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주디스 오어가 2016년 7월 방한해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한 강의를 녹취한 것이다.


오늘날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오는 길에도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것은 지난 몇 세대 동안 여성의 지위가 현격히 신장된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 상품화는 단지 포르노 문제가 아닙니다.(포르노 자체로도 굉장히 큰 산업이지만요.) 성 상품화는 훨씬 더 광범한 현상을 가리킵니다. 영국에서는 ‘사회의 포르노화’라고까지 부릅니다.

한편, 포르노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두고 영국에서는 페미니스트들 사이, 활동가들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큽니다. 어떤 사람들은 1960년대 페미니스트들처럼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로빈 모건이 그중 한 명입니다. 영 페미니스트(young feminist)들은 ‘포르노는 별거 아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적 포르노와 착한 포르노(free range porns)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케이틀린 모란이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이처럼 젊은 세대는 포르노를 정상적 문화의 하나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의 상품화와 대상화는 더 노골적이고, 더 고약해졌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단선적이고 꾸준한 진보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즉, 우리가 이룬 많은 성과가 자본주의 하에서는 끊임없이 도루묵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0~15년 동안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야한 문화’(raunch culture)의 성장입니다. ‘야한 문화’는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고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는 것을 마치 멋지고 ‘쿨한’ 것인 양 찬양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SWP는 일찍부터 이 현상을 주목하고, 제가 2004년에 ‘신체의 상품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아리엘 레비라는 저술가도 ‘야한 문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아리엘 레비는 ‘야한 문화’를 다룬 《여성인 남성 우월주의자 녀석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그다지 바람직한 제목은 아니죠. 제가 《소셜리스트 리뷰》에 실으려고 아리엘 레비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는 책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여성인 남성 우월주의자 녀석들’은 포르노 제작사나 성산업 기업을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좀 오래됐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설명은 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성의 성의 대상화·상품화를 찬양하는 현상을 굉장히 잘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리엘 레비가 제2물결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딸이기도 했고, 그 자신이 레즈비언이어서인지 성소수자들이 이런 식의 상품화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도 기술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책은 여러 페미니즘 도서 중에서도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더 자유로워진 것이 결국에는 여성의 성의 상품화가 어마어마하게 폭발하는 것으로 귀결됐습니다. 영국에서는 굉장히 호화스러운 랩댄스 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심지어 대학 동아리의 여학생들이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며 폴댄스를 추는 일도 흔합니다. 제가 영국 각지에 강연하러 다닐 때, 젊은 여성들이 이런 반론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폴댄스가 뭐 대수냐’, ‘내 친구도 나도 랩댄스 클럽에서 폴댄스 추면서 등록금을 번다’, ‘우리가 남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느냐.’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런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 상품화 문제를 다룰 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영국에서 줄리 빈델 같은 근본적(radical) 페미니스트들은 랩댄스 클럽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도 랩댄스 클럽 반대 운동을 지지합니다. 그런데 그 주장 방식이 세심해야 합니다. 즉,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줄리 빈델은 경찰력을 동원해서라도 랩댄스 클럽을 폐쇄하자고 하는데, 우리는 이를 찬성하면 안 됩니다. 

성 상품화가 어떻게 광범해졌나?

그러면 성 상품화는 오늘날 어떻게 광범해졌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1960~70년대 운동 덕분에 여성이 성적 자유를 더 많이 누리게 되고 성적으로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게 한 변화가 그 배경에 있습니다. 1960~70년대 전 세계에서 벌어진 여성 해방 운동에서는 성해방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섹슈얼리티 표현 등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 요소는 성소수자 해방 운동으로도 번져 나갔습니다. 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반전 운동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중후반과 1970년대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피임약이 보급되고 낙태권이 보장되면서, 처음으로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 걱정 없이 성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성의 자유 확대

흥미롭게도 최근 들어서 이에 대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성의 자유 확대가 결국에는 남성들에게만 득이 됐지 여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성들이 임신 걱정을 이유로 성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고, 그 결과 남성들은 더 많은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여성들은 즐길 수 없으면서 그냥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멘 그리어 같은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줄리 얼롱이라는 좀 덜 알려진 사람도 그런 주장을 편 책을 몇 권 썼어요. 실비아 페데리치라는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여성에게 섹스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여성에 대한 부르주아 사회의 편견, 즉 여성들은 단지 안정적으로 자신을 부양해 줄 남편감을 원할 뿐 성을 능동적으로 즐길 수는 없는 존재라는 관념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입니다.

