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자 김정욱, 이창근 동지의 굴뚝 농성이 47일째 되던 1월 28일, 노동자연대 회원들과 쌍용차 평택 공장을 찾았다. 유난히 바람이 찬 이날도 쌍용차지부 해고자들은 어김없이 오전 7시부터 정문 앞 출근 투쟁을 벌였다.

한 시간 남짓 팻말을 들고 있는 동안 2009년 뜨거웠던 점거파업, 줄 이은 비극적 죽음들, 희망텐트와 고공 농성, 무급휴직자 복귀까지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다 문뜩 출근길 노동자들의 사뭇 달라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노동자들이 출입구 앞에서 “힘내라! 김정욱, 이창근” 팻말을 든 해고자에게 격려의 눈인사를 건넸다. 일부는 건너편에 있던 해고자들에게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했고, 멀리서 손을 들어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1~2년 전만 해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노동자들은 미안한 마음에, 사측의 눈치를 보며, 때로 ‘산 자’와 ‘죽은 자’가 충돌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해고자들의 눈길을 피했었다. 지난 1년 넘게 공장 안 동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지지를 호소한 해고자들의 노력이 변화를 만든 것이다. 

출근 투쟁이 끝나고 바로 옆 쌍용차지부 사무실로 향했다. 난로 옆에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해고자가 이날 뿌려진 사측의 유인물을 들고 문제 있는 대목을 하나하나 꼬집어 줬다. 

“이것 좀 봐. ‘8·6 합의서 정신’에 따라 교섭을 하겠다잖아. 믿을 수가 없는 놈들이라니까.”

정말이지, 그것은 사측의 교섭 방향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했다. 6년 만의 첫 실무교섭을 하루 앞두고 나온 사측 유인물에는 “3자 대화, 8·6 노사합의서 정신에 입각해 충분한 시간과 검토 필요”라고 적혀 있었다. 

8·6 합의는 2009년 점거파업 말미에 체결된 노사 합의서로, 향후 신규인력 필요 시 무급휴직자·희망퇴직자를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고자 복직은 명시하지 않았다.

양형근 쌍용차지부 조직실장은 이어진 노동자연대 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지금 언론들이 너무 앞서 가고 있다. 마치 해고자 문제가 다 끝날 것처럼 떠들썩한데, 상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측은 신차 티볼리 판매를 확대하려고 해고자들과 대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시간을 질질 끌며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 할 것이란 얘기였다.

갈라치기

“우리는 정리해고자, 징계해고자, 비정규직 포함 1백87명 복직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측은 전원 일괄 복직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벌써 8·6 합의를 들고 나온 걸 봐요. 사측은 계속 희망퇴직자들이 우선이라고 말했고, 그중에서도 애초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던 이들을 선호할 수 있어요.

“올 6월에 티볼리 디젤이, 10월에 티볼리 롱이 출시돼요. 신규 인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죠. 이럴 때 해고자들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다 받지도 않을 거예요. 아마도 비율을 정해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신규채용 규모를 정하려 할 수 있어요. 또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할 겁니다.”

손배가압류나 사망자 26명에 대한 피해 보상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이 때문에 양 실장은 “교섭에만 기대지 말고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교섭 국면이 열리면서 생활전선에 나섰던 해고자들이 속속 지부로 모여들고 있다. 1월 24일에는 오랜만에 해고자 1백30여 명이 모여 결의대회를 하고 쌍용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 양 실장은 “이런 힘이 모여야 교섭에서도 사측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부는 대법원이 파기 환송한 정리해고 무효 소송도 다시 준비하고 있다. 변호인단도 확대했다. 8·6 합의가 있는 한, 해고자 복직 문제를 풀려면 법적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봐서다.

양 실장은 조심스럽게 국민모임을 언급하며, “정치권의 새로운 변화 지형”을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의 힘을 빌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의 반영일 것이다.

