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소리〉 고희철 기자의 기사에 대한 나의 비판에 박정환 님이 독자편지를 보냈습니다. 요지는 진보대통합 노선을 놓고 자민통 내부에 “분명한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민주노총 중심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진보대통합연대회의’)과 ‘민중연합당’에 친화적인 〈민중의 소리〉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민중의 소리〉는 중집 회의 전날인 9월 1일에 한상균 집행부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중집 결정도 전에 한 위원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한 것입니다. “섣부르게 판단”한 것에 따른 단순 오보가 아니라 〈민중의 소리〉의 정치적 본심에 가까운 기사였습니다.

이런 〈민중의 소리〉와는 달리, “민주노총 중심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부재’라는 리스크를 반길 이유가 없”다는 게 박정환 님의 주장입니다.

나는 박정환 님이 진보대통합연대회의의 입장을 어느 정도 책임 있게 대변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박정환 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만시지탄입니다. 중집이 만장일치로 위원장 사퇴 재고 요청을 결정한 날에서 사흘이 지난 9월 5일에 위원장 사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니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상균 위원장의 부재 리스크’를 걱정하는 “민주노총 중심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9월 2일 중집 전에 〈민중의 소리〉를 비판하고 한 위원장의 사의 표명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태가 확연해진 뒤에 진보대통합연대회의의 ‘내심’(內心)을 말하는 것은 사후적 뒷수습처럼 들립니다.

물론 지난해 말에 민중연합당 창당을 놓고 자민통 내부가 갈린 것은 압니다. 지금 이 순간 민중연합당이 민주노총 주도 정당 건설을 앞장서 강조하지 않는 것도 모르지 않습니다. 미뤄 짐작하건대, 민중연합당을 창당한 지 얼마 안 돼 자체 정비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지난 총선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 총선 때 울산에서 두 석을 얻은 진보대통합연대회의 측이 민주노총 주도 정당 건설의 선봉대(또는 1중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민중연합당이 민주노총 주도 정치세력화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입니다. 내 생각에, 이 순간 민중연합당은 진보대통합연대회의의 2중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김창한 민중연합당 상임대표는 “민주노총이 진보대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정치전략’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비판적입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정치전략을 정책대대에서 힘 있게 통과시키지 못한 점은 실망스럽고 혼란스러운 점도 있습니다.”(〈민플러스〉, 2016. 8. 29)

민중연합당과 진보대통합연대회의가 자민통 내에서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지만, 둘의 정당 건설 전망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견”이 원칙과 전략의 차이라기보다는 전술 차이 정도로 보이는 까닭입니다. 박정환 님이 애써 둘의 차이를 과장하는 것이, 진보·좌파 진영 내에 존재하는 민중연합당에 대한 불신감과 우려가 자신들의 진보대통합당 건설 착수에 지장을 줄까 봐 연막을 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보대통합 문제에서 민중연합당 참여 여부가 결정적인 정치적 암초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경향 모두 노동계급 단결의 기초를 정당으로 봅니다. 그래서 ‘정치전략’을 민주노총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 투쟁보다 진보대통합당(‘합법 정당’) 건설을 통한 선거 대응을 훨씬 크고 중요하게 여깁니다.

문제는 진보대통합당이 결코 광범한 진보·좌파의 결집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의당계, 노동당계, 급진좌파 계열 모두 민주노총 주도 정당 건설을 반대합니다. 자민통 활동가들의 헌신성을 부정해서가 아닙니다. 박정환 님이 자민통 활동가들의 헌신성을 읍소해 진보대통합당 안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것은 논점 이탈입니다.

진정한 쟁점은 서로 다른 원칙, 전략, 전망, 전술, 당면한 정치적·실천적 강조점, 조직 문화 등을 가진 조직들이 어떻게 단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자민통계는 “하나의 진보정당” 안에서 “공존과 다원주의”가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보·좌파 세력들은 정당만이 유일한 단결 방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노동자연대는 투쟁 속의 단결을 강조합니다. 특정한 단일 쟁점을 중심으로 행동을 건설하는 사안별 연대체(“공동전선”)가 더 중요한 단결 방식이라고 봅니다. 선거에서도 상시적인 정당이 아니라 기존 진보·좌파 정치 세력들의 선거연합정당을 통해 공동 대응을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단결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요컨대, 진보대통합당 안에 대한 “오해” —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잘못 앎’ — 가 아니라 정치적 차이가 쟁점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민통계, 특히 진보대통합연대회의 측은 이 정치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민주노총에 단일 정당을 건설하라고 압박합니다. 그 내부에 다양한 정견들이 존재하는 대중 조직인 민주노총더러 단일 정당을 건설하라고 압박하는 것 자체가 노동자 운동의 분열을 낳는 것입니다. 이런 ‘대동단결’론은 진정한 단결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자민통계가 자신들의 “노선만 옳다고 믿는 패권주의자”라고 비판받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 시도는 다행히 정책대대에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민통이 “허투루 준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민통의 진보대통합당 안이 종파주의적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 맥락입니다. 나는 종파주의를 비판했지 종파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이 없습니다. 박정환 님은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데, 이 둘을 개념적으로 엄밀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종파주의는 “자기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계급 운동과의 공통점이 아니라 운동과 자신을 구별짓는 특별한 표지에서 찾는”(마르크스) 태도입니다. 정의당을 진보 정당이나 노동자 정당으로 보지 않는 태도가 그렇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정의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공동으로 투쟁을 건설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박정환 님은 정의당이 “논의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자민통계 활동가들의 글에서 처음 발견하는 입장입니다. 이 대목에서 박정환 님이 자민통계를 어느 정도 책임 있게 대표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다시 할 수밖에 없군요.

반면, 종파는 정파나 파벌이라는 뜻입니다. 계급 의식의 불균등성으로 말미암아 노동자 운동 안에는 정치적으로 상이한 정파나 파벌들이 공존합니다. 정의당은 종파라고 부르기에는 큰 정당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박정환 님은 종파 자체를 “진보운동의 악성 종양”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자민통계의 당 개념과 연결돼 있습니다. 자신들이 주도한 단일 정당 밖에 있는 세력은 다 “종파”이자 “척결” 대상으로 보는 당 개념 말입니다.

그러나 종파가 반드시 종파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단결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들만이 단결을 원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세력들인 것처럼 하는 것은 강변(?辯)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피하고 싶은 걱정은 자민통계가 단결과 진보대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민주노총에 특정 정치 경향의 단일 정당을 만들라고 강요하면서 노동자 운동과 진보·좌파 정치 운동 전체가 분열과 원한의 진구렁에 빠져 투쟁을 전진시킬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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