1960~70년대 페미니스트 출신인 바버라 에렌라이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1960~70년대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라고 표현된 성의 자유 확대는 단지 영화 같은 곳에서나 묘사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정말로 해방감을 느꼈고, 성이 이렇게 자유로워진 것은 정말 큰 진전이었다.” 마찬가지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보수적 페미니스트들의 견해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성의 자유 확대는 허공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성 지위의 실질적 변화, 즉 고등교육에 더 많이 진학하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호황기를 거치면서 노동시장에 대거 진출하고, 때마침 피임약이 보급되고 낙태권이 인정되는 변화들이 결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1960년대 여성 해방 운동이 떠오르기 전의 현실이 어땠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는 여성이고 남성이고 자기 몸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해서 심지어 결혼한 여성이 아기가 어디로 나오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의사들은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아래 쪽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여성이 혼외 임신을 하면,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 초 페미니스트 저서들은 여성의 신체를 그림으로 보여 주면서, ‘이게 뭐고, 이게 뭐다’는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당시 현실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흔적은 오늘날에까지도 남아 있어요. 1960년대 이전에는 혼외 임신이 워낙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다 보니 혼외 임신을 한 여성들은 아이를 입양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양을 보내고 나서는 찾을 길이 없었죠. 그래서 영국에서는 지금도 그 시절에 입양 보낸 자녀를 찾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1960년대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저항은 베트남에서 미국을 쫓아내는 통쾌한 승리를 거뒀고, 다른 운동들도 큰 성과를 냈지만,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살아남은 상황에서 우리가 일군 성과는 여러 방식으로 뒤틀려 체제 안으로 흡수됐습니다. 사회는 여전히 억압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에 대해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이 역설이게도 성 상품화가 더 노골적인 형태로 확산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즉, 성해방이 자본주의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굴절돼, 전혀 성해방이 아닌 것으로 변하는 것이죠.

자본주의라는 프리즘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성적] 매력이 재산처럼 됐어요. 자본주의 하에서는 섹스가 화폐처럼 되기도 합니다. 영국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이런 문구가 새겨진 바지를 입기도 합니다. “신용카드 따위가 왜 필요하냐?” 자기한테 이것저것 사 줄 수 있는 스폰서를 잡으면 되니 신용카드는 필요 없다는 말인데, 끔찍하죠.

그런데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자라나면서 이런 것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통해서 굴절된, 굉장히 정형화되고 메마르고 상업화된 버전의 성만 접하지, 성이 개인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접하지 못합니다.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늘기는커녕, 섹슈얼리티에 대한 매우 협소한 관점만 남은 상황입니다.

젊은 세대 사람들뿐 아니라 더 나이든 여성들도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한국에서도 들어 보셨을지 모르지만, 영국에서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사회적으로 뜨거운 화두가 됐습니다. 이 책 내용은 부유한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여자랑 관계 맺는다는 ‘연애 얘기’인데, 그 연애 관계의 실상은 남자가 여자를 학대하는 관계입니다. 사실 진짜 추한 관계인데,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게 ‘뭔가 색다르다’, ‘자극적이다’ 하면서 엄청 재미있게 본 듯하고, 그래서 국제적으로 ‘히트’를 쳤습니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그보다 더 건강하고 다양하게 관계 맺는 방식을 전혀 접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물론 여성의 몸과 성이 상품화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오래된 일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현상이 새로운 이유는 그것이 마치 성해방의 표현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강요되기 때문입니다. 포르노를 싫어하고 성적 농담을 즐기지 못하면, ‘굉장히 딱딱한 여자다’, ‘쿨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낙인 찍힙니다.

제가 오늘 여기에 오면서도 지하철에 성형수술 광고가 도배돼 있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성형수술이 마치 여성의 권력을 신장시켜 주는 것인 양 광고됩니다. ‘당신 몸매에 불만이 있는가? 슈퍼모델처럼 보이지 못해서 부끄러운가? 그렇다면 성형수술을 받아라, 그래서 더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이 돼라’고 말한다는 것이죠.

