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미진

11월 5일,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은 한층 더 커졌다. 서울에서만 2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몇 만 명이 나왔다. 12일 퇴진국민행동 주최 집회에는 50만~1백만 명가량이 참가할 듯하다.

이 운동은 박근혜의 위기를 빠르게 심화시키고 있다. 박근혜는 열흘 만에 두 번이나 사과했지만, 지지율은 5퍼센트로 곤두박질쳤다. 역대 대통령 중 최저 수준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1990년대 이후의 대규모 항의 운동들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이번 운동은 단일 쟁점을 놓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권위 자체에 도전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1987년 격렬한 시위와 그에 이은 수많은 경제적 대파업으로 군부 독재 정권을 압박해,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적 기본권들을 쟁취한 이래 처음이다.

2008년 촛불 운동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핵심 요구로 하되 다른 몇 가지 요구가 결합됐다. 6월 10일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퇴진을 공식적 요구로 내놓자고 주장했지만, 촛불 운동 내 온건파들이 반대해 공식적 요구로 채택되지 못했다.

1996년 12월 26일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로 연말연시 정국을 뒤흔든 민주노총 총력 파업과 대중 항의도 공식적으로는 대통령(김영삼)의 퇴진이 아니라 사과를 요구했다.

둘째, 이번 운동은 노동단체와 좌파단체들로 이뤄진 민중총궐기본부가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과거 NGO들이 시작한 대규모 항의 운동과 다르다. NGO들은 자의식적으로 계급과 좌파 정치를 거부하고 그 대신 ‘국민’과 점진적 개혁주의를 지향한다.

셋째, 운동에서 조직 노동자들의 존재감이 실제로 있다. 2008년 촛불 운동 같은 이전 운동들에서는 노동조합과 좌파단체 성원들도 ‘개별 시민’으로서 참가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반면 이번에는 조직 노동자들이 시위대 전체의 환영을 받고 있다. “(조직)노동자들이 고립됐다”는 진보 진영 우파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는 점이 (철도 파업에 대한 청년·학생들의 지지 표명에 이어) 또다시 입증됐다.

넷째, 위의 특징들 덕분에 진보진영의 좌파는 운동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기에 과거의 어느 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물론 이 점은 잠재력 차원이고 유동적이다. 운동의 저변이 갑자기 넓어져 새로 참여하는 대중의 개혁주의적 의식을 반영하는 개혁주의 지도력 문제도 있지만, 좌파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중도계인 NGO 리더들을 추수하는 자민통계의 기회주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신설 연대체 ‘퇴진국민행동’ 안에는 박근혜를 어떻게 퇴진시킬지를 두고 논쟁이 있는데, 자민통계와 NGO 리더들 같은 진보적·자유주의적 민중(국민)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야당들인 민주당과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과의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조직 노동자 운동과 좌파의 존재를 하찮은 위상에 묶어 두고 싶어 한다.

박근혜가 실제로 퇴진하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열쇠는 노동자들의 참여에 달렸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운동에서는 노동자들의 존재감이 있을 뿐 아니라 시위대의 환영을 받는데도, 퇴진국민행동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이 운동에 많이 참가하라고 공식적으로 호소하지 않고 있거니와, 대다수 노조 지도자들에게도 파업은 언제나처럼 언감생심이다.

‘민주변혁단계’론자들은 현 시국을 국민(민중) 혁명 직전의 시기로 볼지 몰라도, 노동자 혁명의 전략을 추구하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과 전술들이 다르다. ‘민주변혁단계’론자들은 박근혜 퇴진 후 그들이 참여하는 민주국민내각 따위를 제안하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성격은 종속 경제와 반(半)식민지 국가가 아니라 선진 산업경제와 부르주아(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형태를 본질적인 특징으로 한다. ‘민주변혁단계’론은 실천에선 개혁주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좌파가 자본주의적인 정당들과 함께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운동에 큰 해를 입힐 일이다.(크리스 하먼과 팀 포터가 쓴 ‘노동자 정당이 집권하면 노동자 정부인가?’(《마르크스21》 10호)를 보시오.)

반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항의 시위 참가와,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파업(정치총파업만이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정치’의 의미를 오해한 데서 비롯한 경직된 전술이다)이 당면 과제들이라고 본다. 11월 9일 한국지엠(GM) 부평공장 노동자 5백 명이 공장에서 부평역까지 행진한 것은 좋은 본보기이다. 또, 울산플랜트건설 노동자 파업도 정말 훌륭하다.

또한 노동계급 운동의 좌파는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하도록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조합원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겨우 며칠 만에 조합원 8천 명가량이 서명했는데, 현 상황은 민주노총 좌파들과 투사들이 지도부를 압박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철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내놓고 파업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는 단순히 고립됐다 해서(지지율 5퍼센트) 순순히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재벌들과 고위 국가관료들이 이윤을 위해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려야 비로소 물러날 수 있다. 지금 이들은 정치적 부패만으로 박근혜를 제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박근혜가 노동개악과 시장경제 확대를 위해 애쓴 공로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좌파라면 지금 열리고 있는 격변기에 계급투쟁(정치적 및 경제적)을 건설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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