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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정치 방침” 관련 ‘노동자연대’의 입장이 “4번 진영 후보와 같은 성격”이라는:
허영구 후보의 기회주의적인 발언에 답함

허영구 후보가 민주노총 ‘정치 방침’과 관련해 넌지시 ‘노동자연대’를 겨냥하면서 “4번 진영 후보와 같은 성격”이라고 비판했다. 11월 29일 ‘2014년 민주노총 선거 위원장 후보자 TV토론’(〈국민TV〉)에서 허 후보는 “다 아시리라 생각해” “[단체] 이름을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누가 봐도 허 후보가 가리킨 단체는 우리 단체였다.[올해 3월에 ‘노동자연대’로 이름을 바꾸기 전 단체명은 ‘다함께’(2001년 6월∼2014년 2월)였다. 이 글에서는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편의상 노동자연대로 통일했다.]

노동자연대가 (1) “2002년 대선 때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는 계급 투표”라고 했고, (2)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2010년 지방선거 때 진보정당 통합을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한다고 입장을 밝힌다”고 했으니 (3) 고로, “배타적 지지나 진보대통합, 큰 틀에서 보면 4번 진영 후보와 같은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허 후보가 TV 토론에서 55초 동안 발언한 내용이다. 논리 비약이 심한데다 견강부회다.

아마 허 후보는 한상균 선본 내 차이를 부각시킬 의도였던 것 같다. 과거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이나 2010∼11년 진보대통합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를 놓고 한상균 선본에 참여한 단체들 간에 이견이 있다.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분열 이후 전변한 진보 정치 배치 상태로 말미암아 사실상 실효성도 없어진 이 쟁점들이 지금 민주노총에 단연 중요한 문제일까?

물론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이 무시해도 좋을 만한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수는 없다. 지금 민주노총에 단연 중요한 과제는 박근혜 정부의 파상 공세에 맞서 어떻게 노동계급의 조건과 이익을 방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럴 때 저마다 다른 정치 프로젝트를 민주노총이 채택하도록 강요하려다 노동조합이 분열하게 만드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노동자연대는 이런 상황 인식에 따라 “투쟁하는 민주노총”을 강조하는 한상균 선본에 참여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정치 방침”을 중요한 선거 쟁점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후보들이 있다. 허 후보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성을 그으려고, 전재환 후보 진영(아마도 정용건 후보 진영도)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이른바 ‘어게인 민주노동당’) 허망한 발상에서 그렇게 하는 듯하다.

이 글에서 허 후보 진영의 정치 프로젝트를 세세하게 다룰 수는 없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신 분이 해당 단체의 입장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먼저, (1)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허 후보에게 묻고 싶다. 즉,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해서는 안 됐다는 말인가? 또,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한 게 “계급 투표”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인가?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결정하던 시기에 허 후보는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었다. 2002년에도 발전 파업과 관련해 노동부와 민주노총의 “잠정 합의안”에 책임지고 사퇴할 때까지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이기도 했다.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후보로도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 허 후보는 보수 정당들과의 공조, 특히 열린우리당과의 정책 공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정책 공조가 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허 후보가 요즘 하도 야권연대 무조건 반대를 주장하시길래 한마디 보탠다.

물론 견해가 바뀔 수는 있다.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다만, 견해가 바뀌었으면 바뀌었다고 밝히고, 왜 바뀌었는지를 말하는 게 정치적으로 정직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슬그머니 견해를 바꿔 다른 단체를 공격하는 것은 부정직한 태도다.

“배타적 지지” 방침

민주노동당은 1987년 이래 꾸준히 확산돼 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염원의 표현이었다. 허 후보도 TV 토론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2000년 들어와서 노동자 정치가 정치 쟁점화되고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 진보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핵심 기반은 언제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었다.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은 조직 노동자들 대부분이 더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에 정치적으로 의탁하지 않고 자체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반영했다. 비록 그 당의 지도자들이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과 정치적으로 단절하지 못하는 약점을 때때로 드러내곤 했지만 말이다. 당 역사의 후기로 갈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부의 배신과 개혁 파탄으로 생겨난 왼쪽 공백을 일부 메우는 구실을 했다. 물론 혁명적 강령에 근거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개혁주의적 강령에 근거해서 그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로 그 이유로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급진좌파들은 민주노동당에 비타협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예컨대, 옛 사회당(좌파노동자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의 지도자들은 민주노동당을 “가짜 노동당”이라고 규정하며 흔히 종파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개혁주의자들과 그들이 노동자 계급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1백 년도 더 넘는 역사적 교훈 하나는 사회민주주의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라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을 지지하는 노동자 대중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기 위한 전술들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혁명가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공동전선 전술들을 발전시켰다.(노동자연대는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입당 전술을 사용했다.)

