는데, 친구가 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그 아이의 심정이 어떠한가? 지금은 없는 친구 집으로 아이가 뛰어갈 때 ‘정신 차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 친구 집에 같이 가줘야 한다. 사람이니까 해야 하는 일이다.” 하고 말한다.

팽목항 등대의 노란 리본이 아이들이 돌아오는 길을 비추고 있다. ⓒ이미진

자정이 되자 사람들은 일제히 작은 빛이 비춰진 바다를 바라봤다.

“단원고 학생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 남현철, 박영인 님!”

“단원고 교사 양승진, 고창석 님!”

“일반인 승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쳤다. “우리가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전국에서 모인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이 각자의 마음을 담아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이미진
팽목항 방파제에는 10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마음과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란 리본과 현수막이 가득하다. ⓒ이미진
팽목항 방파제에는 10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마음과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란 리본과 현수막이 가득하다. ⓒ이미진

차라리 “유가족이 되고 싶다”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있다.

아무런 죄 없이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내 자식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고,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아직도 시내 한복판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세월호는 아직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