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 조지 W 부시는 “향후 4년의 2기 집권 기간 안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창설되는 것을 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라파트 사망 직전에는 이집트 대통령 무바라크에게 전화를 걸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와 안정 속에 공존하는 ‘2개 국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000년 9월부터 시작된 제2차 인티파다(봉기)는 바로 그 ‘평화협상’에 대한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93년 평화협상이 시작된 이래 이스라엘은 대규모 정착촌 건설을 통해 점령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해 왔다.
2000년 한 해 동안만 정착촌 건설이 96퍼센트나 증가했다.
1993년 이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의 국민총생산은 35퍼센트 하락했고, 일부 점령지의 실업률은 6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가자 지구의 60퍼센트와 요르단강 서안 지방의 4퍼센트만을 통치할 수 있었다.
부시가 말하는 ‘2개의 국가’ 중 하나는 사실 제 구실하는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은 이미 ‘0.5국가’로 전락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더욱 더 불구로 만들려 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국제적 비난을 사고 있는 “인류 최대의 감옥” 분리장벽 건설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이미 이스라엘은 장벽 건설 1단계에서만 약 1백67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빼앗았다.
분리장벽 건설이 마무리되면, 약 3천4백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는 요르단강 서안 지방 총면적의 58퍼센트나 된다.
아라파트와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처음부터 이스라엘 국가를 용인하는 ‘두 국가 전략’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1970년 9월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제2차세계회의에서 아라파트의 ‘파타’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팔레스타인은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 지방이나 가자 지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단지) 그 둘을 합친 영토를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 침략자들의 식민지 국가를 인정하는 어떤 협정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사건들을 보면서 아라파트와 PLO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의 전면 해방과 민주적이고 단일한 1국가 체제라는 사상에서 점점 멀어졌다.
1967년 ‘6일 전쟁’과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이 패배하자 파타는 이스라엘에 맞선 어떤 재래식 전쟁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한편, 1970년 9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후원을 받은 요르단 국왕은 자국 내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군대를 보내 팔레스타인 무장집단을 분쇄했다.
그러나 타협의 압력은 단지 외부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파타는 이미 망명지의 공동체에서 팔레스타인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해방이라는 대의를 저버린 아랍의 지배계급과 근본적으로 충돌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팔레스타인의 일부 지역에 작은 국가를 수립한다는 전략은 팔레스타인의 상층 부르주아지와 미 제국주의, 아랍 지배자들 간의 타협의 산물이다. 사실, 이런 전략은 미국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미국은 이 지역에 수립될 팔레스타인 소국가가 중동 지배 질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통제하는 일종의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물론 종종 이스라엘은 이조차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저항이 격화될 때마다 “공정한 중재자”를 자처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말하는 두 국가 전략은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벌어진 학살, 분리장벽 건설, 정착촌 증가,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권 불인정 등을 용인하고 지원하는 것을 뜻해 왔다.
이 점은 주류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의 ‘두 국가 전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라파트 사후 차기 수반으로 떠오르는 압바스와 쿠레이는 여전히 이스라엘과 맺는 평화협상에 목매달고 있다. 그것과 비례해서 그들에 대한 지지도는 형편없다.
팔레스타인 여론조사에 권위있는 비르제이트대학교가 지난 9월에 조사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지지도는 각각 0.5퍼센트와 1퍼센트 아래였다. 아라파트 추모식에 쿠레이가 나타났지만 주변에 있던 청년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반면 파타 산하의 무장 조직인 알-아크사 여단의 지도자이던 마르완 바르구티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중이다.
그는 이스라엘과 맺을 평화협상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제2차 인티파다를 지지한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내년 1월 9일로 예정된 선거는 주류 파타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마스와 같은 조직들은 아예 선거 불참을 선언하고 무장투쟁을 지속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무장저항이 격화되면 이스라엘은 선거 자체를 용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압바스나 쿠레이가 당선해도 그들의 권력은 매우 취약할 것이다.
아라파트와 그의 정부의 실패로 최근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1국가 체제라는 사상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전제돼야 한다. 즉, 어떠한 형태로든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도 이런 슬로건 ― 자신들이 아랍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팔레스타인을 통합하겠다는 것 ― 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부의 변화 ―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통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동일한 시민권을 갖게 하자는 ― 를 이끌어내자는 일부 평화 활동가들의 전략은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제프 핼퍼 같은 활동가는 “운동의 초점을 ‘점령 종식’에서 ‘민주정부 달성’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동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압도적인 무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는 파괴돼야 한다. 이것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간의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는 애초부터 제국주의가 이식한 식민국가다. 그리고 이 국가는 중동 지역 전체를 겨냥한 제국의 경비견 노릇을 해 왔다.
따라서 이스라엘 국가의 해체,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전면적 해방과 민주적이고 비종교적인 1국가 체제는 오직 아랍 세계의 노동계급과 함께할 때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