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그리스에서 급진좌파 정당 시리자가 돌풍을 일으킨 이래 혁명적 좌파가 좌파 정부 구성을 변혁 전략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두고서 논쟁이 벌어졌다. 오늘날 시리자에 대한 환상은 다소 사그라졌지만 좌파 정부 수립 전략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이 글은 시리자 집권을 앞두고 기대가 한창 고조되던 2013년 10월, 영국에서 좌파 정부 수립 전략을 놓고 벌어진 논쟁의 일부이고 '[논쟁] 대규모 급진화를 위해선 급진 정부가 필요하다(에드 룩스비)'에 대한 답변이다. 이 글의 필자인 마크 L 토마스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당원이다.


[새로운 좌파 정당] 레프트유니티를 건설하자는 제안은 많은 영국 사회주의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켄 로치 등이 새로운 좌파 정당을 건설하자는 제안에 8천 명 이상이 이름을 올렸고, 레프트유니티는 전국 곳곳에서 지역 모임을 열었다. 이는 에드 밀리밴드 하 노동당이 긴축 어젠다를 받아들이는 것에 비추면 나은 현상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태 진전이다. 노동당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여러 투쟁에서 노동당 지지자들과 함께 일해야 하지만)은 사회주의자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다. 왜냐하면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있고 노동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데, 앞으로 들어설 노동당 정부는 긴축 정책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보면, 노동당식 개혁주의(Labourism)는 기존 국가의 틀 안에서 사회 변화를 추구하면서 그동안 계속해서 노동계급의 전투성을 제약해 왔다. 그 사례는 제1차세계대전 후 파업 물결이 전국을 휩쓸었을 때, 1968~74년 산업 투쟁이 솟구쳤을 때 등이 있다.

뿌리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당은 여전히 강력하다. 노동당의 영향력에 도전하는 것은 사회주의자의 핵심 과제다. 게다가, 노동당 안에서 좌파가 노동당을 사회주의 조직으로 바꾸려 한 시도들(최근에는 유나이트 노조의 렌 맥클러스키의 도움을 받은 흐름이 있다)은 모두 별 성과가 없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노동당을 바꾸기보다는 노동당 내 우파에 흡수되거나 노동당 내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결과를 낳았다. 에드 룩스비가 우리 사회주의자들의 당면 과제를 일자리, 임금, 공공서비스, 복지를 지킬 방법이라고 강조한 것은 옳다. 그는 이런 과제를 더 넓은 전략적 틀 속에서 설명한다.

룩스비는 그것이 개인의 견해일 뿐 좌파 연합 전체의 견해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좌파 정당 건설의 핵심 목표가 “좌파 정부” 구성이라고 말하는 점에서 그는 국제 좌파의 상당수가 공유하는 최근의 ‘시대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좌파 정부는 자본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도전하는, 사회주의자로 구성된 정부를 가리킨다. 2012년 그리스의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가 선거에서 큰 성과를 낸 것이 이런 주장이 제기된 배경에 있다.

룩스비가 지적했듯이, 시리자의 성공은 급진좌파 정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정도(2006년 이탈리아에서 재건공산당이 연정의 하위 파트너로 참여했다가 재앙적 결과를 낳은 것)가 아니라 정부 구성을 주도할 수도 있음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보여 줬다. 이에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는 다른 대안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열광했다.

옛 논쟁의 귀환

국가의 성격, 국가와 노동계급 운동의 관계, 사회주의로 이행을 위한 전략이라는 문제가 다시 떠올랐는데, 이는 지난 30년 동안 좌파 내에서 실종됐던 중요한 논쟁이 귀환했음을 보여 준다. 룩스비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기존 국가의 기구 안에서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주의 주장도, 오로지 국가 밖에서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혁명적 관점도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룩스비는 자신이(러시아 사회주의자 보리스 카갈리스키를 따라) “혁명적 개혁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두 방식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의회주의와 레닌주의적 “봉기주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주장은 역사가 길다.

이런 주장은 다양한 버전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는 사회주의 이론가인 랄프 밀리밴드(에드 밀리밴드의 아버지)와 유러코뮤니스트 좌파인 니코스 풀란차스가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18년 독일에서 혁명으로 당시의 카이저를 타도한 이후 [자본주의] 의회와 노동자 평의회를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카를 카우츠키와 독립사회민주당 좌파가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선거와 의회를 조직화의 발판이자 기회로 활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진정한 쟁점이 아니다. 초좌파만이 이를 거부할 것이다.(SWP는 초좌파가 아니다) 볼셰비키도 조건에 따라 선거 운동에 뛰어들고 좌파 의원을 배출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좌파 정부”가 하는 구실

