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미국 육군의 생화학무기연구소인 더그웨이 연구소로부터 미국 국내는 물론 한국의 오산 미군기지와 몇몇 나라들로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생물무기금지협약 위반임은 물론이고, 생물무기 확산에 대한 미국의 온갖 경고가 얼마나 위선인지도 잘 보여 준다.

이 치명적인 생물무기는 어처구니없게도 민간 택배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배송됐다. 그 과정에서 생화학무기 유출입을 규제하는 관련 국내법은 완전히 무시됐고, 한국의 정부기관 그 어느 곳도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게다가 탄저균 실험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평택과 군산 기지에서도 실험이 실시됐다는 등 새로운 의혹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이 사태를 무마하기에만 급급하다. 지난달 박근혜는 심지어 오바마와 통화를 하면서도 탄저균 사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총리 황교안은 미군의 위법 행위를 처벌하라는 요구에 “미국과 특수동맹관계”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국방부 장관은 ‘주한미군 지위 협정’(SOFA)을 개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고, 외교부 장관은 미군의 탄저균 실험이 “평화적 목적”으로 실시된 것이라며 두둔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미국의 조사결과를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한국의 전통적인 존경과 감사의 표시’라며 주한미군 사령관 커티스 스캐퍼로티를 등에 업는 퍼포먼스를 했다.

미국 생물무기 개발 역사

미국은 자신이 생물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방어적이고 평화적인 것이라 강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생물무기 개발의 역사는 아주 다른 현실을 보여 준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악명 높은 일본 731부대한테서 각종 생물무기 자료를 넘겨 받았다. 미국의 이 더러운 거래 덕분에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전범 재판을 면한 채 연금까지 받으며 노후를 안락하게 보냈다. 미국이 한국전쟁 때 세균전을 벌였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1959년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자, 미국은 대규모의 생물학 공격을 계획했다. 1960년에는 소련 친화적 콩고 정부 수반을 보툴리누스균으로 암살하려 했다(반정부군의 쿠데타 성공으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미국은 심지어 자국민을 대상으로도 수차례에 걸쳐 은밀하게 세균전 실험을 벌였다는 강한 의혹도 사고 있다.

2003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1980년에는 이라크의 후세인이 독가스로 이란 병사들을 죽이고 쿠르드 족을 학살하는 데 일조한 바 있다. 당시 이라크는 생화학무기의 원료를 미국의 ATCC한테서 얻어 왔는데, 미국이 이를 방조한 것이다.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데 앞장선 것도 미국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이 협약에 생물무기 실험을 강제로 사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초지일관 반대해 왔다.

거의 모든 무기가 그렇듯이 생물학 무기도 순전히 방어적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방어 목적으로 개발된 세균이 공격용으로 전환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이되거나 더 강력해진 세균의 출현에 대응해야 한다는 구실로 신종 세균을 개발할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은 바로 이런 명분으로 슈퍼 박테리아를 개발하려 했다.

이번 탄저균 밀반입 사건에서 불거진 이른바 ‘주피터 프로그램’ 역시 이런 이중적 구실을 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주장대로 ‘북한의 공격’을 탐지하는 수단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진격로 개척을 위한 첨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주피터 프로그램

이번 탄저균 밀반입은 ‘합동주한미군포털 및 통합위협인식’(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 ‘주피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다.

주피터 프로그램의 직접적 연원은 2007년 부시의 ‘국토안보 대통령지시 21’이다. 오바마는 이를 계승·발전시켜 ‘생물학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전략의 실행’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주피터 프로그램은 2013년에 시작돼 2015년에 완료될 예정인데, 다양한 종류의 생물무기 공격을 식별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을 더욱 강력하게 구축하는 것이 그 목표다. 2013년 미국의 제23 화학대대가 한반도에 배치돼 생화학전 능력이 대폭 강화된 것도 이와 관련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피터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다양한 종류의 세균 샘플 실험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이 탄저균뿐 아니라 “지구상 가장 강력한 독소로 규정된 보툴리눔까지 한국에 들여와 실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또, 생물무기는 그 특성상 다른 무기체계보다 해당 전장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현지 실험의 중요성이 크다.

게다가 미군의 세균전 실험실은 주피터 프로젝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닐 수 있다. 최근 〈시사IN〉은 이렇게 보도했다. “미군의 한반도 내 세균 실험은 두 갈래로 시행되고 있다. 하나는 ‘에지우드 화학생물학센터(ECBC)’의 주피터 프로젝트(실험실 3곳)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육군공중보건국의 독자적 작전(실험실 6곳)이다.” 가히 한반도 전역이 미국의 세균전 실험장이 되는 느낌이다.

실제 주피터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주피터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최초로 실시한 이유 하나로 “주한미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실험이 가능”한 점을 꼽았다.

주피터 프로그램은 북한의 생물무기 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일부 ‘악당 국가’들과 테러집단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과장해 동맹국들을 자신의 정치적·군사적 영향 하에 두려고 했다. 미국 국방부가 4년마다 발간하는 《국방검토보고서(QDR)》에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동맹국들이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점에서 ‘국제 공조’라는 말은 미국 주도 패권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미국이 제기하는 북한 위협론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을 단속하고 결속시켜 중국을 견제하는 데 활용돼 왔다. 주피터 프로그램의 책임자 피터 임마누엘은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 근거를 둔 이유가 “국방부의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the Pacific)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말은 이 프로그램 이면에 놓인 진정한 맥락이 무엇인지를 얼핏 보여 준다.

또, 미국은 한국에서 실행된 주피터 프로그램 모델을 다른 핵심 동맹국으로도 확산시키고자 한다. 이번에 탄저균이 잘못 배송된 나라 중에는 호주,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이 주피터 프로그램 같은 모델을 적용하고자 하는 나라들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 정부, 특히 국방부가 주피터 프로그램의 존재와 탄저균 반입 사실을 몰랐다고 말한 것은 위선이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생물무기 프로그램 강화 시도에 함께해 왔기 때문이다.

또, 2012년부터는 해마다 한미생물위협합동연습이 실시된다. 2013년에 한국과 미국은 세계 최초로 ‘생물무기감시포털’ 구축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주피터 프로그램의 한 축(‘생물감시포털’)과 정확히 일치한다. 특히 지난해 키 리졸브 훈련 때 생물무기 대응이 대폭 강화됐다. 한미연합군은 ‘생물무기 진원지’를 선제 타격한다는 시나리오를 더욱 확대시키기도 했다.

이 점에서 만약 한국 정부가 정말로 이 프로그램의 실체와 탄저균 반입을 몰랐다면, 이는 의도된 무지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이 탄저균을 반입할 수 있었던 것은 불평등한 SOFA 덕분이기도 했다. SOFA 9조는 미군에 탁송된 군사화물은 세관 검사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다. 치명적인 위험 물질의 반입을 막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도 없는 셈이다. 이 점만 봐도 불평등한 SOFA를 전면 개정해야 할 필요를 잘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미군의 세균전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시켜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불안정 요소가 되고 있는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 이번 탄저균 반입 사태는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환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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