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시끄러운 이 때 의미 있는 새 책이 나왔다. 《현대조선 잔혹사》(후마니타스)는 구조조정으로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시달리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항변하고 있다.

〈프레시안〉 기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허환주 씨는 지난 수년 간 발로 뛰며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을 취재해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잠시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노동 현실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높은 노동 강도와 안전이 뒷전인 작업 조건 속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 아침 다시 똑같은 일을 해야 하다니. 평생 이렇게 일해야 한다면, 나는 할 수 있을까.”

허환주, 후마니타스, 304쪽, 15,000원

그런 노동을 평생 해 나가는 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가득하다. 그들은 모두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자본의 탐욕 앞에 이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졌다.

한 여성 노동자는 임금을 떼여 생계가 위협받자 원청 사장실을 점거했다. 다른 한 노동자는 산재 신청을 했다가 해고되고 불구가 되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조선소에서 방사선을 다루다 피폭돼 결국 사망한 한 노동자의 마지막 절규는 자본주의 착취의 끔찍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도 후회됩니다. 왜 그리 회사의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억척스럽고 어리석게 일했는지 …”

저자는 산재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2014년 현대중공업 계열사에서 하청 노동자 13명이 숨졌다. 올해만도 정규직을 포함해 7명이 숨졌다. 그런데도 산재 은폐는 일상다반사다. 기업주들이 산재로 인한 불이익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 OECD 최고의 산재 사망률을 자랑하지만, 산재 사고율은 매우 낮은 기이한 현상을 나타낸다.”

무리한 공기 단축 압박은 노동자들을 위태로운 작업으로 내몰고 있다. 이것은 “외나무다리 위를 뛰어라, 단 넘어지지 말[라]”는 것과 같다.

저자는 정부의 관리 감독도 매우 형식적이라고 지적한다. “3백48명의 [산업안전]감독관이 1인당 평균 4천8백50개 사업장, 4만 2천3백64명의 노동자를 담당하고 있다. 상시 감독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언제나 원청의 감시와 탄압이 뒤따랐다. 저자가 폭로한 원청의 일상적인 노조 감시와 노동자 통제는 치가 떨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핵심은 이윤의 극대화”라고 지적한다.

“이익이 날 때는 … 회사가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였지만, 적자가 발생할 때는 손실을 모두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한 것이다. 수많은 하청업체가 무리한 기성(하청에 주는 비용) 삭감으로 줄도산하고, 그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과 정리 해고는 물론, 일하다 목숨까지 잃고 있었다. ‘이윤의 극대화’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노동자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대안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

저자는 몇몇 논자들의 주장을 빌어 여러가지 대안을 소개한다. 기업살인법 제정, 산재보험법 개정, 임금과 안전이 보장되는 일자리 등이 그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모두 필요한 일들이다.

그런데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부가 어지간한 압력만으로 이런 제도 개선을 할 리가 만무하다. 따라서 더 많은 이윤은커녕 생산을 멈춰 이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 투쟁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려면 잘 조직돼 있는 정규직 노조가 하청 노동자 문제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단결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은 가능하다. 또한 그것이 서로에게 이롭다. ⓒ〈금속노동자〉

저자는 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의 두 배 정도 되는 현대중공업에서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말한다. 정규직 노조도 하청 노동자들이 조직돼야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노동운동 일각의 주장에 더 주목하는 듯하다. 특히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박종식 전문연구원의 주장을 우호적으로 소개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하청 노동자 증가는 위험한 고강도 노동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기고 고용 안정을 보장 받으려 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노사 담합”의 결과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를 늘려 이익을 얻은 것은 오직 조선업계 기업주들 뿐이다.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의 증가로 인해 고용과 노동조건에 압박을 받았고 투쟁력도 약화됐다.

정부와 우파가 위선적이게도 비정규직을 위해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종식 같은 주장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이런 논리가 지배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원하청 단결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원하청 단결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원하청 노동자 모두에게 이롭다. 현실에서 단결의 가능성도 볼 수 있다. 지난 1~2년 사이에 현대중공업에서는 하청 노조의 가입 운동, 고용 승계 투쟁에 정규직 활동가들도 열의 있게 나섰다.

하청 노동자들은 잠재력도 있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한 원청 관리자 출신 하청업체 사장의 말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청 직원들이 들고 일어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다.]”

조선소의 수주 잔량이 꽤 남은 상황에서 이런 잠재력을 현실화하고 원하청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운다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투쟁 건설에 방해가 되는 일들(지배자들의 분열 이데올로기, 노조 관료주의 등)을 극복하기 위한 좌파 활동가들의 노력과 그것을 추동할 현장에 뿌리 내린 사회주의 조직의 존재일 것이다.

이 책이 폭로하고 있는 기업주들의 악랄함과 하청 노동자들의 끔찍한 처지는 그런 투쟁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