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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스캔들:
중국 관료들은 왜 그렇게 부패했는가?

지난 4월 4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파나마의 최대 로펌인 ‘모색 폰세카’가 보유한 1977∼2015년간 기록이 담긴 내부자료 1천1백50만 건을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측근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의 아버지, 아이슬란드 총리 등이 연루된 부패의 증거들(탈세, 뇌물수수, 부패, 사업규제 위반)이 있었다. 이 때문에 아이슬란드 총리는 사임했다.

그리고 모색 폰세카를 통해 비리에 연루된 중국의 전·현직 고위관료가 적어도 9명에 이른다는 점도 드러났다. 모색 폰세카는 중국 도시 8곳에 법인을 세우고 이 법인을 통해 유령회사 1만 6천3백 곳을 설립했다. 이 숫자는 지난해 전 세계 역외기업*의 29퍼센트에 해당한다.

중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3명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 주석 시진핑의 매형 덩쟈구이는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유령회사들의 주주다. 그는 시진핑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기 전인 2009년 모색 폰세카를 통해 역외기업 2곳을 사들였다.

중국공산당 서열 5위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류윈산은 언론을 지독하게 탄압해 ‘언론계의 차르’로 악명이 높은데, 그의 며느리 쟈리칭도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유령기업 대표를 맡고 있다. 쟈리칭의 아버지는 국가안전부장과 공안부장을 지낸 쟈춘왕이다. 서열 7위 부총리 장가오리의 사위 리셩푸는 버진아일랜드에 법인 3곳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장쩌민의 오른팔인 전 부주석 쩡칭훙,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진압했던 리펑의 딸 리샤오린, 개혁파 지도자였던 전 총서기 후야오방의 아들 후더화, 마오쩌둥의 친척인 천동셩도 조세도피처에 회사를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중국 외무부는 “모색 폰세카 관련 내용은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글로벌 타임스〉는 “당의 명성을 훼손하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패 스캔들이 폭로된 아이슬란드 총리가 사임하는 상황에서 중국 지배자들에 관한 폭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믿을 근거가 있을까?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부패 사건이 폭로되자 중국 정부는 늘 그러듯이 언론을 통제했다. 미국 버클리대학교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차이나 디지털 타임스〉는 4월 6일 “중국 정부가 파나마 페이퍼 관련 내용을 자체 검열해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4월 5일부터 중국 정부는 〈가디언〉 웹사이트, 영국 BBC, 미국 CNN 등의 파나마 페이퍼 관련 보도를 중국 내에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시진핑의 ‘호랑이 사냥’

이번 파나마 페이퍼 사건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 자신도 부패의 몸통임이 드러났다. 2013년 시진핑은 “많은 벌레들이 숲을 망치고 있다”면서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부패 혐의가 드러나 무기징역형을 받은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이 부패로 축재한 돈은 16조 원에 이른다. 2015년 3월 암으로 사망한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는 중국 인민해방군 부패의 몸통으로 불렸는데, 그의 집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1톤이 넘는 달러화·유로화·위안화가 발견됐다. 얼마 전 기소된 인민해방군 중앙군사위 부주석 궈보슝의 부패 재산은 쉬차이허우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번 모색 폰세카 자료에 전 중앙정치국 위원 보시라이와 그의 부인 구카이라이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이미 각각 부패와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인 링지화가 부패혐의로 구속됐다.

이렇게 정적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시진핑의 치부마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12년 〈블룸버그〉가 시진핑의 축재를 폭로한 바 있다. 그의 일가 재산은 희토류 생산업체인 텅스턴그룹, 부동산·휴대전화 장비 관련 기업 지분을 모두 합쳐 5천억 원에 이른다.

앞서 2012년 〈뉴욕타임스〉는 10년 이상 같은 점퍼를 입고 다녀 서민 총리로 알려진 전 총리 원자바오 일가의 재산이 무려 3조 1천억 원에 이른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마디로 원자바오 일가는 부정 축재의 백화점이라 할 수 있다.

원자바오 일가의 축재 과정을 살펴보면, 중국 지배자들이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원자바오의 외아들 원윈쑹은 국유기업 중국위성통신(CSCC)의 회장 자리에 있으면서 개인 축재를 위해 그 영향력을 주저 없이 활용했다.

원자바오의 동생 원자훙은 2003년 병원 폐기물 처리회사를 차린 뒤 정부로부터 3천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다. 당시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 퍼져 총리였던 원자바오가 병원 폐기물 처리 규정을 강화한 직후였다. 그의 가족은 2004년 기업 공개에 성공한 국유기업 핑안(平安)보험에 미리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중국 국무원이 핑안보험의 상장을 허용하기 전에 주식을 사들인 덕분이었다.

원자바오의 부인 장페이리는 ‘보석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보석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녀는 1990년대 초반 국유기업인 중국광산보석 책임자로 있을 때 회사 자금을 자신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귀금속회사에 투자해 많은 돈을 벌었다.

원자바오의 사위 류춘항은 중국은감위(은행 감독기구)의 고위 간부로 있으면서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국가자본주의와 부패

이번 파나마 부패 사건에서 러시아의 푸틴이 논란의 초점이 되고 중국의 유령회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오쩌둥 하의 폐쇄적 국가자본주의가 덩샤오핑 이래 시장 개방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지배 관료들은 정치·경제적 권한을 활용해 국유 또는 공유 재산들을 불하해 개인 수중에 넣었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부패가 생겨났다. 국유기업이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국가 관료들은 스스로 민간 자본가로 변신하기도 하고, 친인척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뒷배 구실을 하기도 했다.

중국은 시장 개방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민족해방혁명 영웅들은 인민복에서 아르마니나 페라가모 양복으로 바꿔 입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나 손자들이 기업체를 운영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금도 중국은 경제에 대한 국가(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각종 정부 기구들)의 영향력이 서방 시장자본주의 나라들보다 더 크다. 국가 조달 사업체의 지정, 사업체에 대한 국가의 지원, 각종 인허가, 세금과 금리 등 각종 경제 정책 등에서 국가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 또, 기간산업에서 국유기업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그 때문에 민간 자본가들은 국가 관료와 공산당의 후원을 바라며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 결과 경영자 중에서 공산당원 비중이 노동자나 농민의 경우보다 더 높아졌다.

전 세계 최고 부자 1백 명이 뉴욕보다 베이징에 더 많이 살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때도 루이비통, 베르사체, 크리스찬 디올 등 명품 기업들은 베이징과 상하이에 점포를 늘렸다.

하지만 2014년 베이징대 중국사회과학조사센터가 조사한 중국의 지니계수*는 0.73을 기록해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 때(0.58)보다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경제가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가운데, 이번 파나마 페이퍼 사건은 부패와의 전쟁을 지속하려는 시진핑과 이를 저지하려는 다른 지배 관료들 사이의 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다. 최근 경제 위기로 임금 체불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중국 지배자들의 부패는 불만에 찬 노동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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