진정한 논쟁점은 자본주의와 단절하는 데서 좌파 정부가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냐다. 역사를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자본주의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책임을 우선시했고 룩스비도 이를 지적한다.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자본의 특권과 이윤에 해를 입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듯하면 대기업들은 경제적 영향력을 무기삼아 커다란 압력을 행사해 정부를 흔들거나 깡그리 부수려 했다. 1964~70년과 1974~79년 노동당 정부 때도 시티오브런던[런던의 금융 중심가]과 대기업들은 정부에 압력을 넣으며 자본을 대규모로 해외로 유출하고 ‘투자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민간 자본만이 좌파 정부의 포부를 꺾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기구 자체도 좌파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을 것이다. 좌파 정부가 제아무리 민주적 정당성을 갖더라도 말이다. 의회 자체는 광활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매우 강력하지만 선출되지 않은 위계질서라는 바다 말이다. 이 위계질서가 국가의 모든 자원을 통솔하며 자체의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이 위계질서의 꼭대기에 앉은 자들은 출신 계급과 학벌 등으로 대기업들과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보면 영국 자본주의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데서는 대기업들과 이해관계가 같다. 국가가 고용한 군대, 경찰, 공무원들에게 주는 돈이 결국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좌파 정부는 이런 국가기구를 통제하기보다는 그 안에 사로잡힐 공산이 더 크다. 의회 밖 노동자 대중 운동의 압력이 있으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첫째, 좌파 정부는 국가를 사회 변혁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면서 국가 기구의 보전을 해치는 행동을 막아야 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좌파 정부는 병사들의 반란을 고무하기보다는 군 수뇌부를 달래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고, 전투적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법을 위반하는 데 반대해 [그런 노동자들을 엄벌에 처할] 고위 판사들의 판결을 옹호할 것이다.

둘째, 자본가들뿐 아니라 국가기구가 벌이는 저항을 극복하려면 단지 노동자들의 압력 정도가 아니라 경제와 국가 기능을 마비시킬 만큼 매우 높은 수준의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자본가와 국가기구의 저항을 극복하려면 그런 대중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롭고 훨씬 더 민주적인 기관이 필요하다. 바로 노동자평의회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와 이런 맹아적 노동자 국가가 공존하는 상황은 매우 불안정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좌파 정부가 낡은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고 있더라도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두 권력 기관[자본주의 국가 vs. 노동자평의회]은 서로 다른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며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일 것이다.

1936~37년 스페인의 경험은 이런 현실의 역사적 시험대였다. 1936년 2월 인민전선 정부의 당선은 계급투쟁 분출의 신호탄이었다. 대중 파업, 항의 시위, 토지 점거가 일어났고 노동자평의회와 농민평의회가 건설됐다. 이에 대응해 몇 달 뒤 프랑코가 이끄는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대중은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처음에는 이 쿠데타를 무찔렀다. 그 결과 스페인 공화국 곳곳에서 “이원권력” 상황이 나타났다. 노동자와 농민이 생산과 분배를 장악해 운영했고 자신들이 이룬 성과를 방어하고자 민병대를 구성했다. 다른 한편에는 이제는 매우 허약해진 의회 권력이 있었다. 공화국 정부는 혁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그쳐야 하고, 그래야 스탈린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소련은 스페인 공화국 정부가 사용하는 무기의 주된 원천이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은 부르주아의 생산 통제를 침해하는 투쟁과 공존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 비극이게도 노동자평의회는 1937년쯤에 분쇄됐다.(특히 노동자 평의회를 이끌던 사람들이 평의회를 중앙집중화해서 자본주의 국가와 전면전을 벌이자는 데 반대했다) 이 결과는 다시 프랑코의 손에 공화국이 궤멸되는 길을 닦았다.

칠레의 민중연합

1970~73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민중연합 정부 경험은 내 논지를 강화해 준다. 사회당과 공산당이 주도한 아옌데 정부는 대중 파업, 항의 운동, 토지·공장 점거 등 의회 밖 대중 행동의 지지를 받았다. 칠레 공산당의 사무총장이던 루이스 코르바란은 이렇게 주장했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다르게 칠레에서는 입헌 민주주의 전통이 강력하다는 점과 세력 균형을 볼 때 “물론 계급투쟁이 격렬하겠지만, 내전 없이도 사회주의로 전진할 수 있다.”

이 주장은 치명적 오류였음이 밝혀졌다. 기존 국가 안에서 일하다보니 불가피하게 노동자들의 “과도한” 요구에 반대해 국가를 방어하게 된 것이다. 또한, 민중연합 정부는 기층 노동자와 병사들이 군대 등 국가기구에 도전하는 것에 맞서 국가기구를 온전한 형태로 지키고자 했다. 1973년 9월 11일 “또 다른 9·11”이 발생했다. 즉, 아옌데 정부가 협력했던 바로 그 장성들이 유혈낭자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타도하고 노동자 운동과 좌파를 상대로 혹독한 탄압에 나섰다.

거의 80년 전 스페인에서 일어난 일이나 40년 전에 칠레에서 일어난 일이 21세기 영국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룩스비는 영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전통이 오랫동안 수립돼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노동운동 내에서 “개혁주의 전통이 오랫동안 수립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룩스비는 이런 사실에서 급진적 의회 정부가 불가피하게 혁명적 변화 과정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전능한 이데올로기(all-powerful ideology)?

