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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중적 반긴축 정서가 양당 정치 체제를 뒤흔들다

5월 24일 스페인 17개 주 가운데 13개 주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그동안 긴축을 시행한 우파들이 패배했다.

집권당인 우파 정당 국민당(PP)은 약 2백50만 표를 잃어, 지난 선거에 비해 지지율이 10퍼센트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26.7퍼센트). 국민당은 단독 과반으로 통치해 온 몇몇 주에서 다수당 지위를 상실했다. 신생 우파 정당인 시민당도 전국적으로 6.5퍼센트를 얻는 데 그쳤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PSOE)도 지난 선거에 비해 70만 표 가까이 잃었다(지지율 25.2퍼센트). 독재자 프랑코 사망 후 40여 년간 둘이 합쳐 80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스페인 정치를 지배해 온 양당 구도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

반면, 사회당보다 왼쪽 세력의 표는 크게 늘었다. 포데모스를 비롯한 여러 정당과 좌파 단체들은 지역별로 다양하게 동맹을 맺고 선거에 출마했다. 좌파들의 득표를 모두 더하면 전국적으로 25퍼센트에 가깝다.

좌파들은 수도 마드리드와 스페인 제1의 산업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주택 압류 반대 운동의 주요 활동가로 유명한 아다 꼴라우가 좌파적 선거 연합 ‘바르셀로나 엔 꼬무’(바르셀로나가 함께)의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꼴라우는 44퍼센트를 득표해 바르셀로나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됐다.

국민당이 24년 동안 집권했던 수도 마드리드 시의회 선거에서는 포데모스가 속한 좌파적 선거 연합 ‘마드리드 아오라’(지금 마드리드)가 32퍼센트를 득표해 전체 57석 중 20석을 차지했다. 국민당은 21석을 얻어 단독 집권에 실패했다.

이 밖에도 여러 대도시에서 좌파적 선거 연합들이 큰 지지를 얻고 우파들이 타격을 입었다.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파시스트들에 맞선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선 연합’(UCFR) 캠페인이 성공을 거둬, 파시스트가 선거에서 참패하기도 했다.

스페인 지배자들은 지방선거로 정세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고자 했지만, 오히려 뿌리 깊은 양당 구도가 위기를 맞이했다. 이는 지난 6년에 걸친 강도 높은 긴축과 이에 맞선 투쟁이 낳은 결과다.

경제 위기와 긴축

스페인 경제는 2008년 경제 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전까지 스페인 경제는 신흥공업국의 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누렸지만, 신용 시장이 경색되면서 거품이 완전히 꺼져 버렸다. 일자리 수십만 개가 사라졌고, 1년에 10만 가구 이상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했다.

노동자 투쟁이 분출했다. 파업 건수가 경제 위기 이전에 비해 연간 수백 건 이상 늘었다. 특히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셌다.

기층 노동자들의 분노에 압력을 받은 양대 노총 노동자총연맹(UGT)과 노동자위원회(CCOO)는 2010년 9월 29일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전체 조합원 수보다도 많은 5백만 명 이상이 이날 파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당시 집권당이었던 사회당과 긴밀한 관계였던 UGT 지도부는 물론이고, 공산당과 긴밀했던 CCOO 지도부도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고 협상에 매달렸다.

결국 2011년 2월, 사회당과 양대 노총은 긴축 정책에 합의했다. 양대 노총이 긴축에 합의했기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의 사기가 매우 저하됐고,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하락했다.

사회당 정부는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7세로 올리고, 공공부문 임금을 5퍼센트 삭감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였다. 또, 향후 항구적으로 복지 재정을 삭감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재정 건전화를 명분으로 교육 재정을 22퍼센트 삭감했고, 대학 등록금이 16.7퍼센트 인상됐다.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인상폭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더 높아 66퍼센트에 이르렀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긴축 정책 때문에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11년 한 해에만 70만 명 이상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어서, 실업률이 26퍼센트, 청년 실업률은 57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가 빈곤선 이하로 떨어졌다.

