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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청운동 세월호 농성장을 방문하고 느낀 점: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4월 16일, 나라 전체를 커다란 슬픔으로 가득 채웠던 세월호 참사 이 후 6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각지에선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의 농성이 끊이질 않고,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며 무시로 일관하는 정부의 모습은 마치 여름 날로 시간이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게 한다. 변한 것은 오로지 추운 계절로 들어서는 날씨뿐인 것 같다.

사람들 역시 그 날의 사건을 기억하듯 거리 곳곳에 노란 리본을 달고 과거를 추모한다. 아니, 사실은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했을 때 친구들은 그것이 끝나버린 ‘사고’라 말했다. 더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노라 회피하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온 몸을 휘감는 무기력을 보았다. 그 순간 사실은 친구들 역시 사건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단지 그 슬픈 참사에서, 그리고 앞으로 언제고 계속될지 모를 싸움에서 자신이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워할 뿐이었다. 이것은 비단 내 친구들만의 문제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임을 나는 이제 안다. 사람들은 해결 방법을 알지 못해 문제에서 외면하는 길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호 유가족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드높다. 작게는 자기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에서 크게는 직접 시위에 참가하는 일까지 다양한 직종과 나이대의 사람들이 세월호 문제를 잊지 않고 또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과연 현저하게 갈리는 두 집단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직접 대면하면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월 9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과 함께 청운동 세월호 농성장을 방문했다.

노동자연대 단체에 가입하기로 마음 먹은 뒤에 나 스스로 다짐했던 일들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행동을 우선시하자는 것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농성장 방문은 시위나 행진과 같은 직접적인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내겐 세월호 사건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무엇이 두렵길래

그러나 농성장 방문에서 내가 알게 된 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만은 아니었다. 뜨거운 햇볕 속에서 농성장으로 향하는 길, 무엇보다도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곳곳에 배치돼 있던 경찰들이었다. 3분 거리에 경찰서가 있는 아파트에 사는 나도 평생 한 두 번 볼까 말까 했던 많은 경찰들이 블록마다 자리해 있었다. 무엇을 그리 경계하는 것인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심히 살피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불현듯 지난 세월호 대학 행진 당시, 학생들의 뒤를 따라다니던 잠복경찰들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민중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들이 정의를 위한 학생들의 행진을 감시하는 상황에 매우 의아해하며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던가? 함께 농성장으로 향하는 동지들이 목에 걸었던 노란 리본을 벗고 경찰들에 대한 신랄한 말을 서슴지 않는 것에 나는 이 경찰들 또한 과거에 마주쳤던 경찰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다소 겁을 먹으며 도착한 장소에서 경찰들이 보여 준 모습들은 더욱 가관이었다. 승합차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샅샅이 살피거나 방문 목적을 캐묻는 등 마치 잠재적 범죄자를 대하듯 우리를 단속하려 드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가로막는 행태에 나는 깜짝 놀라며 이런 일이 익숙한 것처럼 무시로 일관하는 동지들의 뒤를 따라갔다.

사실 나는 유가족과의 만남을 고대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 어린 마음을 저버릴 길이 없었다. 사건 이 후 겨우 6개월, 그들이 겪었고 또 여전히 겪고 있는 고난과 슬픔은 평범한 스무 살의 여자아이가 감히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떻게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묵직해졌다. 가족들 앞에서 철없이 굴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심해야 할 판이었다.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나? 천막으로 들어서는 그 짧은 순간에 들었던 많은 번민들은 우리를 반기는 유가족들의 말간 미소를 마주하며 깨끗이 사라졌다. 지레 걱정하고 고민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유가족 그리고 유가족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밝고 유쾌하기 그지 없었다. 쭈뼛쭈뼛 서 있는 우리에게 안부의 인사를 건네며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은 모두 건강해 활력이 넘쳐 보일 정도였다. 나는 왜 이들이 힘없고 침중한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할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국제적 연대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가족 분들은 돌연 우리에게 노란 리본이 달린 목걸이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무엇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분주하게 끈을 매듭짓는 것부터 시작하던 나와 동지들은 반복되는 작업에 손이 익숙해질 무렵에서야 이 많은 목걸이들이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보낼 물건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은 정말이지 내게 뜻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단순히 글과 동지들의 설명으로만 익히 들었던 국제적인 노동자의 단결 정치! 그것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로 그 순간 경험했던 것이다. 홍콩과 한국의 문제들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자꾸 흥분되는 마음에 엇나가는 손을 진정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말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의 일들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작업이 마무리 되어가던 즈음에 농성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둘러 앉아 유가족과 그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좀 전의 경험으로 다소 들뜬 상태에 있던 나 역시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을 경청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오가는 대담에 공감하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그를 지켜보며 다시 한 번 세월호 문제에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발언권이 유가족에게 넘어가며 전에 없이 진솔하고 속 깊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침몰하는 배를 눈 앞에 두고도 아무 일을 하지 못했던 무력감, 방관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 아이를 잃은 슬픔, 그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의 나날들을 이야기하는 유가족의 모습에 그 자리를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며 그 아픔을 함께 공유했다. 특히, 실종자 가족들이 자신들 역시 하루 빨리 유가족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이야기하자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침통해 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남아있는데, 과연 세월호 사건이 끝났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가슴 깊은 곳에 울림으로 남는 이야기를 마음에 담으며 나는 세월호 농성장을 찾은 이유를 되새겼다. 이 끝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자신을 평범한 주부라 소개하며 말을 이어나간 여성 분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자녀 둘을 슬하에 두고 있는 이 여성은 처음 세월호 사건을 알게 된 후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나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뿐 그 이상 무언가의 실천으로 나아갈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바로 세월호에 탑승한 단원고 학생들이 태안해병대 캠프사고를 간발의 차로 면했던 학생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순간 더는 세월호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자신들의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고,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행동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말했다.

끝나지 않은 세월호

나는 바로 거기서 내가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마냥 ‘도움을 주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사건은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바로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들의 일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로도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를 멈추는 일이 없고 이윤을 쫓아 생명을 경원시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행동하고 변화해 나아가야 하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작중의 상황을 무기력하게 외면하는 것이나, 안타까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이 것이 우리의 문제임을 직시하고 단결하여 다같이 정부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농성장 방문은 단순히 유가족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목적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함께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지는 의미도 함께 있었음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어둠이 자욱하여 거리를 비추는 가게의 모습들만 얼추 환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오는 길과 다르게 모두의 목에 걸린 노란 리본들이 선명하며 육안에도 뚜렷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마음이 벅차오름에 리본을 달랑이며 걷고 있는데, 올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들이 거리 곳곳에 자리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어두운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두리번거리는 그들의 모습이 나는 더 이상 겁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