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지난 12월 18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허가했다.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이 건물을 완공하고 인력과 시설 준비를 마치는 대로(대략 2017년 상반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녹지국제병원을 “외국의료기관”이라고 발표해 의료 민영화와 관계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인 의료진이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진료하는 ‘돈벌이 의료’ 기관이다.

물론 지금도 대부분의 병원들은 돈벌이에 매달린다. 그러나 병원에서 번 돈은 병원에만 재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당할 수 없다), 정부가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병원비를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돈벌이에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병원 운영 비용 외에 투자자에게 배당할 이윤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보다 수익성 논리가 한층 강화될 것이다. 게다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시장 가격’이 매겨질 텐데 공급자의 정보 독점이 강한 의료의 특성상 지금보다 훨씬 비싸질 게 뻔하다. 현재 ‘비급여’ 진료비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런 규제가 없는 미국에서는 가벼운 질병으로도 병원비가 수천만 원씩 나온다.

정부는 이런 영리병원이 경제자유구역·제주특별자치도 내에만 허용되므로 국내 의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만 해도 여덟 곳이나 되는 데다 정부는 최근 ‘규제 프리존’을 만든다며 이런 ‘예외’ 지역을 넓히려 하고 있다.

또, “외국계에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면서 국내 병원에 허용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라며 그나마 있는 규제마저 없애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조선일보〉 12월 19일치 사설)

무엇보다 정부 자신이 온갖 꼼수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 영리병원은 금지돼 있으니 영리 ‘자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기, 진료비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으니 ’부대사업’으로 돈벌이 허용하기, 신의료기기나 신약 개발과 관련된 안전 규제 완화하기, 국내 병원이 국내 기업에 투자할 수는 없으니 해외 투자로 돈벌이 하기 등. 이런 정책들은 병원들이 더욱 수익성을 좇도록 부추기는 한편 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을 통한 병원비 통제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녹지국제병원 설립은 이런 조처들이 노리는 바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 주는 조처다. 그동안 보건의료 운동 진영이 ‘외국의료기관’ 설립이 사실상 국내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해 온 까닭이다.

무리수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제4차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한 뒤 어떻게든 제주도에 1호 영리병원을 만들려 애써 왔다. 그러다 보니 무리수를 뒀다가 두 차례나 망신만 당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2014년에 설립이 추진됐다가 무산된 싼얼병원은 응급 처치 시설도 갖추지 못한 데다 기업주가 사기 혐의로 구속된 엉터리 병원이었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유치에 나섰다가 철회했다.

녹지국제병원은 올해 2월에 처음 사업계획서를 냈다. 제주도(도지사 원희룡) 측이 이를 검토한 뒤 보건복지부에 승인 신청을 했지만 실제 투자자가 한국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인이 중국 법인에 투자한 뒤 이 중국 법인이 한국에 ‘외국의료기관’을 세우려 한 셈이다. 싼얼병원에 이어 또다시 논란이 되자 이번에는 제주도 측이 알아서 승인 요청을 철회했다. 그 뒤 한 달도 안 돼 투자자 명의가 바뀐 사업계획서가 다시 제출됐는데 이번에는 논란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해당 정보를 비밀에 붙였다. 병원 설립을 위한 건축계획은 4월에 승인돼 이미 공사는 시작했다.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 뒤 여섯 달을 묵혀 뒀다가 이를 강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 민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은 여전히 광범하다. 올해 실시된 제주도민 여론조사에서도 영리병원 반대 의견이 대체로 70퍼센트 안팎을 기록했다.

따라서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등은 국내 1호 영리병원이 실제로 문을 열때까지 승인을 철회시키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동시에 벌써 거론되고 있는 제2, 제3 영리병원 설립을 막기 위한 운동도 벌여 나가야 한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송도 영리병원 설립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고, 녹지그룹은 중국과 제주도에서 “병원 10개를 건립할 수 있는 부지와 기금 등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일이 실현된다면 〈조선일보〉가 바라는 대로 둑이 허물어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의료비를 폭등시키고 환자 안전을 위협할 영리병원 허용 정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