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서울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수도권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와 노동3권 보장, 이주노동자 퇴직금 국내 지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조승진

고용허가제 시행 12년을 맞아 8월 21일 보신각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수도권 이주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경기이주공대위, 이주노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36도가 넘는 기록적인 폭염에도 이주노동자와 연대 단체 회원들 약 1백5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폭로하고 폐지의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시간 부산과 대구에서도 각각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대책위’와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실현을 위한 연대회의’ 주최로 지역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수도권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 ⓒ조승진

고용허가제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이다. 1백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주노동자 중 약 27만 명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직장 이동을 금지하고, 체류 기간을 제한하고, 가족 동반조차 불허한다.

이를 통해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기계 부품 취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의 유연한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규제들은 이주노동자의 삶에 심각한 고통을 안기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마치 내국인의 일자리와 임금을 빼앗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이 악화된 것이 보여주듯이 점점 더 적은 몫을 노동자들더러 나눠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일자리와 임금을 빼앗는 진정한 적이다. 성과연봉제, 민영화, 조선업 구조조정 등을 밀어붙이며 이에 맞서는 노조를 파괴하는데 열을 올리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은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적이다.

ⓒ조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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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주노동자가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상당하다. 한국 정부는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체, 농축산업 등에 부족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오고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이른바 ‘뿌리산업(원자재를 소재나 부품으로 가공하는 기초공정산업)’을 이주노동자가 지탱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와 노동3권 보장, 이주노동자 퇴직금 국내 지급 등을 촉구하며 상징의식으로 물 풍선을 던지고 있다. ⓒ조승진

이런 노동자들을 천대하는 일에 고용허가제가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4년 10개월간 일한 후 ‘성실근로자 재입국 제도’로 다시 들어와 한국에서 일한 지 6년이 됐다. 앞으로 4년간 더 일할 수 있다. 그런데 고용허가제 비자(E-9비자)는 가족 동반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족을 만날 수 없어 외롭고 많이 보고 싶다. 고용허가제 비자는 여러 종류의 비자 중 가장 나쁜 비자다.”

또 다른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팔라시 씨는 연단에 올라 직장 이동 금지와 체류 기간 제한이 어떻게 이주노동자에게 압박이 되는지 말했다.

“우리는 공장을 옮기고 싶어도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옮길 수 없고,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싶어도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사장에게 달려있다.

“나는 지금 월급을 못 받아서 노동청에 가서 해결해달라고 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4년 10개월 밖에 없는데, 이런 문제 해결하려고 노동청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2~3개월 안에 해결하기 힘들고 매우 오래 걸린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사용자 편만 드는 정부의 태도를 규탄했다.

“심지어 사업주가 법을 위반해도 고용센터 공무원들은 오히려 사업주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한다. 이주노동자들을 피눈물 나게 하고 있다. 사업주들과 정부는 마음대로 해도 되고 이주노동자들한테는 꾹 참고 성실하게 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고 사업장을 이탈했다가 미등록 체류자로 내몰리기도 한다. 네팔 이주노동자 로산 라이 씨는 심지어 이런 문제들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고 발언했다.

그래서 필리핀 이주노동자 공동체 카사마코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지난 12년 동안 고용허가제는 갈수록 산업연수제를 닮아가고 사용자 친화적인 제도로 변하고 있다. 바로 현대판 노예제”라고 지적했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특히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 받고 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 구타와 욕설, 여성의 경우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경험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단 3개월만 체류가 허용되는 초단기 “계절노동자” 제도를 도입하려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계절노동자들은 짧은 체류 기간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고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

크메르노동권협회에서 온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 농축산업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근로기준법 63조 수정, 농촌지역에서 고용주들이 숙소사용료 명목으로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사전 공제하는 일을 막아 줄 것 등을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집회 후 참가자들은 서울고용노동청까지 행진을 벌였다. 서울고용노동청은 지난해 이주노조가 노조 설립필증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곳이다. 대법원은 무려 8년이나 끌다가 “정치 운동”을 문제 삼을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 둔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내렸고, 고용노동부는 바로 이를 빌미로 설립필증을 내주지 않으려 했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선전이 완전한 위선임을 다시 한번 보여 준 것이다.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서울 보신각을 출발해 서울고용노동청 앞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조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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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오직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돼 왔다. 고용허가제 12년은 이주노동자들이 폐지를 요구하며 끈질기게 싸워 온 12년이기도 하다. 고용허가제는 시행되기 전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중단과 고용허가제 반대를 내걸고 무려 3백8십일 동안 지속된 2003년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 투쟁에 직면했다. 이런 투쟁으로 고용허가제 폐지 요구에 대한 지지는 점차 확산돼 왔다. 지난 총선에서는 정의당이 고용허가제 폐지를 공약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 스스로의 행동을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우리 문제 해결하려면 우리 스스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여러 나라 노동자들이 한국에 있다. 우리 서로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단결해서 앞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민주노총 김욱동 부위원장도 참가해 연대를 약속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외주업체 하청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똑같은 노동을 해도 차별을 받고 있다.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는 고용허가제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고용허가제 반대 투쟁 그리고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을 민주노총은 해 나갈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짓밟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서울 보신각을 출발해 서울고용노동청 앞 도착한 이주노동자들이 정리 집회를 열고 고용노동부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조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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