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의 민주노조 탄압 정책이 공무원노조, 전교조에 이어 통합건강보험노동조합(이하 건강보험노조)에까지 미치고 있다.

건강보험노조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이하 사회보험지부)와 한국노총 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이하 직장노조)가 10월 1일에 통합해 만든 새 노조다.

10월 2일 고용노동부는 노조가 제출한 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노조 규약을 문제 삼은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규약을 시정하고 해고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에 박근혜 정부는 같은 이유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를 공격했다.

노동부는 단협 체결 시 조합원 총회의 승인을 얻도록 돼 있는 규약도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위원장이 조합원의 의사를 거슬러 단협을 체결하지 못하게 막아 놓은 민주적 절차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규약 시정 요구는 노조의 자주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공격이다. 조합원 자격은 노동조합원들이 스스로 정할 문제이지 정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해고자 배제 요구는 노조의 투쟁력을 훼손하려는 것이다. 해고자들은 그동안 정부와 사측에 맞서 앞장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해고됐다. 만약 해고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다면 앞으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과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투쟁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도 건강보험노조 집행부는 정부의 규약시정 요구를 수용하려 한다.

규약시정 요구

우선, 이것은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미 9월 24일에 열린 노조 중앙운영위원회는 72퍼센트의 찬성으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10월 1일 조합원총회에서는 조합원의 82퍼센트가 이 안에 찬성했다.

조합원들은 박근혜 정부가 해고자 조항을 빌미로 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이렇게 결정했다. 조합원들은 노조 집행부가 후퇴하지 말고 노조의 자주성을 지키라는 뜻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도 집행부는 정부가 설립신고서를 반려하자마자 중앙운영위원회를 다시 소집해 규약 시정 요구를 수용하자는 안을 제출했다. 조합원들의 결정을 채 한 달도 안 돼 뒤집으려 한 것이다. 10월 23일 열린 중앙운영위원회에서도 중앙위원 다수가 집행부의 규약 시정 요구 수용 입장에 반대 의견을 냈고 해고자들도 항의했다. 그러나 위원장은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직권으로 규약 시정 안건을 총투표에 부치려 한다.

건강보험노조 집행부는 통합노조 설립 신고가 반려되면 ‘무노조 무단협’ 상태에 빠진다는 논리로 후퇴를 정당화한다. 사회보험지부 집행부는 통합 직전 단협에서도 똑같은 논리로 정부의 ‘정상화’ 단협 개악 요구를 수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단협 개악 당시에도 많은 조합원들은 “과연 이것이 통합의 정신인가” 하고 물었다. 사회보험지부와 직장노조가 통합하기로 결정한 것은 통합을 통해 노조의 힘을 강화해 정부와 사측에 맞서 더 효과적으로 싸우고,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통합 노조 설립을 위해 단협을 개악하고, 앞장서 투쟁하다 해고된 동지들을 내친다면 노조의 단결력과 투쟁력은 오히려 약화될 것이다.

또, 설립신고가 반려되면 곧바로 무단협 상태가 된다는 것도 과장이다. 새 노조의 설립신고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기존 노조의 단협이 유효하다. 설사 정부가 단협을 해지하려 해도, 노조 집행부는 기존 단협의 유효성을 주장하며 투쟁해야 한다.

건강보험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반발을 의식해, 규약은 노동부 요구대로 바꾸되 내부 ‘희생자구제 규정’을 개정해 해고자의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원칙한 실용주의일 뿐이다. 해고자를 배제하라고 요구한 정부가 노조 내부 규정은 문제 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나중에 정부가 규약에 맞춰 내부 규정도 바꾸라고 하면 하면 그때는 무슨 논리로 해고자들을 지킬 것인가.

무엇보다, 한 번 무원칙하게 후퇴하면 노동자들의 사기 저하와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을 막기 어렵다.

지난해 전교조 조합원들은 정부의 탄압을 예상하면서도 규약시정명령을 용기 있게 거부했다. 그 결과 조합원들의 사기와 결속력이 높아졌고, 당사자들이 싸우려 하자 전교조를 지키려는 광범한 연대도 확대될 수 있었다. 덕분에 전교조는 두 차례의 법원 판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반면, 지난해 공무원노조 지도부는 정부의 요구대로 해고자를 배제하는 규약 개정을 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스스로의 사기저하를 불렀을 뿐 아니라, 정부의 법외노조 공격을 막지도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끝내 설립신고를 반려하며 노조 지도부의 뒤통수를 쳤다. 규약 개정은 저들의 사기만 올려준 것이다.

건강보험노조가 해고자를 조합원에서 삭제한다면 앞으로도 정부는 다른 노조들에 해고자를 빌미로 노조 설립의 자유를 박탈하려 들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정부의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전교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건강보험노조 조합원들이 10월 27일 총회에서 지난 총회 결정을 재확인하고, 박근혜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