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물론이지만 주류 야당의 정치인들도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을 마음 속 깊이 경멸한다. 의미 있고 진정한 정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광역지방의원 등 공직자들이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마치 거리의 정치는 유치하고 하찮은 양, 심지어 말썽꾼들의 사기성 소동이나 되는 양하는 말투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면서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주류 야당은 자신의 배신에 대한 노동계급의 비판을 모면하고 지지자들의 좌경화를 막으려고 덕망과 존경 받기의 중요성을 주문처럼 되뇌어 왔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의당의 심상정·노회찬 의원조차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신들은 기층 투쟁보다는 점잖은 제도권 정치를 지향한다고 공언했다.

주류 야당 정치인들은 항의 집회와 시위가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는데도 박근혜가 물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 곤혹스럽다. 동시에, 그들은 박근혜의 즉각 퇴진도 두렵다. 완전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모순을 피할 수 있고 안심되는 묘수라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일각에서 제안되고 있는 것이 박근혜 퇴진 촉구 집회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자거나 주류 야당들에 탄핵을 촉구하자는 안(案)이다.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트로츠키가 “의회 크레틴병”이라고 부른, 일종의 운동발달장애인 의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맥락에서 대중 직접행동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첫째, 박근혜를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듯한 지경으로 몰아넣은 건 박근혜를 직접 공격한 대중 항의 운동이었다. 항의 집회와 시위는 그동안 큰 효과가 있었다. 첫 집회가 열리던 10월 말에 견줘 박근혜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하다가 이제 4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대 청년 속에선 0퍼센트다!

둘째, 아래로부터이긴 하지만 의회에 압력을 가하는 간접적 행동은 이보다 비효과적인 데다, 지금 이 순간 대중적 직접행동이 활성화돼 있는 점에 비춰 보면 불필요하다.

셋째, 탄핵 프로세스가 우여곡절로 점철돼 있음을 고려한다면(벌써부터 ‘야권 공조’가 삐걱거린다), 의회가 박근혜 퇴임의 행위 주체가 되는 것은 전망이 훨씬 불확실하므로 위험하다.

우리 정치사 속 항의 행동들

우리 나라 최근 정치사에서 항의 행동이 효과를 거둔 사례는 아주 많다. 1987년 6월항쟁은 전두환·노태우로부터 6·29라는 양보를 얻어 냈다. 6·29양보안은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출판의 제한적 자유 등 일단의 제한적 민주적 기본권들로 이뤄져 있었다.(‘제한적’이라 한 이유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제약이 매우 심했기 때문이다.)

1991년 5월의 ‘분신정국’은 노태우 치하의 최대 항의 시위였다. 그 시위로 당시 총리 노재봉을 앞세워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던 군부의 시도가 좌절됐다.

1995년 12월의 한총련 시위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광주 민주화 항쟁을 유혈 진압한 혐의로 구속시켰다.

1996년 말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에 항의해 이듬해 초까지 일어난 항의 운동은 민주노총 총파업과 결합돼 개악의 수위를 다소 낮추거나 개악의 발효를 늦추는 효과를 냈다. 그리고 그해 말 대선에서 일당 국가가 와해되는 데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200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일어난 촛불 시위는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앞세운 옛 여당의 정권 되찾기 시도를 좌절시켰다.

2004년 노무현 탄핵을 반대한 촛불 운동도 구여권의 탄핵 시도 좌절시키기를 넘어, 뒤이은 총선에서 구여권을 대패(大敗)케 하고 민주노동당이 대약진하는 것을 도왔다.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촉구 운동을 계기로 일어난 거대한 촛불 시위는 비록 패배했음에도 이명박의 파죽지세 공세를 한동안 주춤케 만들 수 있었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패하게 하는 데 크게 일조했고, 민주노동당이 소생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국제적이고 역사적인 수많은 사례는 일단 제쳐 놓고 논의를 이어 가자.

