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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 불평등

〈해럴드 트리뷴〉 1997년 2월 5일치에는 이 세계의 불평등과 불평등의 심화를 보여 주는 기사가 실렸다. 1960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2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2.3퍼센트, 가장 부유한 20퍼센트가 70.2퍼센트를 가졌다. 1998년에는 가난한 20퍼센트가 1.2퍼센트, 부유한 20퍼센트가 89퍼센트를 차지했다.

21세기를 맞은 지금 불평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가난한 이는 혹독한 고통을 받고, 부유한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를 누린다.

“누님 정말로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 죽으면 화장해 주세요” 지난 3월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한 가장이 쓴 유서에 나오는 말이다. 그 사람은 두 딸과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했다.

OECD 국가 중 자살증가율 1위인 한국에 현재 신용불량자 수는 4백만 명이다.

“제 동생이 있는 게 돈밖에 없어요. 흠이라면 돈 많은 게 흠.” 손톱 손질에만 5만 원 하는 강남의 한 미용실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다.

대폭 오른 지하철과 버스 요금은 서민들에게 큰 시름을 안겨 줬다.

노동자들이 압력밥솥처럼 짓눌리는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고통받으며 출근하는 동안, 올해 외제차 판매율은 15퍼센트나 증가했다.

이건희가 타는 차는 ‘벤츠'가 만든 ‘마이바흐'다. 이 차의 가격은 7억 원이며 온갖 호화로운 옵션은 2백만 가지나 된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수리비는 1억 원이 넘는다.

우리 나라에 들어온 가장 비싼 차 ‘엔쵸 페라리'는 15억 원이다.

어려워진 살림살이에 서민들에게 늘어나는 것은 주름과 한숨이요, 줄어드는 것은 웃음이다. 19일에는 전기값이 없어 촛불을 켜고 자던 할머니가 불에 타 죽는 사건이 있었다. 정부가 발표한 빈곤층은 터무니없이 낮은 기준인데도 4백만 명이 넘는다. 사실상 빈곤층인 이른바 차상위 계층의 숫자는 1백만∼3백만 명이라고 한다.

서민들이 기름이나 가스 땔 돈이 없어 위험한 연탄으로 난방용 보일러를 바꿀 때, 특급 호텔에서는 연일 연회가 벌어진다. 수천 송이 꽃, 특급 오케스트라의 감미로운 선율이 펼쳐지는 이 연회는 한 번에 최고 8천만 원까지 든다고 한다.

특급 호텔에서 가장 비싼 방인 로얄 스위트룸의 가격은 하룻밤에 4백만 원 정도며 식사는 한 끼에 50만 원까지 한다.

부자들이 화려한 얼음 조각 아래서 자신들의 보석을 자랑할 때, 이 겨울에 언제 얼어 죽을지 모르는 노숙자의 수는 늘고 있다. 올해 서울 시내 노숙자 수는 파악된 것만 5천여 명이라고 한다.

백화점 명품관에는 돈밖에 없는 자들이 돈을 쓰기 위해 오늘도 붐빌 것이다. 만년필이 하나에 7백50만 원, 사파이어 잉크병이 하나에 3백70만 원에 팔린다. 더 놀라운 것은 “진짜 비싼 것”은 공개되지도 않고 몰래 팔린다는 것이다.

신분 노출을 꺼리는 부자들은 시내 “부띠끄”에서 옷을 산다. 그 곳에서는 밍크코트의 가격이 3천만 원은 족히 호가한다.

강남의 부유한 집안 초등학생들은 14만 원 짜리 “구찌지우개”와 7만 5천 원짜리 “에르메스 연필”을 들고 다닌다.

반면 이 나라 결식 아동의 숫자는 20만 명 이상이다. 올해 경기도에서 굶어죽은 아이의 예에서 보듯이 이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우리는 19일 가슴 찢어지는 사연을 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5살박이 정신지체아가 장롱 속에서 굶주림 때문에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본주의에서 부자로 산다는 것은 특권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빈자로 산다는 것은 냉혹하게 버려진다는 것을 뜻한다.

강남구청은 2년 전에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민원 처리를 위해 전용 처리실을 5천만 원을 들여 만들어 줬다.

영양실조로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아들을 장애 전문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발달 장애아동' 등록을 문의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는 필요한 절차만을 설명해 줄 뿐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 자식의 산소호흡기를 떼야만 한다.

그러나 부자들이 누리는 의료혜택은 어떤가? 지난 9월 14일 문을 연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에서는 건강 검진 비용이 1백40만 원에 이르고, 일류 호텔 숙식이 제공되는 “프리미엄 건강검진”은 3백50만 원에 이른다.

4차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인도 뭄바이는 빈부격차의 극을 보여 줬다. 빈민가에는 아이 젖을 주지 못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동냥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리 하나를 건너면 놀라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오색찬란한 분수가 하늘에 닿을 듯 뿜어져 나오는 특급 호텔들이 펼쳐져 있다.

서울의 성북동 산 한 쪽에는 차로 들어가야 하는 저택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그 집의 화장실 크기도 안 되는 집들이 숨막히게 붙어 있다. 이것은 결코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미려한 야경은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같다.

하지만 이 발전한 자본주의 도시에서 그 빛은 소수가 독점하고 있다. 한 편에서 수백만 원짜리 와인으로 파티가 벌어질 때, 다른 한 편에서는 쓰디 쓴 소주에 추위를 달래며 쓰려져 가는 노숙자들이 넘쳐나는 사회. 이것이 21세기 자본주의 한국의 진실이다.

그렇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쟁취해야 할 더 나은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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