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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참패에도 계속되는 의료 민영화:
의료법 개악(병원 인수합병 허용) 중단하라

총선 이후 국민의당에서 법 개정에 대해 처음 나온 이야기는 19대 국회에서 세월호특별법과 이른바 ‘민생’법과의 맞바꾸기였다. 세월호특별법을 개정하는 대신 노동악법과 서비스발전법 등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민생법이라 주장하는 법들을 맞바꾸자는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도 만만치 않다. 더민주당 비례대표 6번에 전략 공천된 최운열은 총선 직후 더민주당 당선자대회에서 서비스발전법에 의료를 포함해야 한다고 강연까지 했다. 의료도 산업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야 3당은 24일 원내대표회의에서 ‘규제프리존 특별법’, 즉 모든 규제에 대해 지역에 따라 ‘시·도지사가 요청하면 풀어주겠다’는 법을 19대 국회에서 잠정 합의했다고 보도됐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비판이 있자 이 서비스발전법과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유보하는 태도로 입장을 바꾸었다. 의료공공성 강화와 의료 민영화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두 보수야당이 총선이 끝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일들을 벌였다.

병원 인수합병 허용

게다가 이 글을 마무리 짓다말고 다시 써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오늘(29일)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2014년 12월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이 발의한 법안으로 박근혜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의 핵심이다. 박근혜 정부가 ‘4차 투자활성화대책’에서 병원의 영리자회사 허용, 부대사업 확대와 함께 발표한 대표적 의료 민영화 정책이다.

이 법안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계속 국회에 상정됐던 병원협회의 지속적 민원사항이었다. 즉 여당과 자유선진당 등을 합쳐 의석이 180석을 넘던 18대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한 법안이었다. 그런데 총선이 야당의 승리로 끝난 이후에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했다는 것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병원 인수합병 허용은 국가자산의 직접적인 민영화에 해당한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인수합병이 금지돼 있고, 의료법인을 해산할 때에는 재산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시키게 되어 있다. 병원을 사고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로 영리병원 금지와 함께 병원의 공익성을 지키려는 대표적 조치다. 이 공익성 때문에 의료법인은 각종 세금까지 면제받는다.

그런데 병원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병원이 사실상 상품이 된다. 그리고 병원 자체가 사고파는 물건이 되면 ‘상품’이 된 병원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리 행위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이 더 문제다.

첫째, 인수합병은 병원의 체인화를 통한 거대 프랜차이즈 병원 탄생을 불러온다.

인수합병이 가능해지면 체인 병원 즉 프랜차이즈 병원이 만들어지는 것이 훨씬 쉬워지고 이 병원 체인은 당연히 상업화가 심해진다. 이미 한국에서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체인형 네트워크 병원들이 다른 병원들보다 과잉진료를 훨씬 더 한다는 사실은 더는 비밀도 아니다. 의사들은 자기 친척이 00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으면, 대학병원에 가서 한 번 더 진료받아 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미국의 국립의료경영원에 따르면 병원 인수합병이 병원비를 최소 5퍼센트에서 최대 50퍼센트 이상까지 상승시키지만, 의료의 질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뜨린다.(2009)

여기에 정부는 의료법인이 만든 영리자회사에 외부 투자자가 투자하고 배당받는 것까지 이미 허용했다. 이 투자자는 사모펀드 같은 투기자본이 될 수도 있다. 인수합병으로 덩치가 커진 체인병원은 더 커진 영리자회사를 통해 외부 자금을 투자받고 이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영리 행위’를 할 수 있는 길이 크게 열린다. 병원협회가 영리자회사 허용과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을 사실상의 영리병원으로 가는 길로 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은 3~4개 영리병원 체인이 영리병원들을 독점하고 있는데 가장 큰 영리병원 체인인 HCA가 바로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 사례다. 이 HCA 병원 체인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번 대선 공화당 경쟁자였던 맷 롬니가 대주주로 있는 병원으로 유명하다. 또한, 똑같은 병으로 치료를 받는데도 병원비를 다른 병원보다 엄청 비싸게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뉴욕타임즈가 이 체인병원의 의료비가 다른 병원의 의료비보다 얼마나 비싼지 특집으로 보도했을 정도다.

병원(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은 미국식 영리병원으로 가는 지름길을 놓는 것이다. ⓒ이미진

구조조정과 대량해고

둘째 병원 인수합병은 병원폐쇄와 대량해고를 불러온다. 대한병원협회는 정부에 의료법 개정 의견을 내면서 아예 “의료기관 직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 등을 위해 인수합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부실병원의 퇴출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합병으로 합병 이전에 운영되던 의료기관이 폐쇄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보건복지부가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돼 있을 뿐, 심지어 병원폐쇄의 요건도 명시하지 않고 있다.

1983년에서 1996년 사이 미국 병원 인수합병 사례에 관한 연구를 보면 간호인력과 행정인력 등 모든 분야에서 인력 감축이 일어났다. 반면 불안정노동인 시간제 노동인력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고와 비정규직 증가가 인수합병의 결과인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윤을 위한 인수합병이기 때문이다.

병원협회나 새누리당은 인수합병이 부실병원(과 함께 노동자들)을 ‘정리’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숨기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의 의료비는 2000~2010년까지 대략 11퍼센트 정도씩 증가했다. 그런데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약 6퍼센트로 급격히 감소했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의 반영이다. 앞으로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 의료비 증가율은 더 감소할 것이다. 사람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을 줄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그렇게 해서 생긴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20조 원 가까이 쌓아놓고 쓰지 않고 있다. 의료부문의 긴축재정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과잉투자를 했던 ‘병원 산업의 구조조정’이 올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병원이 국민들의 세금과 건강보험료로 운영된다. 그런데도 정부가 병원 설립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놓은 것 자체가 잘못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지역병상수를 규제한다. 심지어 미국조차 일부 주에서 병상수를 규제한다. 한국은 이 규제를 하지 않아서 2000년 이후 병상수가 빠르게 늘어난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됐고 지금은 병상 과잉의 대표적인 나라가 됐다.

이 상황에서 병원 인수합병 허용은 최악의 선택이다. 그것은 거대 영리형 체인병원과 대량해고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갈 길은 영리 목적의 인수합병을 막고, 비영리병원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또 부실병원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인수해 공공병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17조~20조 원의 돈을 곳간에 쌓아놓고 이 돈을 투자해서 돈놀이를 하겠단다. 당장 이 돈을 병원비를 인하하는 데 써야 한다. 또 사립병원을 인수해 공공병원을 만들고 늘리는 데 써야 한다.

따라서 병원 인수합병 허용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이번에 또 한 번 깨닫는 것은 서비스법, 규제프리존법, 그리고 이번 의료법 개정(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 진행과정에서 보듯이 보수야당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의 주축을 이루는 인사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의료 민영화가 시작됐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보수야당이 현재 집권여당과 다른 ‘경제민주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더더욱 없다.

이 글을 처음 부탁받을 때에는 총선 이후 의료 민영화 정책의 전망에 대해 쓰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지금 당장 진행되고 있는 여야 합의에 따른 의료법 개정 문제를 지적하는 글로 바꿔야만 했다. 보수야당들에 뒤통수를 맞을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맞을 줄은 몰랐다. 황당한 여야 합의를 보면서, 노동자와 시민들의 투쟁 없이는 진보는 요만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