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북한 핵실험 직후, 불과 나흘 만에 미국의 B-52 전략 폭격기가 수도권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이 대북 경고 차원에서 한반도에 전개한 것이었다. 핵무기까지 탑재할 수 있는 B-52 폭격기가 단숨에 평양으로 날아갈 수 있는 오산공군기지에 나타난 것은 그만큼 한반도가 매우 불안정한 지역임을 새삼 보여 줬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느 나라의 것이든 핵무기를 지지하지 않는다. 핵무기는 제국주의에 맞선 ‘자위적 수단’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쟁이 낳은 가장 끔찍한 무기일 뿐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날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수요 시위가 열리는 날이자,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정서가 커지면서 박근혜 정부가 큰 부담을 안고 있던 시점이었다. 박근혜는 북한의 핵실험을 이용해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북한 핵실험을 두고 제국주의 국가들과 한국 정부는 매우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국가들은 핵무기와 미사일 전력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이미 북한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핵무기 전력을 갖고 있지만, 핵무기 개량에 30년 동안 1천조 원을 쓰기로 계획했다. 최근에는 정밀 타격이 가능한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도 핵무기를 운용할 로켓군을 창설하고, 새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핵무기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2017년까지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새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할 예정이고, 지난해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 핵무장 잠재력 확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러면서 강대국들과 한국 정부는 북한 핵실험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북한 핵실험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오히려 역내 국가들의 상호 갈등과 경쟁이 북한 지배 관료들을 자극했다고 봐야 한다. 이 점에서 일부 진보·좌파 단체들이 주로 북한을 규탄하거나 북한 핵실험과 한·미·일 동맹을 대등한 수준에서 비판한 것은, 핵실험을 둘러싼 구체적인 지정학적 맥락을 간과한 것이다. 핵무기 문제에서도 주변 강대국들의 핵 전력이 북한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막강하다.

악마 취급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북한을 악마로 취급해 자신의 동아시아 정책을 관철시키려 해 왔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 ‘위협’을 크게 부풀렸다.

지금 미국은 유럽·중동·동아시아에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지난해 파리 참사와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개입으로 중동 상황이 더 불안정해지자, 미국은 내키지 않는 중동 전쟁에 발목을 잡힌 채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동아시아에서는 세계 1위·2위 ·3위 경제 대국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거기에 러시아마저 역내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한국·호주 등도 경쟁에 가세해 형국이 더한층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일본을 중심으로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은 자신의 힘을 온전히 동아시아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등 동맹국들이 안보 부담을 나눠 지기를 강하게 바라 왔다.

북한 ‘위협’론은 오바마 정부가 이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좋은 명분이 됐다.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 운운하며 북한의 대화 요구를 계속 거부한 까닭이다. 북한은 2015년 1월 미국이 대규모 북침 훈련을 중단한다면 핵실험을 유예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 제안을 단칼에 거부해 버렸다. 이후에도 미국은 ‘선先 핵 포기’를 요구하며 북한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은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고 강화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2015년 5월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됐고, 9월 일본 안보법제도 일본 의회에서 강행 통과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아베가 안보법제를 통과시키는 데 좋은 핑계 거리였다.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하는 문제를 놓고도 한·미·일 간 협의가 진행돼 왔다.

지난해 12월에 성사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데서 커다란 장애물을 제거한 것이었다. 미국은 이 합의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만큼의 전략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미·일 동맹은 주되게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지만, 북한한테도 커다란 위협일 수밖에 없다. ‘위안부’ 합의는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는 데 큰 영향을 줬을 게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의 핵실험은 제국주의 간 갈등과 한·미·일의 대북 압박이 불러온 역풍인 것이다.

핵실험 직후, 오바마는 박근혜와 통화하면서 다시 한 번 한·미·일 동맹을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합의 타결은 북한 핵실험이라는 도전에 대한 한·미·일의 공동 대응 능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박근혜도 이에 화답했다. 1월 13일 대국민담화에서 박근혜는 북한 핵에 대한 대응으로 한미 동맹 강화를 강조했다. 그리고 사드(THAAD) 배치를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하겠다”고도 말했다.

사드(THAAD)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된다면, 한국은 그만큼 더 깊숙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된다. 설사 사드가 배치되지 않더라도 한국의 미국 MD 협력 수준은 더욱더 높아질 것 같다. 박근혜의 담화 발표를 두고 백악관은 한국 정부와 MD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올해 안에 한미 간 실시간 정보공유 채널을 구축해 한국과 미국의 MD망을 연결·연동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MD 협력 강화는 결국 한일 군사 협력 문제와도 연결된다. 미국이 구상하는 동아시아 지역 MD는 한·미·일 3국의 유기적 협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소는 ‘위안부’ 합의 후에 한·미·일 사이에 “정보·군수·기술 분야의 양자 또는 3자 협력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 정부 때 무산됐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나 한일 군수지원협정 등이 수면 위로 올라올 공산이 커졌다.

한·미·일 동맹 강화는 국방비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한국 측에 안보 비용을 분담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한국은 세계에서 무기 수입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국가가 됐다. 전체 수입액 78억 달러 중 70억 달러 이상이 미국산 무기 구입이었는데, F-35나 장거리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같은 첨단 무기들이 많았다. 한국 지배자들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와 북한 핵실험 때문에 앞으로도 군비를 지속적으로 늘릴 것이다.

이런 사태 전개는 당연히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 중국도 긴장케 해 역내 불안정을 키우면서 군사적 위험성을 높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 국내 정치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이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반대해야 한다. 대북 제재 조처와 북한인권법도 마찬가지다. 제재는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하는 데다가 북한 관료보다 애꿎은 북한 인민들만 훨씬 더 고통받게 한다. 그리고 제재와 북한인권법 등은 모두 한·미·일의 대북 군사 압박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할 것이다.

한일 군사 협력, MD 구축, 한국의 군비 증강, 대북 압박 강화 등 박근혜 정부의 친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한반도에서 긴장 고조의 악순환을 뿌리부터 제거할 수 있도록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정의당이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자기 모순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 결의안은 정부에 “북한 핵보유 시도를 저지할 단호한 대책”과 “확고한 안보 태세”를 요구하는 게 주요 내용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결의안에 정의당 의원들도 찬성했다. 정의당이 국회 대북 규탄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적극적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있다”(1월 11일 정의당 대변인 브리핑)는 주장과 맞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정의당은 군사·안보 전문가인 김종대를 영입하면서 “외교·안보·국방에 있어서 더욱 신뢰받는 대안 권력”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핵실험 국면에서 정의당은 박근혜 정부의 ‘안보 무능’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 핵 위협에 대한 조기 경보에 실패했다고 지적하면서 “과시형 국방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국방체계를 새롭게 갖출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의당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자본주의 국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유능함을 입증하려 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제국주의적 갈등이 커지고 남북 관계가 악화하는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자국 지배계급을 편드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강령에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의 주도자”를 표방하며 군축도 추진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우파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규탄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이런 지향으로부터 멀어지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