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브라질 노동자당(PT) 소속 지우마 호세프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된 후, 브라질 정치는 요동치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181호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 대통령의 탄핵: 노동계급의 이익을 못 지켜 우파의 정치 공세도 못 막다’)

10월 2일과 30일 브라질 전국에서 치러진 1·2차 지방선거 결과를 봐도 이를 엿볼 수 있다. 2002년부터 탄핵 이전까지 14년 동안 집권 여당이었던 노동자당은 수십 년 새 최악의 패배를 겪었다. 노동자당은 2012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던 도시 중 60퍼센트에서 패배했고, 총 득표수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양대 제조업 도시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노동자당 소속인 현 시장들이 각각 공공부문 대폭 민영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기업가 출신 우파(상파울루)와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악명 높은 보수 가톨릭계 정치인(리우데자네이루)에 대패했다. 1980년대 초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대규모 파업 물결 속에서 탄생한 노동자당은 지금까지 두 도시에서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3~4위로 추락해 결선 투표에 가지도 못했다.

이밖에도 노동자당이 추락한 많은 곳에서 우파들이 당선했다. 호세프 탄핵과 반정부 운동을 주도한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노동자당 집권 전 여당이었고 집권기에 노골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부르주아 정당)은 기존 노동자당 우세 지역을 대거 탈환했다.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총 득표수가 가장 많은 정당이 됐다. 호세프 탄핵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미셰우 테메르의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중도우파 정당)은 주로 인구밀도가 낮은 교외 지역에서 득세해 가장 많은 시장직을 확보한 정당이 됐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당이 패배한 직접적 계기는 노동자당 주요 정치인들, 노동자당의 정치적·재정적·조직적 후원자이자 브라질 최대 노동조합 연맹 CUT의 지도적 인사들이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 부패 추문에 대거 연루된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169호 ‘브라질: 대규모 반부패·반정부 시위로 정치 위기가 심화하다’)

그러나 노동자당이 집권 내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 선거에서는 대규모 복지 확충과 친노동자 정책을 약속해 놓고, 당선 후에는 실질 임금을 동결하고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연금과 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등 반노동자 정책을 추진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당 당원들과 CUT 소속 노동자들이 실망했다.

2013년 국제적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브라질이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하면서, 거의 해마다 대규모 반긴축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브라질 사회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때조차 노동자당 소속 대통령 호세프는 우파 정당들과 밀실 합의해 대규모 긴축 정책을 추진했다. 심지어 바로 그 우파 정당들에 의해 탄핵된 직후에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도 노동자당은 1천4백여 곳에서 우파 정당들과 선거연합을 결성하고 공약을 중도우파 정당들의 입맛에 맞게 조정했다. 노동자들을 등지고서라도 당선하겠다는 이 같은 행태가 무색하게도, 그 도시들 상당수에서 노동자당은 낙선했다.

오히려, 노동자당 내 좌파적 정치인이 사회주의와해방당(P-SoL)을 비롯한 좌파들과 동맹을 맺고 출마했던 곳에서는 유의미한 득표를 거두거나 당선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와해방당(P-SoL)은 어떤 당인가?

사회주의와해방당(P-SoL)은 노동자당이 아닌 좌파적 대안을 표방하며 창당한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다. 이 당의 기원은 노동자당 내에 느슨한 좌파적 경향으로 존재하던 지식인들과 노동자들, 사회주의좌파운동(MES)·사회주의적민주주의(DS) 같은 제4인터내셔널과 연계가 있는 트로츠키주의 좌파 단체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트로츠키주의에 친화적이던 노동자당 의원 네 명이 당시 룰라 정부의 연금 개악에 항의해 국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 때문에 당에서 제명된 일이 있었다. 그들은 노동자당을 탈당해 새로운 선거 정당 P-SoL을 창당했다.

P-SoL은 룰라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 특히 ‘혁명적 개혁주의자’를 자임하는 독립사회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을 모두 모으겠다는 목표로 정치 강령을 제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반대를 선언하면서도 당명으로 제시한 ‘사회주의와 해방’을 어떻게 이룰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룰라의 첫 임기가 끝날 즈음 치러진 2006년 대선에 P-SoL은 좌파 정당들인 사회주의노동자단결당(PSTU), 브라질공산당(PCB) 등과 함께 선거 동맹을 맺고 후보를 냈다. P-SoL 후보로 출마한 간호사 출신의 전 상원의원 엘로이자 엘레나는 룰라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과 부패 추문에 실망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어 6백50만 표 넘게 득표했다(3위). 몇몇 주에서는 지지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워드 진, 켄 로치, 슬라보예 지젝 등 저명한 좌파 인사들이 엘레나 지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 룰라 2기 정부 동안 P-SoL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P-SoL은 룰라 정부 공격에 치중한 나머지, 우파들의 낙태권 공격에도 침묵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당 왼쪽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P-SoL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고, P-SoL의 좌파적 위상이 크게 약해졌다. 2010년 대선에서 P-SoL 후보는 겨우 80여만 표(0.9퍼센트)를 얻었다. 불과 4년 만에 5백만 표 이상을 잃은 것이다.

노동운동에서도 P-SoL은 노동자당에 대한 유의미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브라질 노동운동 지형은 총연맹만 12개나 되고 저마다 다른 정당과 연결돼 있는 등 역사적으로 분열이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P-SoL은 그 중에서도 최대 노동조합 연맹인 CUT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노력하기보다는 CUT에서 분열해 나온 ‘좌파적’ 군소 노동조합 연맹이나 무주택노동자운동(MTST) 같은 전투적 사회단체들과 연계 맺는 것을 더 중시했던 듯하다. 그래서 CUT 조합원들이 노동자당 정치인들과 CUT 지도부의 부패 추문에 크게 실망한 상황에서도 P-SoL은 노동운동에서 좌파적 결집점이 되지는 못했다.

좌파적 대안

그럼에도 2013년부터 분출한 대중적 반긴축 거리 항의 운동에 P-SoL이 적극 동참하면서, 노동자당이 아닌 좌파적 대안을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P-SoL 지지가 조금씩 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P-SoL은 리우데자네이루 시장 선거에서 18퍼센트를 득표해 대도시에서는 최초로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결선에서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40퍼센트를 득표해 의미심장한 좌파적 도전을 기록했다. P-SoL은 시의원 선거들에서도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긴축 반대 거리 시위가 강력했던 리우데자네이루와 포르투알레그레 등지에서 당선자를 늘렸다. 노동자당이 위기에 빠진 까닭에 이전 선거들에 견줘 “차악론”의 입지가 빈약해진 것도 이 결과에 한몫했다.

그러나 우파들의 공세에 맞선 유의미한 대안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노동자당의 위기에서 우파들이 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반긴축 시위 참가자의 대다수를 이룬 청년들의 연성 자율주의 정서를 우파들이 ‘반부패’라는 슬로건을 지렛대 삼아 우파 지지로 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브라질 우파들은 지방선거 승리를 발판 삼아 대규모 복지 삭감, 공공부문 민영화, 연방정부 지출 20년 동결 등 고강도 긴축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호세프 탄핵 이후에도 P-SoL뿐 아니라 노동자당 지지자들도 참여해 탄핵 반대, 조기 대선 요구, 긴축 반대를 주장하는 수천 명 규모의 거리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자신감이 높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P-SoL이 창당 초기 연금 개악에 맞서고 노동자 권리를 옹호하며 극적으로 부상했던 것이나 최근 지방선거에서 작지만은 않은 성과를 얻은 것을 보면, 브라질에서 노동자당이 아닌 좌파적 대안이 건설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