어느 미국 페미니스트는 가슴 확대 수술을 받고서, 그것이 “페미니즘적인 선택이었다”라고 자랑했습니다. 이는 ‘여성이 뭘 하든 그것은 여성의 선택이다’라는 제3물결 페미니즘의 정신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을 물신화하는 소비 지상주의의 한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몸매를 갖기 위해 여성들이 자기 몸을 깎고 째야 하는 사회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런 온갖 여성 차별적 언행과 관념이 어떤 물질적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맑시즘2016 주디스 오어 연설②: 여성 차별과 해방’을 보시오.)

한편으로 여성은 가정을 책임지는 현모양처로서의 이상에 부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섹스의 신이 돼야 한다는 압력도 받습니다. 이 두 가지 관념은 서로 모순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비롯하는 모순입니다.

신체 노출도 상품으로 다뤄질 때는 훨씬 더 노골적으로 표현될 수 있어서, 공공 장소에서 보여지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더 쉽습니다. 가령 쇼핑몰에는 여성의 가슴을 드러낸 사진을 표지에 실은 잡지가 버젓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성이 자기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려고 가슴을 드러내면, 직원들이 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며 제지할 겁니다. 영국 의회 건물도 모유 수유 금지입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렇다면 성 상품화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우선 우리는 줄리 빈델처럼 국가 권력이나 경찰에 기대려 해서는 안 됩니다. 포르노를 국가권력을 통해 금지하려고 하면, 정작 폭력적인 포르노가 아니라 LGBT 영화가 금지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큰 기대를 걸었던 포르노 금지법이 통과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 유명한 게이 도서 판매 서점이 경찰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동성애나 자유로운 섹슈얼리티 표현을 모두 변태물로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의존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자유로운 섹슈얼리티 표현

반면, 학생회가 대학 내 상점에서 남성 잡지를 팔지 말라고 요구하며 벌이는 캠페인은 지지해야 합니다. 이런 캠페인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일반으로 말해 우리의 기본 접근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곡되고 형해화된 섹슈얼리티 관념의 강요와 범람에 맞서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것을 권장하고, 진정한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더 개방적으로 얘기할 수 있게 한다.

예컨대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본주의 하에서는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섹슈얼리티도 상품 형태라면 노골적으로 표현돼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포르노에서 배우가 레즈비언을 연기하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레즈비언이 거리에서 손잡고 다니며 애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고무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운동 등 급진적 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성의 자유는 중심적 요구 중 하나였습니다. 1960~70년대 성해방을 요구하며 싸운 많은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전에 러시아 혁명이 쟁취한 성해방의 기억이 스탈린주의 탓에 완전히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미국 공산당 전통이 단절돼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실라 로보섬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의 수많은 노동운동 투사들이 여성 권익을 위한 훌륭한 투사이기도 했다는 점을 잘 보여 줬습니다[《아름다운 외출 – 페미니즘, 그 상상과 실천의 역사》(삼천리)를 보시오]. 또한,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는 여성 차별의 물질적 기반인 가족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맑시즘2016 주디스 오어 연설②: 여성 차별과 해방’을 보시오.)

물론, 러시아 혁명 직후 최우선 과제는 반혁명에 맞서고 물질적 궁핍을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짧은 기간이었을지라도,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실험이 있었어요. 예컨대 동성애가 더는 불법이 아니었고, 낙태가 전면 합법화되고, 누구나 원하면 이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섹스는 부끄럽거나 죄스러운 일이어서는 안 된다. 섹스는 건강한 유기체의 다른 필요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고 목마를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하고 학생들이 성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도록 크게 장려됐습니다.

물론 혁명의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스탈린 반혁명 이후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고, 아이를 많이 낳으면 훈장을 받는 세상이 됐습니다. 여성들에게 섹스는 즐거움이 아니라, 다시 임신·출산을 위한 것이 돼 버렸습니다.

