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전쟁과 난민, 경제 위기와 저항으로 점철돼 있고 지난 몇 년 간 급진좌파와 극우파가 성장하는 등 정치적 양극화가 전개돼 왔다. 세계 격동의 최근 국면과 좌파들이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김종환 기자가 유럽 사회주의자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그리스 상황은 많은 좌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시리자 정부가 국민투표 후 태도를 갑작스레 180도 바꿨는데도 어떻게 선거에서 이겼을까?

이 질문은 단지 그리스 좌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그리스 반긴축 운동에 일체감을 느껴 온 좌파 단체들도 같은 질문을 놓고 씨름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그리스 연대 활동을 해 온 단체가 치프라스에 대한 태도를 놓고 분열했고, 영국에서 무비판적으로 치프라스를 치켜세우던 ‘그리스 연대 운동’이 난처한 입장이 됐다. 그러나 아일랜드에서처럼 그리스 연대 활동 단체가 치프라스를 비판하며 그리스 민중연합에 공감해 함께 좌경화한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리자의 긴축 합의를 비판하며 탈당한 민중연합이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만 본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선거 결과는 “그리스 좌파 전체의 패배”이고, 그리스 민중은 “탈진”했고 “희망과 대안의 아우라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식의 비관만 남는다(〈참세상〉 원영수).

그러나 이런 분석은 일면적이고 성급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리스 노동계급의 정서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과제도 제시하지 못한다. 민중연합이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본지가 선거 직후에 분석했듯이(157호 ‘그리스 총선 결과 ─ 시리자의 재집권, 그러나 좌파의 성장 가능성도 보여 주다’를 보라), 우파인 신민당, 좌파적 개혁주의 시리자, 사회당 같은 중도계 정당들, 극우인 황금새벽당 등 선거에 출마한 정당이 대부분 득표가 줄었다. 기권한 사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각 정당의 상대적 득표율은 조금 바뀌었지만 크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

먼저, 기권율이 높았던 이유를 살펴야 한다. 그리스 유권자들은 투표하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서 일하고 또 거기서 살지만 선거구가 고향으로 돼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투표해야 한다. 지난 9월 총선은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로 치러진 선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굳이 그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투표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정치적 실망감뿐 아니라 1년에 3번이나 여행을 할 만큼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것도 작용했다.

시리자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들로 표가 이동하는 변화도 있었다. 민중연합은 더 좌파적인 입장으로 15만여 표를 얻었고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연합 안타르시아도 득표가 늘었다.

시리자는 더는 좌파적 청중을 유인할 힘이 없는가?

많은 평론가들이 시리자가 더는 좌파적 청중을 끌어 모을 여력이 없다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 “시리자 내부에서 좌파는 멸종했다”는 식의 평가(〈참세상〉)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민중연합이 시리자에서 나갔다고 해서 시리자에는 더는 좌파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좌파들이 시리자 안에 있다. 기층 활동가 수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치프라스보다 좌파적인 조직과 경향들도 여전히 시리자에 남아 있다. 이를 보여 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최근 정부를 구성할 때 치프라스는 지독하게 인종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을 SNS에 한 그리스독립당 인사를 내각에 포함시켰다. 그러자 시리자 내 좌파들이 이의제기를 했고 결국 그는 12시간 만에 사임해야 했다. 치프라스도 그를 구할 수는 없었다.

시리자 안에 여전히 좌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지 선거 결과를 분석할 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시리자 지지자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려할 때도 중요하다. 민중연합이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을 보며 시리자에 남아 있는 좌파는 당분간 탈당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그리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긴축 반대 운동을 건설할 때 시리자 내 좌파적 경향들을 끌어들이려 한다. 다른 나라의 혁명가들도 그리스 연대 운동 단체들과 관계 맺을 때 시리자를 둘러싼 논쟁을 하면서도, 함께 운동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

선거 국면이 끝난 지금, 노동자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선거는 계급세력 균형을 반영하지만 왜곡해서 그런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표 계산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반긴축 노동자 투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볼 만한 현실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 상황이 그렇다. 위기는 사라질 기미가 없고, 유럽연합도 치프라스에게 긴축의 고삐를 늦춰줄 기미가 없다. 시리자 정부는 긴축을 집행하려면 노동자들을 매우 혹독하게 공격해야 한다. 이는 만만찮은 일일 것이다.

흔히 정권 출범 초기에는 정부에 힘이 실리는 ‘허니문’ 기간이 있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에서는 그런 시기가 매우 짧거나 심지어 없을지도 모른다.

