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의 주최 단체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노동자연대의 ‘퀴어퍼레이드’ 부스 선정을 취소했다고 5월 24일 오후에 일방 공지했다.

이유는 〈노동자 연대〉의 ‘강남역 살인 사건’ 기사가 “페미니즘을 폄하하고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에 대해 매우 낮은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미국 대사관에는 부스 설치를 허용하면서도, 성소수자 운동에 오래도록 성심껏 연대해 온 단체는 주최 측이 지지하는 특정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참가 배제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과정의 경위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질의에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답변을 보냈다. 그에 따르면, 이 조처를 결정한 조직위원회 임원단과 퍼레이드기획단의 회의는 “5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회의가 열리고 있던 24일 오전 11시 노동자연대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공동 주최한 “차별과 혐오를 확산하는 기독자유당 국가인권위원회 집단 진정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었다.(☞관련 기사: 성소수자·무슬림 차별 선동하는 기독자유당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다)

"기독자유당은 차별 선동 즉각 중단하라"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렸지만 30여명이 모여 인권위 진정에 뜻을 모았다. 진정에는 62개 단체, 3천1백95명이 동참했다. ⓒ이미진

성소수자 혐오 반대 기자회견 시간에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그 기자회견에 참가한 단체의 성소수자 축제 행사 배제를 논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래의 글은 노동자연대의 부스 선정 취소 유감문 전문이다.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노동자연대 부스 선정 취소 유감

노동자연대는 5월 24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명의의 SNS 계정으로 노동자연대 부스 선정 취소 공지가 올라온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동자연대는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원회)로부터 어떠한 공식 연락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연히 이런 공지를 발견했습니다. SNS로 이미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진 이후에야 메일로 같은 내용의 통보를 일방적으로 받았습니다.

노동자연대 부스가 상업적 성격을 띤 것도 아니고 성소수자 차별 반대 단체들의 연대의 장이라는 행사의 취지 상 당사자 단체의 입장을 사전 청취하고 결정에 대한 충분한 해명을 하는 과정이 마땅히 있었어야 했지만, 이런 과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일방적 통보에서 거론된 유일한 명분은 오로지 강남역 살인에 대한 〈노동자 연대〉 이현주 기자의 기사뿐이었습니다. 게다가 통보는 기사가 게재된 지 불과 하루 만에 이뤄졌습니다.

노동자연대는 우선 적어도 어떤 절차에 의한 결정인지는 당사자 단체로서 투명하게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5월 24일 조직위원회 측에 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결정은 언제, 어떤 기구에서 결정된 것인지, 그 기구는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논의 과정에서 의견 분포와 찬반 숫자는 어떠했는지 등을 문의했습니다. 조직위원회는 노동자연대가 그 동안 해 온 주장과 실천, 부스 기획이 축제의 취지와 부합하는지를 판단해 공식 부스 참여 단체로 선정했을 텐데, 이런 결정을 뒤집으려면 충분한 토론과 민주적 절차가 있었어야 할 것입니다.

조직위원회는 자신들이 단체들의 연합체가 아니며, 이 결정이 24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퍼레이드기획단’과 ‘임원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답변했습니다. ‘임원단’이 어떤 선출(또는 선임) 과정으로 구성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구성원들이 무슨 논거로 토론했는지 이 답변을 통해서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노동자연대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과 ‘임원단’ 측의 해명이 부재한 것에 대한 사과도 없었습니다.

배제 절차뿐 아니라 내용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조직위원회는 강남역 사건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기사가 ‘페미니즘을 폄하하고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에 대해 매우 낮은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의 기사 어디에도 소수자를 비하하는 내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동안의 주장과 실천에서도 노동자연대는 언제나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차별에 반대해 왔습니다. 최근까지도 부산대, 외대 등에서 노동자연대 회원들은 학내 성소수자 혐오 세력과 맞서 싸우는 데서 적극적 일부였고, 기독자유당 규탄 국가인권위 진정서 조직과 제출도 함께했습니다.

강남역 사건이 ‘여성 혐오 살인’이냐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의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는 어디까지나 토론과 논쟁으로 입증돼야 할 문제이지, 배제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성 혐오 살해’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으면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고, 이견에 대한 비민주적 배제일 뿐입니다.

이것은 연대와 차이의 존중이라는 퀴어퍼레이드의 취지를 주최측이 스스로 부정한 격입니다. 몇몇 쟁점들과 해방의 전략에 관한 진보·좌파단체들 내의 견해 차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 때문에 당면한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맞선 투쟁에서 연대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성소수자 차별에 맞서 함께 투쟁하면서도 정치적 이견에 대해서는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폄하”를 이유로 든 것도 부당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다종다양한 페미니즘들과 여성해방론이 존재하고, 노동자연대는 다양한 페미니즘들에 대해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밝혀 왔습니다. 조직위원회는 어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지 밝힌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내부의 견해가 통일돼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특정 페미니즘을 지지해야만 부스에 참가할 수 있다는 제한도 없었습니다(또한 이런 일이 가능치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단체가 자신의 페미니즘을 당연히 다른 단체도 받아들일 거라고 전제하는 것은 그 사상을 모종의 도그마로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만약 조직위원회를 주도하는 특정 단체나 구성원이 자신들의 이론을 공동행동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려 한다면, 성소수자 해방 운동을 위한 연대를 약화시키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조직위원회는 노동자연대처럼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일부인 마르크스주의 단체의 부스는 배제하면서도,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대사관 부스는 선정하는 이중잣대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 CEO의 숱한 성희롱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성차별적 광고로 유명한 ‘아메리칸 어패럴’ 같은 기업이 이미지 변신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퀴어문화축제를 활용하는 것이 용인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에도 조직위원회가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조직위원회의 부당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연대는 언제나 그랬듯이 성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을 해 나갈 것이고 마르크스주의적 성소수자 해방의 전망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016년 5월 25일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