사회 변혁과 섹슈얼리티

저는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책갈피)에서 이런 혁명적 시기에 사람들이 성에 대해 더 개방적으로 변하며 새로운 실험을 하는 사례를 많이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혁명적 시기뿐 아니라 양차대전 사이에 일어난 변화도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당시에 노동계급·중간계급 여성들이 쓴 수기를 읽어 보면, 마치 그들이 전쟁을 정말 좋아하기라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인생이 확 바뀌는 경험을 반기며 기록했기 때문이죠. 남성들이 다 전쟁터에 나가자, 갑자기 여성들이 대거 일자리를 갖게 되고, 여자들끼리 술집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하고, 재정적으로도 독립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수기들에서는 정말 마치 전쟁이 여성을 해방시키기라도 한 듯 여기는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1930년대에는 피임 정보가 실린 책자가 출판됐습니다. 또, 양차대전 중에 혼외 성관계를 맺는 여성의 비율이 급증했는데, 이 비율은 종전 뒤로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945년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3분의 1이 싱글맘이 낳은 아이였습니다. 제가 앞서 혼외 임신을 한 여성들이 아이를 입양 보내거나, 외할머니가 아이의 엄마인 것처럼 행세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죠. 그렇게 혼외 임신이 많았던 것도 여성들이 전쟁 기간 동안 해방감을 느껴서 집밖에서 더 많은 관계를 맺었던 것의 결과입니다.

모든 위대한 사회 변혁기에는 여성 문제가 전면에 대두됩니다. 성의 자유 문제도 전면에 대두됩니다. 앵겔스도 자유 연애가 모든 위대한 혁명의 중심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진정한 성해방을 이루려면, 실제 혁명이 필요합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해방은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하에서 사람들이 정말 자유롭게 자신의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수 있을 때의 성해방은 자본주의 하의 ‘성해방’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질의 응답

Q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 운동의 사례를 더 듣고 싶습니다. 또, SWP는 그런 운동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도 궁금합니다.

‘헤픈 여자처럼 입고 걷기’(slutwalk) 운동이 있습니다. 이 운동은 캐나다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느 경찰관이 대학에서 여성 안전에 대해 강연할 때 “헤프게 입지 마라. 그러면 성폭력 피해로부터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불씨였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세계로 번져 나갔습니다. 영국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헤픈 여자’(slut)라는 낱말을 운동이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문제제기했습니다. 그런 성차별적인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SWP는 이 운동에 흠뻑 뛰어들었습니다. 우리도 ‘헤픈 여자’ 같은 성차별적 낱말을 운동의 언어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배너를 내걸고 적극 참여했어요. 이 운동은 진정으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이 여성 책임이라는 관념에 맞서 여성들의 분노가 분출한 운동이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운동이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운동 내에서의 표현조차도 왜곡되기 일쑤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여성들이 ‘우리가 무엇을 입든지 우리 자유다’라는 의견을 표현하려고 거의 실오라기만 걸치고 시위에 참가했는데, 주류 신문들을 장식한 시위 사진은 바로 그 여성들의 사진이었죠.

어쨌든 이 운동의 활력과 기운이 워낙 건강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운동과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밤길 되찾기 운동’은 관계 맺기가 까다로웠어요. 이 운동은 원래 여성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에 탄생한 운동인데, 최근 페미니즘이 재부상하며 다시 등장했습니다. ‘밤길 되찾기 운동’은 여성들이 성폭력 걱정 없이 밤길을 다닐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런던 소호의 성인용품 상점 밀집 구역을 행진하면서 그 상점들의 문에 본드칠을 해서 사람들이 출입하지 못하게 하곤 했습니다. 이 운동이 오늘날 다시 부상했는데, 남성의 참가를 불허하고 ‘모든 남자들이 문제다’ 하는 생각이 큽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이의를 제기하라’(object) 운동이 있습니다. 성차별적 표현에 맞서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의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몇 년 전 영국에서 열린 미스월드 미인 선발대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물론 이때도 우리는 대회 참가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 시위는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페미니스트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또, 언론에 보도도 많이 됐어요.

