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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과 노동자 증세 논란:
누가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가?

연말정산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2013년에 추진한 세제 개편의 실체가 드러났다. 결과가 보여 주듯 핵심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세를 올리는 것이었다. 당장 2월에 월급이 대폭 깎여 나오는 노동자가 부지기수일 듯하다.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의 불만이 대단하다.

어찌나 불만이 광범한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박근혜 정부조차 눈치를 살피고 있다. 주민세, 자동차세 등 이미 예고한 증세 계획을 거둬들이고 있다. 건강보험료 인상 계획도 백지화했다. 좀처럼 듣기 힘들다는 박근혜의 “유감” 표현도 나왔다.

1월 24일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리해고 철회 범국민대회’ ⓒ이윤선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로 세수 자체가 줄어들 게 뻔한 상황에서도 재벌과 기업주 등 부자들의 이익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다 보니 복지 공약을 대거 축소했고, 지난해 세금도 예상보다 10조 원가량 적게 걷혔다. 이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내놓은 대책도 조삼모사다. 극히 일부에게만 추가 감면을 해 주겠다고 한다. 3개월 분납 얘기에 노동자들은 ‘우리가 할부냐?’ 하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세금 폭탄’이라고 비판하지만, 그 당의 주요 인사들은 집권 시절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한 당사자들이다. 정규직 ‘철밥통’ 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자유주의 언론은 물론이고 유감스럽게도 진보진영과 노동자 운동 내에서조차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다. 심지어 증세의 기본 방향은 옳다는 얘기도 나온다.

예컨대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노동자들의 세금이 오른 것을 두고 ‘고소득자 증세’라고 부른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개별 가지에선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으나 전체 숲은 괜찮은 변화”라고 논평한다.

물론 소득세 증세로 일부 부유층의 세금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 조세체계가 근본적으로 불공평하므로 재분배 효과는 미미하다. 반면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노동자들의 부담은 상당히 는다.

현행 조세체계에서는 소득세를 인상하면 노동자들의 부담도 늘고, 소득세를 인하하면 부유층의 부담도 줄어들게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세 인상을 옹호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자 증세를 사실상 지지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사회주의자들은 세금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안은 무엇일까?

세금은 어디에 쓰나

박근혜 정부는 올해 약 3백70조 원의 세금을 거둘 예정이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은 교육, 보건, 복지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지출된다. 이런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노동조건 등을 위해서도 돈이 충분히 쓰여야 한다. 이는 ‘혈세낭비’가 아니라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하고 늘려야 하는 지출이다.

그러나 또 다른 큰 부분은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장해 주는 데 사용된다. 도로·철도·공항 등 사회간접자본은 이들의 이윤 획득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기업들의 토목 사업이기도 하다. 또한, 세금으로 개발된 기술이나 세금을 투자해 만든 공기업을 헐값에 넘겨 주기도 한다.

전쟁연습과 무기 수출, 주한미군 주둔에도 세금이 쓰인다. 검찰·경찰·국정원·법원 등 폭력 기구들을 유지하고,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고위 관료들에게 특혜를 주는 데에도 사용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큰 틀에서는 세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이견이 없다. 앞에서 언급한 항목 중 하나만 없애자고 해도 둘 다 길길이 날뛸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상대적으로 복지 지출에 관심 있는 척하지만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새누리당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개혁주의자들은 복지 지출을 늘리는 데 더 관심 있지만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성장 논리를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종종 딜레마에 빠진다. 정부가 기업을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폭력적 국가 기구들도 필요하다고 여기다 보니 국방비 등에 지출되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여긴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세금이 국방비와 기업 보조금으로 쓰이는 데 반대해 왔다. 그런 돈은 보건과 교육·연금·주택·빈곤 완화를 위한 보조금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 확대 등 경제 위기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데에도 쓰여야 한다.

정부는 세금을 어디에 쓸지 하는 용도뿐 아니라 어떻게 누구에게서 거둘지 하는 징세 대상과 방법도 정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부유층에게서 거둘지 아니면 서민층에게서 거둘지, 기업주들에게서 거둘지, 노동자들에게서 거둘지 정하는 것은 정치적인 선택이다. 세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직접세와 간접세다.