이 모든 경우에 민주당은 어부지리를 얻는 데에나 몰두했다. 그리고 어부지리로 심지어 그들이 집권할 수 있었던 동안에는 전에 군부-재벌 정당이 감히 못 했던 공격을 자기 지지자들에게 하는 따위의 일이나 했다. 물론 듣기 좋은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말이다. 김대중-노무현 하에서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난 것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민주당은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외교적·군사적으로 도왔고, 민주적 권리의 상징인 보안법 폐지는 전혀 한 걸음도 못 내뎠고, 심지어 과거사 청산도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다. 그들은 민중(노동자와 대다수 여성 등 천대받는 대중을 아우르는 말)과 함께 소리치는 걸로 시작하지만 거의 언제나 민중을 배신하는 걸로 끝났다. 말하자면, “1백만 원 삭감 안 돼!” 해 놓고 80만 원 삭감에 동의하는 식이었다.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이 성장한 1980년대 이래로,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부르주아 개혁주의 정당 민주당은 계급투쟁이 두려워 언제나 운동이 민중주의(반동적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이 계급을 초월해서 단결해 그 극소수를 권좌에서 축출하자는 사상) 기조를 유지하고 제도권과 의회 안으로 수렴되도록 애썼다. 2008년 촛불 운동이 1백만 명을 결집시킨 6월 10일 직후 그들을 대변한 이데올로그 최장집과 김우창은 의회로 공을 넘기라고 〈경향신문〉과 〈한겨레〉 신문을 통해 주장했다. 그 결과는 어물어물하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차 막지 못하고 운동이 패배하는 것이었다.

민중의 힘과 항의가 의회 책략보다 더 효과적인 이유는 첫째, 우리가 사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대기업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그 경영자들은 이윤 생산에 의존하는데, 이들은 정치인들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책략보다는 민중의 힘과 항의에 의해 훨씬 위협받는다. 특히, 정치인들은 길들일 수 있고, 감언이설로 설득할 수 있고, 뇌물 먹일 수 있고, 타협과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반면 민중의 힘과 항의는 정부 행정과 경제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민중 가운데 노동자가 하던 일을 멈추면 사용자들인 기업인들이 보는 손실은 크다. 일터를 점거라도 하면 더욱 말할 나위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 소유주들과 정부가 해당 노조 지도자를 압박하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두 달 전 현대차 파업은 정부로부터 심지어 긴급조정권 발동 위협을 받았다.

계급투쟁

민중 항의의 둘째 효과는 항의 집회 참가자의 의식에 좋은 효과를 미친다는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집회와 행진을 경험한 참가자는 자기 일상으로 돌아가 지인들(친구, 가족, 직장 동료, 학교 동료 등)에게 자기 경험을 얘기하고 관련 쟁점에 대한 토론을 촉발한다. 이게 여론 형성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민중 항의의 셋째 효과는 실로 가장 중요한 점으로, 민중의 힘 수위가 갑자기 높아지면 지배자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세계 유수의 자본가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 11월 29일치는 박근혜가 즉시 검찰 조사를 받으며 이실직고하든지 아니면 즉시 물러나든지 해야 한국 정치가 안정될 것이라고 조언했던 것이다.(글쎄, 검찰에 이실직고한다고 민중의 힘이 사그라들지 의심스럽다.)

또, 국제 자본가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12월 3일자도 박근혜가 우물쭈물하지 말고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민중 거리 항의가 특히 노동자 대파업 투쟁과 결합돼 지배자들의 제어를 벗어나게 되면, 혁명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특히 노동계급의 투쟁 수위와 의식이 민중주의를 넘어 일반적인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민중의 힘이 지속되면 참가자들, 특히 노동자와 학생의 의식이 변할 것이다. 평소에 책과 신문, 강좌 등이 변모시키는 것보다 몇 갑절 빠르게 사람을 변모시킬 수 있다. 투쟁을 통해 집단적인 힘과 자신감 고양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사람들한테서 통제력을 박탈해 민중이, 특히 노동계급이 자신감 결여와 무력감을 느끼던 것이야말로 계급의식의 최대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민중의 힘이야말로 박근혜 퇴진과 퇴진 ‘이후’를 이어 줄 고리인 것이고, 노동자의 힘은 특히 ‘잃어버린 고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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