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열망을 내팽개친 김대중

  황재민

 "개혁" 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정부는 정작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민주 개혁에 대해서 조금치의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0일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인권법)이 통과됐다. 김대중은 이 날을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의미 있는 날"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이 날 통과된 인권법은 "빈 껍데기 인권법, 종이호랑이 인권위원회"였다.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인권공대위)는 법안이 통과된 다음 곧바로 성명을 내고 "인권피해자 구제가 불가능한 기만적인 법"이라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통과된 인권법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오랜 투쟁과 열망의 결실"이라며 능청을 떨었다.

 그 동안 수많은 인권단체와 시민단체 들은 "올바른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온힘을 쏟아 왔다.

 1999년 4월 명동성당에서 인권 활동가 30명이 7일 동안 벌인 단식농성, 지난해 12월∼1월 폭설과 추위를 견디며 13일 동안 벌인 노숙 단식농성, 올해 2월 인권 활동가와 관련 학자 216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민간 심포지엄 개최, 무수히 많은 집회와 시위 등.

 인권공대위는 법안 공표일에 맞춰 항의 표시로 해산했다. "끝내 개혁에 등을 돌린 정부의 결정에 크게 실망했다."(인권공대위 곽노현 상임집행위원장)

 애초 인권법 제정의 진정한 취지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를 설치해 국가 기관이 저지르는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인권위의 조사권이 실제로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통과된 인권법의 인권위 조사권은 거의 휴지조각에 가깝다. 칼날이 없는 칼인 셈이다.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인권위는 피해자가 신고한 사실을 조사하고 싶어도 법원·헌법재판소나 수사기관이 재판이나 수사를 시작하고 재빨리 끝내 버리면 조사할 수가 없다.

 게다가 검찰 같은 수사 기관은 명확한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도 수사(인지수사)할 수 있고 수사 인력도 많은 데 반해, 인권위는 피해자의 진정(신고)이 접수돼야만 조사에 나설 수 있다.

 4월 10일 대우차 노동자 폭력 진압과 같은 국가 기구의 심각한 인권 침해 사건도 검찰이 먼저 수사해 버리면, 인권위는 손도 못 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검찰은 수사는커녕 폭행당한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하는 게 현실이다.

 또, 인권위는 조사 대상이 정해져도 서면 조사를 거쳐야 한다. 그리 되면, 인권을 침해한 권력 기관은 충분한 시간을 벌어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또, "범죄 수사나 재판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인권위의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할 수 있다.

 그밖에 인권공대위가 제안한 '출석 요구 불응 때 동행명령권 인정 및 형사 처벌', '국가인권위원의 면책 특권' 등도 통과된 인권법에서는 빠졌다.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4월 국회에서 개정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와 민주당은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계속 탄압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한겨레〉 생활 광고란에는 국가보안법 관련 구속 항의 광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5월 들어 한총련 대의원들을 계속 구속하고 있다.

 지난 5월 17일에는 26일째 반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던 이경민 서부총련 의장(경기대 총학생회장)을 폭력 연행했다.

 1999년 중앙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강곤 씨도 얼마 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5월 14일에는 소위 '단국대 활동가 조직 사건'으로 7명을 구속했다. 이 사건은 민주노총의 6월 총력 투쟁의 예봉을 꺾기 위한 고전적 탄압 수법이다.

 민주당은 게걸음질에 지나지 않을 개정안조차 그 처리 시기를 놓고 수차례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5월 11일 원내 총무 이상수가 "6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변인 전용학은 "국민적 합의 없이 결코 서둘러 처리하지 않는다는 게 당론"이라고 반박했다.

 당론과 일시적으로 엇박자를 놓은 이상수는 이내 침묵했다.

 2000년 2월 〈한겨레〉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1퍼센트"가 국가보안법 개·폐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면 민주당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민주당이 말하는 "국민"에는 자민련·한나라당 같은 지배 계급의 "국민"만 있을 뿐, 대다수 평범한 "국민"은 없다.

 

 부패'방조'법·돈세탁'방치'법

 

 부패방지법·돈세탁방지법도 4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김대중은 약속을 어겼다.

 4월 23일 낮 12시 국회 귀빈식당에 모인 여야 3당은 돈세탁방지법의 핵심 내용인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계좌추적권을 삭제하기로 의견을 모은 데 이어, 오후 6시에는 역시 부패방지법의 핵심 내용인 공익 제보자 보복행위 조사권, 공직자윤리규정 등을 모조리 없애기로 합의했다.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여야 의원들은 다음 날 재협상하겠다며 꼬리를 내렸지만, 걸레 만들기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4월 26일 오전 9시에 모여 돈세탁방지법의 신용정보 요구권조차 없애 버렸다. 그 결과, "금융정보분석원이 혐의 거래를 추적하기 위해서 요구할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결국 4월 30일 '여야 물밑 합의'로 두 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특히 여야 의원들은 "여태까지 그런 것(돈세탁방지법) 없었어도 다 잘하고 살았잖아?" 하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금융정보분석원의 정치자금 계좌 추적으로 불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이미 입법 과정에서 각 법안의 내용을 타협하고 입법 취지의 본질을 훼손한 법안은 통과가 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민주당은 6월 국회에서 시민단체들의 견해를 반영하겠다고 또다시 거짓말하고 있다.

 김대중은 1996년부터 스무 번이 넘게 "부패 척결"을 약속했다. 그는 1996년 11월 참여연대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청원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가 하면, 지난 1999년 2월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무인도에 딱 세 가지만 가지고 간다면?"이라는 방청석의 질문에 역겹게도 "실업 문제와 부정부패, 그리고 지역감정"이라고 답변했다.

 4월 국회는 개혁과 민생이 절대 기성 정치인들의 손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서로 차이라도 있는 양 싸우던 민주당과 한나라당 총무들은 국회의장과 사이좋게 5월 14일부터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 비용은 국가 예산에서 빠져나간다. 외유 때문에 6월 임시 국회 일정도 늦춰졌다. "개혁 입법, 민생 현안"보다 해외 여행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까?

 개혁입법 좌절에 따른 국민 대중의 환멸과 불신이 커다랗게 자라나고 그 여파로 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직후 있은 공동여당 지도부의 골프 회동은 정말이지 환멸스럽고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그들은 1천만 원짜리 내기 골프를 치고 고급 양주 조니워커 블루를 마시며 흥청망청 술 파티를 벌였다.

 공동 여당의 골프 회동이 언론에 공개된 다음 날에도 한나라당 총무단 소속 의원 10명이 서울의 한 골프장에서 총무단 해단식을 가졌다.

 '개혁적'이라던 '386'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기대했던 것들을 조금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들은 술집에서 "왜 우리가 국회에 있어야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며 자조할 뿐이었다.

 

노동자 투쟁

 

 '걸레'가 되거나 좌절된 개혁 입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대중은 진정한 개혁과 점점 거리를 멀리하면서 우경화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한편에서는 우익의 준동을 낳는다. 자유기업원 원장 민병균은 공공연히 "우파 궐기"를 선동했고, 이를 신호탄으로 재계는 김대중에게 재벌 규제 완화 압력을 넣었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은 6월 12일 파업을 비롯한 6월 총력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진정한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은 민주노총 6월 총력투쟁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