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 판결은 올해 들어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 세력들이 노무현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해 감행한 두번째 공세였다.

지난 3월 한나라당의 탄핵 의결은 거대한 대중적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7개월이 지나 이번에는 헌재가 “저강도 탄핵”을 시도했다.

노무현이 수도 이전 반대를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퇴진 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공언했던 만큼 노무현 정부는 “쇼크 상태”에 빠졌다. 반면, 노무현에 대해 본능적인 증오감을 드러내는 우파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지난 3월과는 달리, 우파의 공세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없다시피 했다. KBS, MBC, 〈중앙일보〉 등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60퍼센트 이상이 헌재의 결정을 지지했다.
수도 이전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없고,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도 수도 이전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헌재는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소평가

지난 3월 대규모 탄핵 반대 운동은 수구 반동에 대한 효과적인 반격이었다. 대중 운동 덕분에 간신히 정치 생명을 부지한 노무현은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대중의 여망을 거슬러 미국 제국주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했고, 7월 궤도 파업을 불법화했다.
그는 이런 수단들이 우파의 반정부 행동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미국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계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파는 집요하게 반격을 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반동을 준비할 사회적 지위와 자원과 수단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얻은 121석은 새로운 반동의 토대를 구축하기에 적은 의석이 아니었다.

총선 직후에 진보진영 일각에서 한나라당이 몰락하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으로의 정치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은 우파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노무현이 그토록 구애를 보냈음에도, 기업주들은 자본 해외 유출과 투자 축소를 통해 노무현 정부에 압박을 가했다.

우파는 국가 기구 내에서조차 입지를 굳혀 갔다. 사법부는 반동의 고삐를 강화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에 대해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향후 입법 과정에서 이번 결정의 의미가 반영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9월에 국회예산정책처장 최광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반시장적이고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국계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지적했듯이,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과 법안은 …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일관성이 없[다.]”(〈프레시안〉 11월 1일치.) 

진보진영도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6월 말에는 김선일 씨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해 이라크 전쟁 개전 이래 가장 거대한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막겠다”던 노무현 정부 1년 동안 비정규직은 31만 명이 더 늘었다. 그것도 공공 부문에서 크게 늘었다. 한나라당이 내놓고 시장과 노동 유연화를 옹호한 반면, 노무현 정부는 앞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를 말하고 뒤로는 한나라당의 그림자 노릇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했다.

노무현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내놓은 이른바 4대 개혁 법안은 “어정쩡하고 미흡”(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기력

열린우리당은 우파의 반격 앞에 무기력하다. 일부 ‘개혁파’들이 요란하게 반발하지만, 열린우리당 전체는 비틀거리며 우파와 타협하고 있는 듯하다.

그 동안 노무현 정부는 확실하거나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린우리당의 ‘개혁 제스처’를 통해 일부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지지를 받아 근근이 버텨 왔다.

열린우리당은 의회 민주주의에 의지하려 했지만, 의회는 계급 갈등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회복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의회내 상대적 소수파인 우파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다수파를 무시하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에 의지해 공세를 취했다.

이들은 4대 개혁 입법에 대해서도 헌법 소원을 하려 한다. 박근혜는 “정부 여당이 관철시키겠다고 벼르는 4대 법안은 하나같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국가 권력의 수반으로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우파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 할 것이다. 그는 우파가 지금 같은 상황, 즉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못 견뎌 할 것이고 따라서 노무현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노무현을 퇴진시키려는 우파의 시도는 불확실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난 봄에 봤듯이, 운동의 강력한 힘은 우파의 반동을 좌초시켰고, 주요 세력관계도 노동계급에게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7년(1997~2003년) 동안 11퍼센트대에 머무르[던 노조 조직률이] 2004년에는 12.4퍼센트로 증가”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저항 필요성이 수치로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우파의 한 분파는 부르주아적 덕망에 기대 노무현이 서서히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 봄 탄핵 실패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우파내 다른 분파는 즉시 거리로 뛰쳐 나와 노무현 퇴진을 공공연하게 선동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박근혜를 비판하며 관제 데모를 이끌었던 이명박을 지지한다.

그런 우파내 갈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파가 여전히 그 지위가 손상되지 않은 채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좌파가 우파와 제국주의와 시장경제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에게 독립적인 지도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법칙은 각각의 구체적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지난 봄처럼 우익에 맞서 정부를 비판적으로 방어하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지금처럼 우익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정부에 대한 도전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