고질적 문제였던 부패도 도마 위에 올랐다. 양대 주류 정당 인사들과 노총 지도자들까지 연루된 부패 스캔들로 2천여 명이 기소됐다. 그중 1백70여 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그런데도 실제로 감옥에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페인 국왕 일가의 심각한 사치와 부패도 사람들의 분노를 사, 국왕 퇴위를 요구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분노한 사람들’

2011년 6월 24일 스페인 '분노한 사람들'의 행진. ⓒ사진 출처 fotofortimbras (플리커)

아랍 혁명에 영감을 받아 2011년 5월 벌어진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 운동은 이런 상황에 대한 분노가 응축돼 폭발한 것이었다. 전국 50곳 이상의 도시에서 광장 수백 곳이 점거됐고, 수백만 명이 거리를 행진했다. 전체 인구의 약 25퍼센트인 1천만 명 이상이 이 운동에 참가했다.

이 운동은 긴축에 맞선 다른 투쟁들에 영감을 줬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탄생한 지역 대중 총회는 다른 여러 투쟁에서 교본이 됐다.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이 압류당하는 것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지역 총회를 본따 ‘주택융자피해자모임’(PAH, Plataforma de Afectados por la Hipoteca)을 만들었다. 이들은 주택 압류에 항의하는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운동을 건설했다.

광장 점거에 참여했던 급진적 활동가들은 지역 총회를 토대로 대중적 긴축 반대 운동 네트워크를 건설했다. 2014년 3월, 이들이 조직한 ‘존엄을 위한 행진’에는 2백만 명이 참가했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은 사기 저하에 빠져 있던 노동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2년 여름, 지역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고립돼 있던 광원 노동자들이 커다란 사회적 연대 속에 두 달에 걸친 전투적 파업을 벌였다.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집권당과의 협상을 중시하던 UGT와 CCOO 지도부도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떠밀렸다. 2012년 3월과 11월에 양대 노총이 조직한 하루 총파업이 두 차례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급진화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운동 그 자체로는 긴축을 막을 수 없었다. 사회당에 이어 집권한 국민당은 긴축을 더 맹렬하게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反)정치’만으로는 부족하고 개혁을 이룰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포데모스

포데모스 사무총장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사진 출처 Cyberfrancis(플리커)

포데모스 창당은 그런 개혁 염원을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젊은 대학강사·지식인 그룹이 주도적 구실을 했다. 이들은 ‘분노한 사람들’ 운동이 한창일 때는 인터넷 방송으로 운동 소식을 전하며 대변자 구실을 했다. 이후 이 그룹의 주요 인물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TV 토론에서 긴축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을 통렬히 공격해 널리 유명해졌다.

2014년 초 이글레시아스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자고 호소했다. 이글레시아스는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언어를 빌려 “우리의 민주주의를 납치한 자들에 대한 진정한 도전”이라는 슬로건 하에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포데모스가 만들어졌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 참가했던 좌파 활동가들이 “서클”을 조직해 지역 대중 총회와 포데모스 사이의 다리 구실을 했다.

포데모스는 급속히 성장했다. 포데모스는 국가부채 탕감, 조세도피처 폐지, 기본소득 보장, 연금 삭감 없이 65세에서 60세로 정년 단축 등을 내세워, 유럽의회 선거에서 1백20만 표(8퍼센트)를 득표했다. 포데모스는 같은 해 11월 여론조사에서 28.3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1위를 하기도 했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언어인 “진정한 민주주의”, “상식의 회복” 같은 슬로건 하에, 온건한 개혁을 염원하는 사람들부터 체제 변혁을 바라는 급진 좌파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정치를 가진 활동가·노동자·청년들이 포데모스에 입당했다.

이런 추상적 슬로건은 뚜렷한 의도에 따라 설정된 것이다. 이글레시아스와 그 주변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반체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식”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다음과 같은 슬로건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체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체제가 우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개념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라클라우는 국가기구가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벌어지는 “권력층” 대 “민중” 구도의 갈등이 전통적인 계급 적대를 대체했다고 주장했다. 이글레시아스도 좌파들이 전통적인 계급 분단선 개념을 “교리처럼 떠받들고 있다”며 “카스트(정치 엘리트) 대 민중[이라는] … 새로운 의식”이 계급 갈등을 대체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처럼 계급 갈등을 흐리는 포데모스 지도부의 정치는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다. 이런 관점 때문에 포데모스 지도부는 소수의 부패한 정치 엘리트에 맞서 나머지 모두가 단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례로, 이글레시아스와 함께 포데모스 창당 캠페인을 최초로 시작한 사람 중 한 명인 카롤리나 베스칸사는 기업인들이 대부분 “가치 있고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긴축 정책으로 득을 보는 것은 소수의 부패한 정치 엘리트가 아니라 계급으로서의 자본가들이다. 이런 관점으로는 구조조정, 주택 압류, 연금 삭감 등으로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하는 지배자들에 제대로 맞설 수 없다.

