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기지 배치 지역이 성주로 발표된 지 거의 한 달째인 8월 8일. 26일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성주 군청 마당에 도착했다. 급작스런 소나기를 헤치고 성주 IC에 닿자마자 도로에 사드 반대 현수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주읍에도 도로를 가로지르는 현수막들의 물결이 인상적이었다. 이것만 봐도 성주 주민들의 분노를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촛불문화제에 온 아이 성주에 배치될 사드는 아이들의 생존과 미래를 위협할 것이다. ⓒ조승진

초등학교 및 중·고등학교 학부모회, 종교단체, 각종 취미활동 모임, 사회단체, 상점들 명의의 사드 반대 현수막을 보면서 문구들을 받아 적는 데도 족히 하루가 걸릴 만했다.

“사드배치, 어림없다 전해라”(대기초 27회 동기회), “누구를 위한 사드인가 국민 기만한 정부 규탄한다”(성주초 65회 동기회), “사드 꺼져!”(대구경북 작가회의), “인구밀집 지역 사드 배치 웬말이냐”, “조상에 얼과 혼이 담긴 성주에 사드 배치 웬말이냐”(성주의 경주 김씨), “사드가 안전하면 청와대에 배치하라”(성주초 바둑연합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유해한 전자파, 엄마 아빠가 지켜줄게 사드 절대 금지”(원불교 성주교당), “국민이 마루타냐 사드전자파 생체실험 반대한다”, “성주로 사드배치 결사 반대한다”(새마을부녀회), “생존권 침해하는 사드 반대한다”(성주군새농민회), “사드가 웬말이냐 다 죽일라카나”(경상북도 성주교육지원청 성사모), “군민이 뽑은 니들은 탈당 안 하냐?”, “생명에 웃고 死드에 운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 사드 반대한다”, “사드? 맛 좀 볼래?”(성주읍 태권도 선수단), ”참외도 기가 막혀”.

현수막 문구들에서 주민들이 느끼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묻어난다. “앞장서서 해 줬더니 돌아온 건 사드네.” 집권 여당에 대한 분노도 깊다. 매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성주군청 마당의 여러 텐트에 있는 “새누리당 탈당 신청서”가 이를 증명하리라.

박근혜에 배신감 느끼는 성주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은 것을 후회하는 성주 주민들이 많다. ⓒ조승진

분노는 여러 연령대에 걸쳐 광범했다. 최근 성주 근처에 공단이 생겨서인지 젊은이들과 아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No 사드” 미니 스티커가 부착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성주 군민들은 사드 미사일 기지가 생존을 불안하게 할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성주군민 똘똘 뭉쳐 사드 배치 막아내자”라는 대형 스티커를 부착한 마을버스, 확성기로 사드 배치 반대 로고송을 내 보내는 방송차가 성수읍 도로를 오간다.

그중에서 깊이 각인됐던 현수막은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사드 최적지는 없다”이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 내 타 지역으로의 배치 가능성을 흘리자 성주투쟁위원회는 보란 듯이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사드 배치 불가”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각고의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얻어낸 훌륭한 결론이었다. 성주투쟁위원회 명의와 여러 직능단체 명의로 걸린 이 현수막을 성주에서 발견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사드 한국 배치 반대! 성주만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된다는 현수막을 성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조승진

인간방패

나는 성산포대와 군청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현수막 문구들을 보느라 약간 느린 걸음으로 성산포대가 있다는 쪽으로 걸었다. 서울이나 여느 중소도시의 주거 밀집지역 풍경과 다를 바 없는, 상점이 즐비한 도로를 따라 한 20분쯤 걸었을까? “성산포대가 어디쯤 있습니까?”라고 묻자 길 가던 어르신께서 답해 주셨다. “저 길 건너가 바로 성산포대요. 미칬다! 미칬다!” 실제로 성주읍 마을과 성산포대 사이의 거리는 1.2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성주읍의 학교들에서 성산포대는 훤히 내다 보인다고 한다. 포대가 있는 산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하나의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인간방패! 성주군민들, 특히 성주읍 주민들 2만 5천 명을 인간방패로 쓰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이런 결정을 어찌 내릴 수 있겠나 싶었다.

일설에 따르면 성산은 성스러운 산이라 하여 약 2천 년 전부터 주변 형세를 훤히 살필 수 있는 요충지였다 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전쟁 때에도 전략적 요충지 구실을 했다고 한다. 성산포대 지역은 한때 방공호로도 활용됐다 한다.

