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다가오며 논쟁이 격화되고 양측 주류의 주장은 점점 지저분해지고 있다.

5월 말 [우익] 탈퇴파는 “터키(인구 7천6백만 명)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려 한다”는 표제와 영국 여권 사진을 이용한 인종차별적 포스터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잔류파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경제가 1년 동안 침체할 것이라고 예측한 영국 재무부의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는 세계적 경제 위기가 닥친 2008년에 영국 경제가 2.5~3퍼센트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던 ‘천재’들이 작성한 것으로 참으로 신뢰하기 힘든 자료이다.

한편, 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이해할 수 있지만 옳지 않은 가정, 즉 유럽연합과 국제주의가 관계 있다는 가정에 기초해 잔류에 투표할 듯하자 많은 좌파들이 잔류를 지지하고 있다. 이는 이해해 주기도 어렵고 옳지도 않은 결정이다.

유럽연합을 개혁할 수 있을까?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좌파들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현재의 유럽연합이 야만적이라는 사실(비유럽 출신 난민들을 혹독하게 대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신자유주의적 긴축에 헌신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개혁할 수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필자는 전국을 돌며 이런 입장의 좌파들과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그 누구도 유럽연합을 개혁할 실질적 방도를 제시하지 못했다.

유럽연합 안에는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득실득실한 집행위원회나 유럽중앙은행 같은 기구들이 많다. 이 기구들이 내리는 결정은 대체로 여러 국가의 정부들이 유럽이사회 같은 기구에서 벌이는 흥정을 통해 이뤄진다.

유럽연합 안에는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믿을 만하고 민주적인 기구가 없다. 유럽의회는 [유럽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의원들로 구성되지만] 법안을 제안할 권리조차 없다. 이런 유럽의회가 유럽연합을 개혁할 수 없음은 불 보듯 훤하다.

유럽연합 안에서 무언가를 개혁하려면 조약을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28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28개 회원국 모두에서 좌파가 승리한다면, 굳이 유럽연합을 개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이익을 증진시킬, 진정으로 국제주의적인 기구를 새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유럽연합에 친화적인 좌파 세력의 성장 물결을 통해 유럽연합 기구들을 변화시키자는 생각은 그리스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최근 합의된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따라 그리스 시리자 정부는 연금 개악을 추진하고 있고, 유럽연합은 이를 격려하고 있다. 그리스 의회에서 시리자와 연정 파트너인 우파 정당 그리스독립당만이 지지해 연금 개악안이 통과될 때, 의회 바로 앞에 있는 신타그마 광장에서는 시위 진압 경찰이 최루가스를 사용하며 시위대를 탄압했다.

그 몇 주 뒤 그리스 정부는 마케도니아와의 접경지 이도메니의 무허가 난민촌을 철거했다. 경찰들이 이 난민촌을 습격해 난민들을 공식 난민촌으로 내쫓는 동안 기자들의 출입은 금지됐다. 그리스 정부의 이 조처는 유럽연합과 터키가 맺은 합의를 따른 것이고, 이 합의는 유럽연합의 이민 통제 강화의 일환이었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터키 땅에 갇힌 시리아 난민 2백70만 명 가운데 1백77명만이 [이 합의에 따라] 유럽에 정착할 수 있었다. [0.007퍼센트 미만] 과연 시리자가 유럽연합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유럽연합이 시리자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이제는 유럽연합을 국제통화기금 IMF나 세계무역기구 WTO처럼 여겨야 한다. 개혁할 것이 아니라 폐지해 버려야 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기구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연합 탈퇴가 영국 노동자들에게 해악적일까?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좌파들의 둘째 주장은 이렇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영국인들은 보리스 존슨 정부의 자비에 기대야 한다.’ [보리스 존슨은 보수당 정치인으로 2008~2016년 5월 런던시장을 역임했다. 이 주장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보수당에, 그 중에서도 탈퇴를 강하게 주장하는 보리스 존슨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뜻이다.] 데이비드 캐머런[보수당 소속 현 총리]이나 조지 오스본[보수당 소속 현 재무장관]에 견줘 왜 보리스 존슨이 특별히 더 악독하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영국의 급진좌파가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보수당 내 계파 싸움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 정도로 우리의 기대 수준을 낮추면 안 된다. 그것은 비관론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릴 뿐이다.

영국 좌파는 국내외에서는 자본주의 기구들을 약화시키고, 국내에서는 보수당의 위기를 심화시키며 보수당 안에서 점증하고 있는 갈등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좌파적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연대체 ‘렉시트’(Lexit)[‘좌파적’과 ‘탈퇴’의 합성어]가 출범해 국제주의 시각에서 유럽연합을 반대하는 세력을 규합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렉시트’는 국민투표 관련 논쟁에서 주도적인 세력은 아니다. 그러나 ‘렉시트’의 활동은 노동조합과 좌파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5월 철도·해운·교통노조 RMT, 철도기관사노조 ASLEF, 제과음식노조 BFAWU가 공동 발표한 매우 훌륭한 성명서를 보자. 그 성명서는 좌파적으로 유럽연합 탈퇴에 투표하자고 호소하는 한편 이런 주장을 했다.

“영국독립당 UKIP과 달리 우리는 영국이 고립된 섬처럼 돼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영국은 말할 나위 없고 많은 나라가 이민자의 나라다. 우리는 모두가 임금을 평등하게 받고 직장에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를 바란다. 우리는 영국의 요새화를 지지하지 않고, 따라서 유럽의 요새화도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과 박해와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가족과 아이들의 유럽 입국이 불허된 현실에 비통함을 느낀다.”

이 말을 영국노총 TUC의 전 위원장 브랜든 바버가 총리 캐머런과 함께 연단에 올라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주장한 것과 비교해 보라. 바버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영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될 것이라면서, 자기 조합원들의 임금을 공격하고 있는 자와 손을 잡았다. 이는 최악의 계급 협조 노선이다.

6월 23일 국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렉시트’는 독립적이고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유럽연합 반대 주장을 펼친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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