약점

또, 이글레시아스와 그 측근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부들, 특히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처럼 포데모스 지도부도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활용한 개혁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

소수의 정치 엘리트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포퓰리즘적 관점과 선거로 집권해 개혁을 이룬다는 전략 때문에, 포데모스 지도부는 집권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우려스러운 행보를 보인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책임감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며 유럽의회 선거 때 내놓은 공약을 온건하게 수정했다. ‘모든 국민에 기본소득 보장’ 공약을 삭제했고, 연금 삭감 없이 60세로 정년을 단축하겠다는 공약 또한 2011년 개악 이전 수준인 65세로 요구 수준을 완화했다. 무엇보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약이었던 국가부채 탕감 공약을 “국익에 비춰 재협상”으로 변경했다. 이는 포데모스 지도부가 모델로 삼는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들보다 더 온건한 수준으로 이동한 것이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이렇게 해서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서 지지를 얻으려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카스트’ 박멸”이라는 구호 아래 기업인들과 심지어 긴축에 책임이 있는 사회당과도 거리를 좁히려 곁눈질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위해서 포데모스 지도부는 당내 좌파들을 견제해야 했다. 그래서 포데모스 지도부는 ‘분노한 사람들’ 운동을 본딴 기존의 수평주의적 당 구조를 더 중앙집권적 구조로 바꾸고자 했다. 이글레시아스는 공직 후보 추천에서 사무총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좌파 단체에 속한 활동가가 당직을 맡는 것을 제한하려 했다.

이 때문에 2014년 10월 창당대회 성격의 ‘시민 총회’에서 이글레시아스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와 창당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제4인터내셔널 경향의 단체 ‘반자본주의좌파’(IA)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당 중앙 지도부의 권위를 더 강화하는 이글레시아스의 제안이 결국 통과됐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서 좌우 양쪽으로 기반을 넓힐 수는 없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은 포데모스를 “지역 사회에 소비에트를 건설하려 하는 자들”이라 부르며, 포데모스에 맞서 “서구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파적 포퓰리즘 신당인 시민당은 포데모스와 달리 좌파와 연계가 없는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중도”라며 포데모스의 기반을 노렸다.

비슷한 맥락에서, 포데모스 지도부가 민족 자결권을 온전히 방어하지 않고 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도 영향을 줬다. 이 때문에 분리독립 요구가 큰 카탈루냐·바스크 주에서는 상당수 사람들이 민족주의 좌파들과 급진 좌파들의 선거 연합 ‘민중연합후보’(CUP)와 ‘바스크국가연합’(Bildu)을 지지했다. 좌파가 약한 일부 지역에서는 민족주의 우파들이 유의미한 득표를 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집권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포데모스와 좌파적 선거 연합들은 크게 성장했지만, 단독으로 과반을 달성해 지방정부에 입성하지는 못했다.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포데모스가 지방정부를 집권하려면 사회당과 연정해야 한다.

만약 포데모스 지도부가 긴축 정책을 주도한 사회당과 손을 잡는다면, 개혁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공산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IU)도 몇 년 전 지방정부에서 긴축을 추진한 사회당과 연정하며 지지를 잃었고, 이번 선거에서 거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과제

현재 스페인은 경제 위기와 긴축에 맞선 투쟁으로 커다란 정치적 공간이 열린 상태다. 이 정치적 공간에서 양당 구도가 위기에 직면했고, 포데모스로 대표되는 좌파 세력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혁명적 좌파들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력도 커졌다.

이는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주류 정치 세력들이 위기에 빠졌다고 순순히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탈루냐 독립 여부를 결정할 9월 주민투표를 앞두고도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우려스럽게도, “[국민에 대한] 애국심” 같은 수사를 즐겨 사용하는 포데모스 지도부는 카탈루냐나 바스크처럼 오랜 탄압을 받았던 민족들의 자결권 문제에 대해 입장이 모호하다.

11월에는 총선도 예정돼 있다. 총선을 앞두고도 집권이 더 중요한지 운동 건설이 더 중요한지를 두고 포데모스 안팎에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낙관적이지만 복잡다단한 상황에 개입하는 스페인의 혁명적 좌파들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전반적 급진화 물결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지금, 혁명적 좌파들은 좌파 개혁주의 정치에 개입하면서 급진적 대안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단한 혁명적 조직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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