2002년 대선, “계급 투표”, 사회당의 ‘사회주의 후보’ 전술

허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 게 “계급 투표”가 아니라고 함축한다. 당시 대선에서 이회창 VS 노무현 VS 권영길이 대결했다. 이회창은 자본가 계급이 지원하는 주류 정당의 후보였다. 노무현은 자본가 계급 비주류 정당의 후보였다. 물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많은 개혁주의자들도 그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한편, 권영길은 조직 노동자 계급의 공식적인 후보였다. 이 대결 구도에서 노동자들이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계급 투표”가 아니고 무엇인가.

혹시 허 후보가 김영규 후보를 출마시킨 사회당-좌파노동자회 쪽에 아첨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회당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의 선거 연합을 거부했다. 민주노동당을 NL, 개량주의자들,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의 타락한 지도자들이 결탁해 만든 “주류 연합”이자 “타협적이고 개량주의적 사회민주주의” 당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파는 우선 모여서 하나가 되어야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주사-국민파, 개량-중앙파를 밀어내고 공식적 대중 권력이 됨으로써 대중을 분기시켜 이 더러운 체제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사회당 대선기획위원회, 〈통일 좌파〉)

사회당 지도부는 전체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과 극소수 노동자의 정서를 완전히 혼동했다. 선진 노동자 대중은 당시 노동조합의 울타리를 넘어 정치화의 여정을 막 시작했다. 계급의 의식이 불균등하게 발전하므로 이 과정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게다가 당시 대선에서 권영길과 노무현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뜨거운 정치 논쟁의 일부였다. 당시 정통 스탈린주의 NL 경향이 차악 논리를 내세우며 노무현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냐 사회당이냐 하는 문제는 극소수 좌파의 관심사였을 뿐이다.

원칙과 전술을 구별할 줄 아는 현명한 좌파라면 전술 문제에서 대중의 경험과 의식을 건너뛰는 미숙한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당은 애써, 부자연스럽게 자신을 민주노동당과 구별지으려 했다. 사회당은 ‘사회주의 후보’ 전술을 채택했다. 그러나 사회당이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호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한다는 민주노동당 강령과 어떻게 다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당은 굳이 “사회주의”라는 ‘변별적 표지’를 내세우며 대선에 따로 출마했다. 결과적으로 사회당의 선거 전술은 사회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영규 후보는 겨우 2만 2천여 표(0.1퍼센트)를 득표했다.(권영길 후보는 95만 7천여 표를 득표했다.)

그렇다고 지금 “배타적 지지” 방침이 필요하다거나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아님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이후 노동자연대는 이미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해칠 위험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연대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잣대는 노동계급의 단결이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선진 노동자들의 정치적 단결 정서는 배타적 지지 방침 철회보다는 압도적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통합 요구로 나타났다. 노동자연대가 2010∼11년 진보대통합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2011년 9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은 좌절됐다. 이를 명분으로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오히려 그해 11월 참여당과 통합하는 지경으로 나아갔다. 노동자 계급의 장기적 이익을 희생시켜 단기적(특히 선거를 겨냥한)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한 정당만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려 한다면 노동계급의 단결을 크게 훼손하고 큰 분란을 자초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이 복수의 진보 정당에 지지를 개방하는 진보 다원주의 정치 방침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나라당과 민주당 같은 노골적인 자본주의적 정당을 지지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다.

진보대통합

앞에서 밝혔듯이, 노동자연대가 2010∼11년 진보대통합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은 사실이다.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을 제외한 진보 정치 세력들의 연합을 통해 자본가 정당들 왼쪽에서 정치 대안을 구축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자주파의 ‘진보대통합’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을 최종 목표로 한 인민전선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주파는 참여당 같은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도 포함하는 ‘진보대통합’을 추진했다. 즉, 자주파의 노선은 참여당을 포함한 ‘진보대통합’ → 민주당과의 전략적인 야권연대 → 연립정부 수립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전재환 후보 진영 내 전국회의 경향은 지금도 인민전선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11월 23일 진보당 임시당대회에서 통과된 ‘단결과 혁신안’을 보라. “우리는 진보대통합에 튼튼히 기초해서 야권연대를 복원하기 위해 앞장서 노력해 나갈 것이다.”

물론 전재환 후보 진영은 공식적으로 진보대통합(소위 반박근혜전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내부 사정은 복잡하다. 전국회의는 인민전선을 희망한다. 반면, 나순자 사무총장 후보가 속해 있는 노동·정치·연대는 진보당과의 사안별 연대를 넘는 조직 통합은 한동안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전재환 위원장 후보는 진보 정치의 사분오열과 갈등에 실망한 나머지 실제로는 진보 정치 재편에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속사정을 알면, 전재환 후보 조의 진보대통합 공약이 민주노총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명분용이자 담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동자연대는 이미 2010∼11년 자주파의 인민전선적 진보대통합 노선에 반대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안타깝게도 다른 급진좌파들은 이 중요한 투쟁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이상과 같은 상황 전개 과정을 모를 리 없는 허 후보가 느닷없이 노동자연대가 전재환 후보 진영의 진보대통합과 같은 입장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여전히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민주노총의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신 만큼 허 후보가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언사는 삼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