그러나 첫째, 룩스비는 “혁명적 개혁주의”와 좌파 정부 구성을 의회 통치가 수십 년 동안 확립돼 있던 나라에만 국한해서 적용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룩스비는 그리스에서 시리자가 좌파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보는데, 그리스는 20세기에 상당한 기간을 권위주의적 통치를 받은 나라다. 1974년 군부가 타도되기 전까지 말이다.

둘째,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전능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즉, 노동자 대중이 단지 습관처럼 항상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사회를 조금이나마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고 공언한다.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일련의 기구들에 의존하는데 특히 노동조합이 중요하다. 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노조는 실효성을 잃지 않으려면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성과를 제공하거나 적어도 노동자들을 방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본가계급에게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사회를 비교적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물질적 양보를 일부 하는 대가로 사회 압도 다수의 불만을 무마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양보를 하지 않으려 하거나 체제가 건강했을 시절에 한 양보를 되돌리려 한다면, 또는 노동자들이 너무 큰 변화를 바란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의존하는 계급 간 합의가 흔들리기 시작할 수 있다.

자신들의 권력과 부가 흔들리는 것을 보는 영국 지배계급이 자기 지위를 유지하려고 비민주적 수단을 이용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 받는 상황에서 영국 지배계급이 피노체트 치하 칠레의 지배계급과 꼭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조차 내던질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을까?

정치 구조를 약화시키기

물론 현재 영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며 1945년 이후에 확립된 질서, 즉 복지국가 버전의 자본주의가 일부 깎여 나갔다. 그러면서 정치 구조도 약해졌다. 한때는 두 주요 정당이 유권자 대다수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았고 진정한 대중 정당이라고 할 만했지만 오늘날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 결과 중 하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관에 대한 환멸이 커지고 영국 정치의 변덕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래드포드 웨스트에서 노동당이 조지 갤러웨이에게 패배하고 지난 15달 동안 영국독립당이 성장한 것이다. 영국 노동자의 대다수는 여전히 이러저러한 종류의 개혁주의를 신뢰한다. 보수당-자유당 연립정부가 복지국가와 노동자 생활조건을 점점 더 강하게 공격하면서 1945년 이후 체제(settlement)로 돌아가기 바라는 염원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지금의 조건은 당시와 다르다. 현재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져, 전후 호황 덕분에 지배계급이 어느정도 양보할 태세가 돼 있던 상황과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좌파 정부도 자본에 대대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 1945년 이후 [복지국가] 체제를 복구할 수 없다. 내가 앞에서 대략 설명했듯이, 국가는 그 구조상 자본에 대대적으로 도전하는 데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좌파 정부를 억제하고, 전복하고, 파괴하는 노릇만 할 것이다. 레닌은 개혁이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부분적 개혁은 오직 혁명적 계급투쟁의 부산물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역사는 늘 그래 왔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서구 자본주의가 안정을 누린 덕택에 대중적 노동자 투쟁 없이도 꽤 한동안 개혁을 이룰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려면 훨씬 더 급진적 수단이 필요하다. 전투적 파업, 점거, 총파업, 대중적 항의 운동 등이 필요하다. 개혁을 이루려는 투쟁은 의회에서 다수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노동자들의 자기 행동에 의존하고 있다. 의회 안팎의 수단을 모두 활용하자는 룩스비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룩스비는 두 가지가 동격의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된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노동자들 자신의 아래로부터의 투쟁, 좌파 의원들의 위로부터 개혁이 둘 다 사회주의로 가는 길인 것은 아니다.

지름길은 없다

선거와 좌파 의원은 좌파의 영향력을 늘리고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우파 주류 정당들의 합의에 구멍을 내는 데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인식하는 것과, 의회와 국가를 사회주의로 가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지름길은 없다. 사회주의는 오로지 노동자들 자신의 행동으로만 가능하다.

개혁주의(급진적 버전이라 할지라도)가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려고, 또는 단지 의회 내 다수파가 되려고 대중적 노동자 운동을 부차화하곤 한다는 점은 역사에서 거듭거듭 나타났다. 1974년 노동당은 현재 시리자가 내놓은 것만큼 급진적인 공약집을 들고 나와 총선에서 승리한 적이 있다. 그 뒤에도 노동당은, 광원 파업이 보수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노동자투쟁이 영국 전역으로 퍼져 나간 뒤에 치러진 선거에서도 승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노동당 정부는 이 대중운동을 활용해 자본을 압박해 급진적 개혁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을 억제하며 그 기반을 깎아 먹었다. 그 결과는 대처의 집권이었다.

이미 우리는 시리자가 선거에서 성공을 거두고 집권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이끌리는 것을 보고 있다. 최근 교사노조 내 시리자 지지자들은 중요한 파업을 취소시키는 것을 도왔다. 이 파업은 그리스 국가에 맞선 중요한 전투가 될 터였다.

노동당과 단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첫 걸음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차치하고 현재의 조건을 효과적으로 지킬 운동을 건설하려면, 우리는 결국 광범하게 퍼진 노동당식 개혁주의와 단절해야 하고, 특히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를 사회주의적 변혁의 기구로 보는 관점과 단절해야 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