그래서 지난 3월 미군은 두 번이나 성산포대를 자세하게 조사하러 왔다 한다. 그때 이미 미군은 이 지역을 사드 배치 지역으로 낙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사일 발사 기지로 만들겠다는 그곳을 한참 바라보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동북아시아를 미사일이 오가는 전장으로 만들 수도 있을 MD 체계의 물리적 실체가 시야에서 어른거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8백15명

8시에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이미 7시 반부터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성주투쟁위원회 천막에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백악관에 제출할 사드 배치 반대 서명을 조직하느라 분주했다. 전자서명으로 이뤄지는 이 서명에 이미 9만 명이 넘은 이들이 참여했다.

사드 배치 반대 메모판에는 ‘사드배치 철회를 위한 성주군민 소식지 1318’ 소식지가 붙어 있었다. 반가웠다. 투쟁 소식과 일정 그리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싣는 소식지였다. 8월 14일 광화문 집회 소식과 8월 15일 성주 주민들의 2차 궐기대회 일정도 담겨 있었다. 민주적 토론과 연대, 단결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눈길을 끈다. “투쟁의 의제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좁았던 의제의 폭이 넓어지면서 생기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다양함’입니다.”

소식지에는 사드 배치 반대의 목표 아래 단결하자는 주장도 있다. “우리가 갈라지고, 떨어져 나가기만을 원하는 이들은 바로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자입니다.” 성주 군민을 응원하는 전국의 목소리를 싣는 란도 눈에 띈다. 성주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이곳에 휴가 온 포항 시민의 연대메시지도 있었다.

주민들의 카톡방 메시지도 소식지를 통해 공유한다. “첨에 성주에 사드가 들어올 때에는 우리 지역만 아니면 되지 하는 그런 맘이 조금은 있었는데, 집회 나와서 사드에 대한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한반도 그 어디에도 사드는 안 된다고 잠꼬대하면서도 외치고 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촛불문화제를 조직하는 데서 힘을 보태고 있음을 수시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15일 주민 1만 명 이상이 참여한다는 2차 궐기대회 때 성주 주민 8백15명이 삭발한다는데, 삭발 신청 부스도 주민들이 운영하는 모습이었다. 새누리당 탈당 신청 부스, 서명 부스, 물품 조직 천막 등 일도 많았지만 일손도 많았다. 깔깔거리면서 웃고 격려하는 주민들의 얼굴들. 문화제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물과 떡을 나눠 준다. 서로 떡을 하겠다고 난리라 한다. 풍성한 인심이고 탄탄한 지지다.

진정한 ‘외부세력’은 누구인가

적어도 내가 만난 성주 군민들은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을 간절히 바란다. 전국에서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촛불문화제 사회자가 보고하자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서울 학생들이 만든 지지 율동 영상을 보며 너나 할 것이 없이 좋아라 어쩔줄 모르신다. “우리는 외부세력, 대구시민”이라는 역설적 글귀가 쓰여진 파란색 보자기를 멘 참가자들을 보면서 연신 ‘잘 왔소, 잘 왔소’ 하신다.

성주군민들이 얘기하는 ‘외부세력’은 대체로 우파 신문, X맨 역할을 하는 공무원, 경찰들이다. 누구나 성주에 온다면 “성주군민은 조선일보와 연합뉴스 기자들의 취재는 거부합니다”라는 스티커를 성주군청 마당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성주투쟁위원회 미디어 홍보 부문에서 활동하시는 한 분은 촛불문화제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라는 입장으로 토론이 정리되고 망치 소리가 났음에도 그 결정을 무색케하는 소문을 유포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한다. 경찰들도 회의장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한다. 이들이야말로 외부세력이다” 하고 말했다. 그 분의 발언에 격한 호응과 큰 박수가 이어졌다.

진보단체들에 대한 거부감도 찾기 어려웠다.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현수막, 진보단체들이 연대 명기한 진주지역에서 온 현수막도 보기 좋은 곳에 잘 부착돼 있었다.

자유발언과 문화공연이 어우러지고 결의가 샘솟는 두 시간이 매일매일 기다려진다고 한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정신 똑바로 차릴기다. 새로 태어났다!”고 말씀하신다. 주름살 사이의 그 맑고 또렷한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8월 15일 성주에 사는 웬만한 성인들은 참여한다는 2차 궐기대회. 그날은 사드 성주 배치가 발표된 지 사실상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서 중요한 날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촛불을 든 성주 주민들 . ⓒ조승진
결의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성주 주민. ⓒ조승진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성주 주민들 . ⓒ조승진
성주 주민들은 사드 배치 발표 후 매일 촛불문화제를 이어오고 있다. ⓒ조승진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성주 주민들 . ⓒ조승진
8월 8일 26차 성주 촛불문화제 . ⓒ조승진
사드 배치는 성주를 넘어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 ⓒ조승진
성산포대 입구 이 길을 따라 사드가 들어가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조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