직접세

직접세는 정부가 사람이나 기업에 직접 부과하는 세금이다. 한국에는 크게 세 가지 직접세 — 법인세, 소득세, 사회보험료 — 가 있다.

직접세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누진율이 적용된다면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도 더 높아진다.

그러나 누진율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가장 소득이 많은 최상위층에게 적용되는 세율은 38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조차 연간 1억 5천만 원 이상(과세표준) 소득자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종합부동산세는 있으나마나한 수준이다. 게다가 이들은 공공연히 탈세를 하지만 정부의 단속 의지와 능력은 크게 부족하다. 이재용은 삼성 최대 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고작 16억 원을 세금으로 냈을 뿐이다.

반면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세율은 지나치게 높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지난해까지 소득의 15퍼센트를 세금으로 내던 노동자들의 상당수에게 24퍼센트의 세율이 적용된 것이다. 임금은 몇 년째 거의 제자리인데도 말이다. 전체 국민소득 중 임금노동자 전체에게 돌아가는 몫(노동소득분배율)은 60퍼센트밖에 안 된다. 대기업일수록 노동자 몫이 더 낮아져 상위 20대 기업은 50퍼센트도 안 된다.

법인세는 기업에게서 거두는 세금이다. 세율이 높기만 하다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나마 가장 합리적이고 좋은 세금이다. 노동자들을 착취해 사회적 부를 독점하는 자본가들에게서 직접 이윤을 회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인세는 가장 큰 세원이기도 하다. 법인세율을 몇 퍼센트만 올려도 당장 수조 원의 재원이 마련된다.

그러나 전임 정부들은 계속 법인세를 인하해 왔다. 지금은 가장 큰 대기업들의 실효세율이 16퍼센트밖에 안 된다. 노동자들이 내는 소득세보다도 세율이 낮다. 법인세를 인하해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기업 저축과 사내 유보금이 크게 늘었을 뿐이다.

사회보험료(건강보험, 국민연금 등)도 소득에 비례해 내도록 돼 있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의 절반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기업주들도 사회보험료 인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대체로 이 비용만큼 임금 인상을 억제해 왔다.

게다가 사회보험료는 소득세나 법인세와 달리 누진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상한선이 있어서 건강보험의 경우 월 소득 7천8백10만 원, 국민연금의 경우 월 소득 4백8만 원 이상인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보험료를 낸다.(보험료는 각각 4백68만 원, 36만 7천2백 원)

간접세

간접세는 크게 부가가치세와 소비세(담뱃세, 주세, 유류세 등)로 나뉜다. 이것들은 소득과 관계없이 상품 가격에 일정 비율로 부과된다. 따라서 대체로 노동자들과 서민층에게 불리하고 부유층에게 유리한 세금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 간접세 비중이 절반이나 된다. 애당초 소득세율 조정 등으로 재분배를 강화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1970년대 말 이후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간접세를 늘리는 방식으로 세제를 고쳐 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자본가들의 국제 기구는 몇십 년째 이런 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유럽 복지국가들의 세제도 우리가 목표로 삼을 만큼 좋은 사례로 언급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공공요금에는 직접세 부분과 간접세 부분이 모두 있다. 그러나 직접세 부분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다른 직접세보다 더 약하고 간접세 부분의 역진성*은 더 크다.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것은 간접세를 대폭 올리는 효과를 낸다.

요컨대 지배자들은 간접세를 늘리고 직접세를 줄이려 한다. 직접세도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려 한다. 기업주들에게는 특혜를 주고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는다. 반면, 임금이 많든 적든 노동자들의 세금 부담은 지나치게 크다.

따라서 진정한 세제 개혁을 이루려면 첫째, 법인세를 인상해야 한다. 둘째, 직접세의 누진율을 대폭 올려야 한다. 셋째, 군사비 등 세금 낭비를 줄여야 한다. 넷째, 그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복지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는 한편 간접세를 대폭 줄이고 노동자들의 직접세 부담도 줄어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세금부터 올려서 복지를 늘리자는 진보진영 내 일부의 양보론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진정한 대안을 사실상 포기해 오히려 복지 확대를 방해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이 헛수고로 끝나지 않으려면 기업주들이 세금 부담을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물가를 통제해야 한다. 무상보육,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복지 정책은 강력한 물가 통제 효과도 있으므로 일석이조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 위기 시기에 이를 쟁취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