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산별 노조는 임단협을 하고, 민주노총은 정치투쟁을 하자는 것은 일종의 역할 분담론이다. 개혁주의에 특징적인 정치 운동과 경제 운동의 분업이 노동운동 내에서도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부분의 투쟁이라 해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이 걸린 투쟁이 될 수 있다. 개별 투쟁들의 성패가 불가피하게 전체 계급 세력균형에 영향을 주곤 한다.

그러나 역할 분담론은 민주노총이 매우 중요한 부분의 투쟁에 대한 연대 건설을 회피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했다.

비정규직 악법 시행 시기와 맞물린 2007년 이랜드·뉴코아 점거 파업은 비정규직 악법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비정규직 의제를 한국 사회의 중심에 올려 놓았다. 파업은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수호―조준호 집행부를 계승한 이석행 집행부는 외곽 지원만 조직했을 뿐, 실질적인 연대 조직은 서비스연맹에 맡겨 놓았다. 투쟁은 결국 1년을 넘게 끄는 장기 투쟁으로 가야 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와 이에 맞서는 점거 파업도 경제 위기 고통전가 문제에 대한 불만의 초점을 이뤘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간이나 공장을 점거하고 살인 진압에 맞선 것은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기업주들이 똘똘 뭉쳐 공격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도 노동계급 전체의 방어를 조직해야 했다. 그러나 통합 집행부였던 임성규 집행부는 이런 책임을 회피했다. 오히려 양보교섭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연대 파업 책임은 금속노조로 넘겨졌고, 금속노조 지도부는 질질 끌며 경찰에 진압되면 연대 파업을 벌이겠다는 등 투쟁을 회피했고, 결국 파업은 패배했다.

박근혜 정부의 각개격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민영화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고 벌인 철도 민영화에 맞선 파업에 민주노총이 제대로 맞서지 못해 투쟁은 어려움을 더 겪었다.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 운동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능력이 적용되지 못한 것도 덧붙여야겠다. 왜 노동자들은 그들의 직접적인,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만 파업할 수 있다고 노조 지도자들은 보는가? 5월부터 교황 방문 때까지 적어도 두 차례 항의성 하루 또는 이틀 총파업의 기회가 있었다. 또는 임단투 시기 조율 방법으로 정권의 핵심 기반인 대기업의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제 투쟁적 조합원들은 이런 무사안일한 지도자들을 뽑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