‘헤픈 여자처럼 입고 걷기’ 운동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면, 좌파 중 SWP만이 이 운동에 처음부터 적극 참여했습니다.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많은 경우 ‘헤픈 여자’라는 낱말에 거부감을 느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도 ‘헤픈 여자’라는 낱말 사용은 진짜 문제라고 봤지만, 이 운동에 적극 뛰어든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좌파들도 결국 이 운동에 참가했는데, 2주년 때였습니다. 이 운동이 확 떠오른 것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움직인 것이죠.

Q 오늘날 한국에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 쟁점에는 관심을 많이 두지만,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에 맞서 싸우는 투쟁에는 큰 힘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향이 영국에도 있는지, 그렇다면 이런 경향을 극복하게 하는 데서 SWP가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최근에 벌어진 중요한 투쟁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국에서는 페미니즘이 처음부터 좌파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급진좌파의 세가 컸고, 노동조합 조직도 많아서 영국 페미니스트들은 초기부터 계급 문제를 중요하게 봤습니다. 근본적 페미니스트들조차 여성 노동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봤습니다. 예컨대 1970년대 초 사무실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파업 피켓 대열에 결합해 리플릿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여성운동의 기반이 중간계급 특권층 여성들이었어요. 그들은 대학을 다닌 여성들이었습니다. 여성 대졸자는 비록 그 비율이 커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사회에서는 소수였고, 전문직으로 나아갈 기대가 높았던 층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신좌파가 성차별적 태도를 공유했다는 것도 [미국 여성운동의 성격 형성에 작용한] 한 요인이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사회주의 왜곡 때문에 사람들이 소련을 사회주의로 봤고, 미국의 신좌파는 여성 차별에 맞선 예전 좌파의 전통을 이어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존 사회의 성차별적 관념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1930년대에만 하더라도 미국에는 대중적 공산당이 있었고 흑인들도 포함돼 있었어요. 공산당은 굉장히 활기 넘치는 조직이었는데, 스탈린주의에 타협하고 매카시즘 탄압으로 파괴돼 그 전통이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이렇게 전통과 완전히 단절되거나 스탈린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죠.

이처럼 미국에서는 좌파의 전통이 끊겼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초기 미국 여성운동을 주도한 많은 활동가들이 이른바 ‘붉은 기저귀’ 세대였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공산당 운동에 함께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여성들도 남성들과 평등하게 목소리를 내도록 장려받는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이었어요. 이 사실은 초기 미국 여성운동 활동가들의 집안 배경을 조사한 사회학자들에 의해 의도치 않게 발견됐습니다. 이처럼 20세기 초 사회주의의 여성해방 지향 전통이 면면이 살아남아서 여성해방 활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정말 영감을 주는 사실입니다.

다시 영국의 여성운동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영국 여성운동은 비록 미국 여성운동을 모델로 삼았지만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국 여성운동에서 계급 문제는 매우 핵심적인 쟁점이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이래 영국 노동조합 내에서는 ‘양성 평등’ 관념이 일종의 상식처럼 됐습니다. 많은 노동조합에 여성위원회가 있고 여성 쟁점을 다루는 토론회도 엽니다. 특히 조합원의 다수가 여성인 공공서비스노조(UNISON)나 교사노조 같은 노조에서는 ‘양성 평등’이 완전히 상식처럼 통합니다. 공공서비스노조는 여성 차별에 관한 연설대회도 개최합니다. SWP 당원이 그 대회에 나가 ‘최고의 여성해방 연설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2011년 공공부문 노동자 2백60만 명이 하루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중 대다수가 여성이었고, 그래서 이 파업은 영국 역사상 최대의 여성 노동자 파업으로 기록됐습니다.