총선 전부터 선거 후 긴축에 맞서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노동자들 9월 5일 테살로니키 긴축 반대 시위. ⓒ백은진

그리 오래지 않아 긴축 반대 투쟁이 궤도에 오를 것이다. 당장 공공부문노총(ADEDY)의 투쟁이 예고되고 있다. 공공부문노총은 병원 노동자, 교사, 지방정부 공무원 등을 포괄하는 그리스 2대 노총이다.

공공부문노총은 10월 15일부터 31일 사이에 구제금융 합의 내용에 반대하는 24시간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 파업은 앞으로 벌어질 그리스 노동자 투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공공부문

다른 움직임도 있다. 항구는 시리자가 긴축 정책을 관철시키는 데서 가장 일찍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부문이다. 항구 민영화 반대 운동이 광범하게 일어나고 있고, 항만노조는 이미 1기 시리자 정부 하에서 파업을 벌인 바 있다.

최근 새 정부를 구성할 때 해운과 항만 업무를 관장하는 장관을 연임시킬지 말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그 장관은 치프라스보다 좌파적이고 올해 1월에는 공개적으로 항구 민영화에 반대한 인물이다. 결국 그는 연임에 성공했다. 비록 그는 전보다 좀 더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항구에서 저항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다.

보건 노동자들도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스의 보건?의료 서비스는 상황이 심각하다. 의사와 간호사가 크게 부족하다. 그래서 공공부문노총에 속하는 보건노조는 공공부문 총파업에도 동참하고 그 뒤 독자적으로 24시간 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예산 증액과 인력 충원이 그들의 핵심 요구이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잠재력

난민 문제와 황금새벽당 재판도 중요한 쟁점이다. 난민 위기에 대한 그리스 대중의 반응을 보면, 그 정서가 여전히 좌경적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일각의 일면적 비관론이 보듯이 그리스 좌파의 처지가 형편없다면, 파시스트 황금새벽당뿐 아니라 우파 신민당도 난민 위기를 이용해 인종차별적 공격을 해댔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난민들에게 연대하는 정서가 일반적이었고 난민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각지에서 이어졌다. 터키에 인접한 도서 지역뿐 아니라 아테네에서도, 독일로 향하는 길목인 마케도니아-그리스 접경지역에서도 그랬다.

시리아 출신 그리스 이민자들(난민이 아니라 전부터 그리스에 살던 시리아 출신자들)은 지금 그리스-터키 국경을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난민들이 더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요구이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키우는 데 아주 중요한 요구이다.

한편, 황금새벽당 재판은 중요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재판이 계속 지연됐고 증인으로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황금새벽당 지지자에게 살해당한 반파시즘 운동가 파블로스 피사스의 부모가 증인으로 나섰다. 이 계기를 살려 황금새벽당 지도부를 수감하라고 요구하며 재판부를 압박하는 것은 중요한 운동이다.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은 혁명가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SEK를 제외한 그리스 좌파들은 오랫동안 이 쟁점에 대해서 굼뜨게 대응했다. SEK와 함께 안타르시아를 결성한 다른 혁명적 좌파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SEK는 시리자 열풍이 절정에 달했을 때에도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을 통해 선제적으로 운동을 건설했다.

SEK는 이처럼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꾸준히, 그리고 깊이 관여했으므로 다가올 투쟁에 개입하는 데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덕분에, 난민 위기를 보며 좌파들이 너도나도 인종차별 문제에 달려드는 지금, 다른 좌파들을 인도하는 위치에 있다.

한편, 인종차별 반대 운동은 그리스 바깥의 혁명가들이 시리자 지지자들과 연계를 맺는 데서도 중요할 수 있다. 치프라스의 배신에 대해 ‘거봐, 우리가 뭐랬어’ 하며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난민 위기와 독일 등지에서 부상하는 인종차별적 우익에 맞서 함께 투쟁을 건설하자고 적극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것은 혁명가들이 전체 운동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황금새벽당

혁명가들이 정치적 논쟁에 개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스 좌파 중에는 황금새벽당과 관련해서 부적절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번 선거 때 시리자를 탈당해서 민중연합과 제휴해 선거에 출마한 전 국회의장 조이 콘스탄토풀루(민중연합에 입당하지는 않았다)는 황금새벽당 의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더라도 국회의원으로서 의회 표결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금새벽당 지도부를 수감하고 그들의 대중적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반파시즘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었다. 문제는 민중연합과 그 지지자들이 이런 문제(일반적으로 말해, 파시스트에게 언론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대단치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SEK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KEERFA를 통해 황금새벽당 의원들을 수감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꾸준히 건설했다. SEK마저 다른 좌파들처럼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서는 운동을 소홀히 여겼더라면 황금새벽당은 시리자의 배신을 이용해 지금보다 더 크게 성장했을 것이다.