실제 사측이나 정치권을 압박하려면, 무엇보다 투쟁의 힘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쌍용차 해고자들도 민주노총의 한상균 집행부에 거는 기대가 상당해 보였다. “올해는 민주노총이 싸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쌍용차에도 힘이 될 것입니다.”

공장 안의 변화

쌍용차지부는 공장 안에서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한동안 공장에 소홀했어요. 1년이 넘은 것 같아요. 공장 앞으로 거점을 옮긴 게.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으니, 여기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매일같이 출근 투쟁을 하고 노력을 하면서, 많이 변했어요. 

“처음에는 서로 원망도 하고 서먹함도 있었죠. 무급휴직자들이 들어갈 때도 몇몇 동지들은 ‘싸움은 우리가 했는데’ 하면서 서운해 했지만, 지부는 그 동지들의 복귀를 축하했어요. 사실 열심히 싸운 사람들이 복직돼야 하는 게 맞죠. 그렇다고 우리만 살자고 할 수는 없어요. 쌍용차 투쟁은 우리 만의 싸움도 아니고,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구조조정의 피해자입니다. 정리해고는 피했지만, 노동강도가 너무 세졌거든요. 두 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니까요. 공장 안에서도 3명이나 자살했죠.”

그런데도 수년째 무쟁의, 노사화합선언 등에 골몰하는 기업노조 지도부에 대한 불만도 쌓이고 있다. 

“2주 전인가, 공장 안에서 기업노조 위원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삐라가 뿌려졌어요. 사측에 돈을 받고 황제 골프에, 명품에… 온갖 특혜를 누린 거죠. 기업노조 위원장이 올해 선거에 또 나온다고 했는데, 지금 코너로 몰렸어요. 이런 상황에서, 민주파도 출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양 실장은 좀 더 긴 안목에서 마힌드라의 먹튀 가능성에 대비해 공기업화 등의 대안을 주장할 준비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순차적으로라도 해고자들이 복직한다 해도, 마힌드라가 또 상하이차처럼 먹고 튀지 말란 법이 없어요. 상하이차도 4년 만에 먹튀 했잖아요. 마힌드라도 티볼리 판매가 줄면 금세 손을 뗄 수 있어요. 이럴 때 당하지 않으려면, 공기업화나 사회적 기업 같은 대안도 준비해야 해요.”

우리는 간담회를 마치고 김정욱, 이창근 동지가 있는 굴뚝 옆 남문으로 이동했다. 굴뚝 가장 가까운 공장 담벼락 옆에 작은 트럭으로 만든 농성장이 있었다. 해고자들이 두 명씩 돌아가며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여보세요?” 이창근 동지와 영상 통화가 닿았다. “여보세요? 어, 어 잠깐만!” 이창근 동지는 서둘러 빗을 꺼내 머리를 빗었다. 쌍용차 범국민대회 영상에서도 보여 줬던 말끔한 고공농성자 이미지 그대로였다. “아니, 내가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머리를 못 감아서 빗어 줘야 한다니까.”

보병전

얘기하는 내내 이창근 동지는 밝았다. 춥고 좁은 곳에서 농성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굴뚝 위 동지들은 결연해 보였고 여유도 느껴졌다. “교섭이 시작됐지만 금방 안 끝날 거예요. 이번에는 꼭 해결을 봐야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버텨야죠. 우리 몸이 무기라는 말이 정말 농담이 아니라니까.” 

이창근 동지는 연대 투쟁에 힘써 달라고 강조했다. “여기서는 공중전을 하는 거고, SNS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보다 중요한 건 보병들이에요. 진보진영이 할 역할이 거기 있다고 봐요. 보병전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는 아래서 싸우는 해고자들이 투쟁을 지속할 수 있게 응원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정욱 동지는 공장 안 노동자들의 지지에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굴뚝 아래에 들렀다 가요. 생각지도 못했던 동료들이 힘내라고 문자도 보내 줍니다. 이런 지지가 없으면, 우리가 공장 안 굴뚝에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여러 연대 단체들의 힘으로 우리 투쟁이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도 그 힘으로 버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더 힘을 모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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