Q 성 상품화가 만연해지는 것과 성범죄가 증가하는 것 사이에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있나요?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성범죄가 실제로 얼마나 일어나는지 잘 알 수 없어요. [통계상] 성범죄 발생 건수가 높아지는 것은 실제 범죄의 증가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고, 신고가 접수되는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여성들이 더 자신 있게 범죄를 신고할 수 있게 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성의 상품화와 소외가 심해지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검증하기는 힘듭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이 별로 없어요. 과학적 분석이라고 할 순 없지만 사람들의 진술에 근거한 연구가 있기는 합니다. 그에 따르면, 젊은 세대 사람들이 전보다 포르노를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포르노가 묘사하는 성행위 방식이 젊은 사람들의 성 인식에 전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성 상품화의 확산으로 성범죄가 증가한다고 단순히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과거에 드러나지 않은 성범죄가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최근 영국에서는 지미 새빌이라는 저명 인사가 1970~80년대에 여성 아동과 청소년 수백 명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범죄를 은폐하거나 같이 성폭력에 가담한 사람들이 사회의 권력층이었어요. 온갖 권력기관에 있는 자들이 끈끈하게 얽혀서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보면서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미 새빌의 범죄가 드러난 뒤, 당시에 새빌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여성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추행이 이 사건의 실체인데, 파면 팔수록 어마어마한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2년 동안 영국 사회를 계속 떠들썩하게 했는데, 아직까지도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어요. 하여간 지미 새빌의 성추행을 가리는 데 보수당 정치인과 교회 등 온갖 권력자들이 체계적으로 얽혀 있었어요. 이 사건의 전말은 아무리 파도 다 드러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일부 우익 평론가들은 1970년대에 이런 아동 성추행이 벌어진 것이 당시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적이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성적 개방 증대가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와 반대로 주장합니다. 오히려 당시 사회는 너무나 폐쇄적이어서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말하지 못한 것이고, 이제야 그나마 더 개방돼서 사람들이 당당히 피해를 밝힐 수 있게 된 거라고요.

여성이 대상화되면 남성들이 자동으로 쉽게 성범죄자로 돌변한다는 식의 단순한 설명을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도 한 가지 요소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더 복잡한 과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Q 10대의 성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영국에서는 법정 성인 연령이 16세입니다. 그래서 16세가 되기 하루 전인 여성과 16세가 된 남성이 성관계를 맺으면 강간죄가 성립합니다. 16세에서 하루라도 모자라면 법적으로 동의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물론 우리는 ‘10대들이 현실에서는 섹스를 많이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동의 하에 안전하게 섹스할 수 있도록 공공연히 제대로 된 논의를 해야 한다’ 하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까다로운 경우도 있습니다. 나이 많은 남성이 취약한 지위에 있는 10대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경우입니다. 지미 새빌 스캔들의 핵심은 지배계급에 속한 남성이 교회의 주일학교나 보육원이나 학교에서 여성 아동과 청소년을 성추행한 것입니다. 취약한 아동이 성인 남성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파들은 나이 많은 성인 남성이 어린 남성을 이용한다면서 게이 남성을 표적 삼아 공격합니다. 그 때문인지 맑시즘2016에서도 미성년자에 대한 성행위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물음이 성소수자 관련 워크숍에서 제기됐죠. 그런데 이 문제는 짧은 시간에 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영국에서는 게이 남성 간 섹스는 1967년에 합법화됐어요. 그러나 상호 합의로 섹스할 수 있는 법정 연령은 이성애자들의 기준보다 엄청 높았습니다. 게이 남성 간 합법적인 섹스는 21세 이후에나 가능했다가, 나중에 18세로 낮춰지고, 최근 들어 16세로 같아졌어요. 성소수자 운동이 크게 벌어지고 게이 남성들이 ‘왜 성소수자는 의사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느냐’며 [법정 연령 하향을] 요구하며 싸운 결과입니다. 아마 지배계급 눈에는 성소수자들이 섹스하는 것은 사악한 나이든 사람의 꼬임에 넘어간 결과로 보이겠죠. 우리는 10대 성소수자들도 자유롭게 합의해 섹스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성인의 아동 성추행은 이성애자 남성이 여자 아이들을 겨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이 성인 남성이 위험하다는 관념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Q ‘헤픈 여자처럼 입고 걷기’ 운동을 두고 영 페미니스트들과 올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고, 올드 페미니스트들은 이 운동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차이가 ‘야한 문화’ 전체를 둘러싸고도 나타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에만 해도 폴댄스는 스트립 댄스의 일종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텔레비전에서 폴댄스 추는 게 장려될 정도로 ‘야한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요. 올드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에서는 이런 현상이 여성의 존엄을 떨어뜨리는 거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야한 문화’를 둘러싸고]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인 것 같습니다. 매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와 구별 짓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영 페미니스들은 올드 페미니스트들이 중간계급 백인 여성들의 이해만 대변하는 것 같다고 여기며,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생각이 꽉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겨드랑이 제모도 안 하고, 헤어스타일도 ‘구리다’는 것이죠. 그에 대한 반발로 제3물결 페미니스트들은 ‘우리는 섹시하고 쿨하고, 멋들어질 수 있어’라면서 ‘섹시함’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는데, 실제로는 매우 왜곡된 형태의 ‘섹시함’을 받아들인 것이죠.