시리자 왼쪽의 좌파는 어디로

이렇듯 그리스에서는 긴축반대 운동과 함께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이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이 운동에 관여하는 것은 시리자 왼쪽 좌파들의 몫이 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 민중연합은 어떤지 먼저 살펴보자. 민중연합은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이다. 그들은 시리자와 조직적으로는 결별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충분히 결별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민중연합은 시리자에서 탈당한 의원들과 명망가들을 내세워 당을 출범시켰고, 안타르시아가 선거에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한 것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지금 그들은 선거 성적이 초라해 의기소침해 있다. 민중연합은 몇몇 의원들과 명망가들에게 의존한 덕분에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더는 그런 이점을 누리지 못하므로 더 어려운 처지가 됐다. 지금 민중연합의 대부분의 정파와 당원들은 지역위원회 구성이나 당 내부 구조 정비에 몰두하고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 갑작스레 선거를 치른 것이 문제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연합은 안타르시아와 관계 맺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처럼 민중연합은 사기저하돼 있고, 조직을 추스려야 하고, 전에 누렸던 명망이 없어, 긴축 반대 투쟁과 관계 맺는 데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과거 브라질 노동자당(PT)에서 탈당하며 기대를 모았던 사회주의와자유당(P-SOL)이 그랬듯이 민중연합은 더 성장하기보다는 더 작은 세력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

한편, 안타르시아는 선거를 앞두고 소속 단체 두 곳이 민중연합으로 갔는데도 득표가 늘었다. 그 덕분에 앞으로 긴축 반대 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서 전보다 더 많은 소임을 맡아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그러나 안타르시아 안에서도 논쟁이 있다. ‘안타르시아가 너무 협소하게 극좌파들만 모은 것 아니냐’, ‘개혁주의 단체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여전히 있다. 그런 주장을 가장 강하게 펴던 단체들이 민중연합으로 갔지만, 안타르시아에서 가장 큰 단체인 신좌파경향(NAR)에도 비슷한 입장의 활동가들이 있다.

SEK는 안타르시아가 응집력 있고 발 빠르게 사태에 개입할 수 있도록 그 안에서도 논쟁을 해야 한다. 선거 결과를 보면, SEK가 전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스에서는 전환강령이 필요하다

그리스에서 노동자 운동이 부상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안과 결합되지 못하면 커다란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치프라스와 주류 정치권은 긴축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런 주장을 거듭 거부해 왔다.

민중연합이나 전 재무장관 바루파키스 같은 시리자 탈당파는 유로화는 버릴 수 있지만(유로존 탈퇴), 유럽연합 안에서 유럽연합을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바루파키스와 콘스탄토풀루 등은 프랑스 좌파전선의 장-뤽 멜랑숑, 독일 좌파당의 오스카 라폰텐 등과 함께 이런 대안을 국제적 수준에서 제기할 ‘플랜B’ 대회를 건설하려 한다.

이런 대안은 치프라스가 긴축에 굴복한 것이 유로화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올바른 관측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시리자보다 더 왼쪽으로 이동한 것이고, 치프라스를 좌파적으로 비판케 하는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대안에 관심을 보이는 청중들은 시리자보다 더 왼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이들의 대안이 왼쪽으로 진일보한 것이라고 반기면서 그들과 관계 맺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플랜B’ 주창자들의 전망과 달리, 유로존 탈퇴를 유럽연합 개혁을 위한 지렛대로 삼자는 대안은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기에 부족하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유로존 탈퇴는 그리스와 유럽의 자본가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과정의 일환이어야 하고, 따라서 신자유주의 기구인 유럽연합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위기의 심각성 때문에 유로존 유럽연합 탈퇴 주장은 체제와 부분적으로만 단절하는 요구들, 즉 은행과 주요 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같은 요구와도 결합돼야 한다.

만일 2기 시리자 정부 하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이런 대안 제시는 부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할 아주 현실적인 근거들이 있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이 좌파 정부에 맞서 싸울 때 반자본주의적인 지향을 갖고서 투쟁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걸 돕기 위해 전환강령을 제출해야 하고, 이를 놓고 안타르시아 활동가들은 물론 좌파적 개혁주의자들과도 우호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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