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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의 경제학자들》:
재벌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한국의 경제학자들》, 이정환 지음, 생각정원, 392쪽, 16,000원

많은 사람들이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온갖 부정부패와 탈세, 노동탄압 등을 벌이는 재벌에 반감이 크다.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화두고 이를 위해 다양한 논쟁과 실험이 벌어졌다.

최근 출간된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재벌 개혁에 관한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삼성이 3대 세습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삼성의 개혁 방향을 모색하고자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요약 정리했다.

지난 10여 년간 계속된 재벌 개혁 논쟁에서 핵심적인 축은 김상조 등이 주장한 재벌 개혁론과 장하준 등이 제기한 재벌 타협론 사이에서 벌어졌다. 따라서 저자는 장하준, 김상조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좌우의 스펙트럼을 따졌을 때 가장 좌측부터 김성구, 김상봉, 장하준, 이병천, 김상조, 장하성, 김정호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외에도 20명에 가까운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장하준은 “삼성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것은 주주 자본주의의 단기 실적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주 자본주의란 주주가치 극대화를 경영의 중심에 두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말이다.

장하준은 이건희나 이재용 같은 재벌 소유주는 삼성전자의 10년이나 20년 뒤를 보고 투자하지만, 나머지 주주 대부분은 당장 올해 실적이 안 좋으면 주식을 내다 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단기 실적주의가 커진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 같은 재벌이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서 경영권을 보장해 주고 그 대가로 국민 경제에 기여하게 하자는 것이 장하준의 대타협론이다. “황제경영을 합법화하는 대신 … 연구개발 투자와 노동권 보장, 부자 증세 등도 반드시 받아 내자”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김상조는 재벌의 독점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부를 가로채고,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핵심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주주 자본주의를 강화해 재벌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순환출자 금지나 출자총액제한, 금융산업 분리 등을 통해 재벌에 집중된 경제력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관료에게 기대느니 “시장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벌이냐 주주자본주의냐, 국가냐 시장이냐 하는 문제에서 장하준과 김상조의 주장은 대립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바로 재벌과 주주 자본주의를 일면적인 대립관계로 보면서 한쪽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주장이 서로의 약점을 비판할 때는 꽤나 날카롭지만 둘 다 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약점이 있다.

이분법

장하준은 경제 위기와 불평등 확대를 금융자본과 주주 자본의 책임으로 돌리지만 이는 재벌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산업화를 하던 때에도 극심한 불평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도 단지 주주나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벌과 같은 거대 산업자본과 국가 관료가 합심해서 추진해 왔다.

이 책의 저자도 오랫동안 장하준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재벌을 내세워 주주 자본주의와 맞서게 만들자는 발상은 참신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무망하기 짝이 없다” 하고 밝히고 있다. 삼성은 주주 자본주의와 맞서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결탁했고, 노동자들을 탄압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렸고 주주들에게는 두둑한 배당을 줬다. 외국 금융자본과 국내 산업자본의 이분법은 적절하지 않고 재벌체제를 대안으로 모색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김상조는 재벌에 맞서 소액주주운동 등을 벌였지만 이는 진보적인 개혁이 아니라 기존 경영자에 맞서 다른 종류의 자본가에 힘을 실어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 소액주주 운동은 “배당을 늘리라는 등의 요구로 주식시장의 큰손들, 기관 투자자들과 외국계 펀드들이 훨씬 더 큰 혜택”을 봤다.

특히 주주 행동주의를 걸고 가장 멀리까지 나갔던 장하성 펀드가 실패한 경험은 주주 자본주의 강화를 주장했던 진영에 큰 상처를 남겼다. 장하성 펀드는 국내외 투기자본을 동원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성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장하성 펀드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었던 반면 펀드 투자자들을 위해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국 “장하성 펀드는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이를 빌미로 배당에서 재미를 봤다는 평가”를 남기며 퇴장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비판이 확산되며 참여연대 내부에서도 소액주주 운동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언젠가부터 소액주주운동을 주주행동주의라는 말로 바꿔 부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장하준이나 김상조만이 아닌 다양한 논자들의 주장을 폭넓게 다루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병천은 “장하준 교수 등이 재벌을 신자유주의 피해자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졌다면 김상조 교수 등은 공정한 시장 경쟁을 강조하면서 정작 양극화와 경제력 집중 문제에 소홀했다”고 비판한다. “딜레마에 빠진 재벌 개혁의 대안은 이해 당사자의 참여와 협력의 책임 자본주의”를 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이사회 구성에서 주주의 자리를 35퍼센트, 노동자 35퍼센트, 채권자로서 주거래 은행과 기관 투자자 등 나머지 이해당사자들을 30퍼센트로 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노동조합 대표가 경영에 참가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모델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도 경제 위기 시기에 임금 삭감과 복지 삭감 등을 막지는 못했고 기업의 탐욕을 제어하는 제대로 된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급진적 대안

김상봉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인 대안을 말한다. 엔론은 전문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무너졌다면 포드는 오너 경영인의 독선적 경영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주주자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전문 경영인 체제나 재벌타협론자들이 주장하는 재벌 체제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주주에게는 배당을 주되 경영권은 노동자들에게 주자고 제기한다. 삼성전자의 사장을 노동자들이 선거로 뽑자는 이야기다.

이는 재벌이나 주주들 등 자본가들 중 일부 분파에게 권력을 더 주자고 제기하는 것보다는 나은 주장이다.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은 기업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에도 키친아트처럼 노동자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협동조합 기업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많은 협동조합 실험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협동조합들이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보여 줬다. 협동조합은 시장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다른 기업과 경쟁에서 패배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이윤논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로는 김성구 교수 한 명만 소개하고 있다. 김성구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을 고수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거나, 자본의 경쟁 때문에 집적과 집중이 강화된 상황에서 대자본을 소자본으로 쪼개는 것은 공상적인 생각이라는 타당한 주장을 한다. 김성구 교수는 재벌의 사회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그 구체적인 상이 무엇인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책에서는 다양한 재벌개혁론을 소개하지만 그중 많은 논자들이 비슷한 약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바로 특정 자본에 맞서 다른 자본과 동맹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장하준 등은 금융자본에 맞서 재벌과, 김상조 등은 재벌에 맞서 소액 주주나 중소 자본가와 동맹을 주장한다. 이병천은 기업 경영에 자본과 노동이 공동으로 이해를 반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자본이건 자본은 공유하는 이해관계가 있다. 바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탐욕스럽게 이윤을 추구한다는 특징이다. 특히 자본주의에서는 다양한 자본이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선한 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자본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이윤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정 기업만 똑 떼어내서 지배 구조를 바꾸는 것은 재벌의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의 탐욕스런 이윤 논리를 약화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논리를 약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기업 경쟁력 논리를 수용하지 않고 일관되게 노동계급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재벌의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최저임금을 포함한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달성하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이에 동참해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벌였던 파업 투쟁,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산업재해 인정 투쟁과 함께 세월호 참사 항의운동, 지배계급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벌어지는 다양한 투쟁들을 성장시키는 것을 통해 이윤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런 투쟁을 강화해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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