2000년대 초 ‘야한 문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올드 페미니스트들은 이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속된 말로 ‘멘붕’이었죠. 올드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이런 현상을 다루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다들 현상을 기술만 하고 설명하지는 못했어요. 우리가 여성해방을 이루려고 그렇게 싸웠는데, 요즘 애들은 폴댄스나 추고, 이게 뭐냐는 것이죠.

더 최근 들어서는 ‘야한 문화’에 비판적인 새 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상호교차성 개념을 받아들이며, 제3물결 페미니즘의 ‘쿨함’과 ‘섹시함’에 대한 수용이 사실은 전혀 ‘쿨’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질문자가 말씀하셨듯이 폴댄스가 주류화된 것은 커다란 변화입니다. 예전에 랩댄스 클럽들은 뒷골목에나 있었고, 남자들만 가고, 남자들도 드러내고 가기는 민망한 곳이었는데, 요즘에는 대로변에 버젓이 자리잡고, 호화스러운 간판을 달고, 남녀가 같이 가기도 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제가 한 도시에서 출판 기념 저자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연 끝나고 젊은 여성이 저한테 와서 ‘폴댄스 추는 여성들을 공격해선 안 되는 거 아니냐’ 하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폴댄스 추는 여성들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답변했어요. 그런데 그 여성은 대학 동아리 같은 곳에서 여성들끼리 배우면서 여가를 즐기는 것과 클럽에서 남성들의 음란한 시선에 노출된 채로 하는 것이 다르다고 여기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여성들끼리 개인적으로 즐기더라도 폴댄스의 기원이 성 상품화에 있는 것이므로, 둘 사이의 연관성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성도 제 취지를 이해했습니다.

개인적 취미로 하는 것일지라도 폴댄스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남성들은 하지 않아요. 폴댄스의 핵심은 여성들이 몸을 굽히고 비틀면서 남성들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폴댄스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Q 비욘세나 엠마 왓슨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요?

여성 주제를 토론할 때마다 비욘세뿐 아니라 킴 카다시안 얘기도 많이 나와요.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엠마 왓슨이 유엔에서 연설한 것을 보면, 내용상 주류적 페미니스즘의 관점이고 영향력이 그렇게 크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그들이 단지 ‘섹스 심볼’로 대표되는 게 아니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비욘세의 사례는 흥미로워요. 한편으로 비욘세가 미국 슈퍼볼 경기 개막 공연에 나와서 흑표범당을 모티브로 하는 공연을 해 화제를 모으거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비욘세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모순적입니다. 비욘세 자신은 부유하고 뭐든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여성이고, 그러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표현 방식은 ‘섹스 심볼’로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순된 부분도 있습니다.

정리 발언

10여 년 전 ‘야한 문화’가 처음 떠오를 때 섹슈얼리티, 성적 해방, ‘야한 문화’에 대해서 강연을 하면 많은 젊은 사람들이 참가해서 자기 삶에서 경험하는 것을 얘기하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굉장히 풍부한 토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개인적 경험, 그에 대한 분노, 불편한 심정을 수없이 토로했어요. 우리는 이런 개인 경험들을 사회?체제와 연결시켜 분석하고 설명을 해야 합니다. 이는 사실 주요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이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하는 반응을 보이거나 우리 관점에서 문제적인 것들을 금지하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됩니다. 새로운 현상을 분석해 설명을 제공하려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개방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가령 학교에서 성교육을 확대하고 성에 대한 얘기를 더 공공연하게 할 수 있게 하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개인 경험을 더 큰 사회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경험’에서 ‘마르크스’로 건너가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통역 천경록 / 녹취 소은화·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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