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운동이 박근혜 퇴진 운동의 도약대 구실을 했다.

1.

2016년의 근로손실일수는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조합원 수가 많은 노동조합들이 여러 차례 파업을 벌인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개악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자들의 갈등이 2015년에 이어 계속된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렇게 인정했다. “노정 대립은 [근로손실일수 같은]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2016년의 지배적인 노사관계 양태였다.”

2016년 노동자 투쟁이 2015년 ‘노동개혁’ 저지 투쟁의 연장이었다는 것은 총선 결과와 그것이 하반기 투쟁에 미친 영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표출된 것은, 2015년 조직 노동자들의 노동개악 저지 투쟁이 정당했음을 사실상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총선 결과는 노동자 투쟁을 고무했다. 한편 총선 결과는 경제 위기와 함께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켰는데, 이는 노동자 투쟁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7월 이후 근로손실일수는 급상승했다.

여러 부문 노동자들이 위기의 대가를 떠넘기려는 기업주들과 박근혜 정부에 맞서 상당히 저항했다. 조선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이 있었고,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도 벌어졌다. 특히 철도 노동자들이 장기 파업을 했다. 임금과 단협, 노동조합 공격에 맞선 민간부문 노동자들의 투쟁도 벌어졌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 파업에 나섰다. 기아차나 GM대우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투쟁에 나섰다. 이런 투쟁들은 여러 전선에서 벌어진 노동개악 저지 투쟁이기도 했다.

이처럼 2015~16년 노동자들은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주요 세력이었다. 다른 어떤 사회집단도 이와 같은 지속적 저항을 보여 주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밑거름을 쌓은 것도 노동자 운동이었다. 총선 이후 격화된 지배자들의 갈등이 10월 하순 ‘최순실 게이트’로 폭발했을 때, 이미 몸을 움직이고 있던 노동자 운동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초기 ‘자본’을 대고 투쟁을 키우는 도약대 구실을 했다.

그러나 2016년의 상황 전개는 노동운동의 약점도 잘 보여 줬다. 우선, 총선 이후의 정치 상황을 이용해 노동자 투쟁을 더욱 전진시켜야 했는데,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면이 있다. 노동운동 단체 상당수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리라고 잘못 전망한 것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은 잘못된 전망 때문에 하반기 투쟁을 좀 더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배치하거나 이끌지 못했다. 정치(투쟁)와 경제(투쟁)의 상호 작용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런 약점을 낳았다. 부분적으로는 진보·좌파 진영에 만연한 조직 노동자 운동에 대한 불신 또는 확신 결여도 영향을 미쳤다. 조직 노동자 운동이 고립돼 있다는 생각 때문에 ‘노동개혁’ 저지 투쟁이 대중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고 그것이 총선 지형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을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비슷한 문제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서도 나타났다. 퇴진 운동 속에서 노동자 운동이 자신의 고유 요구와 투쟁 방법으로 전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노동자 투쟁의 초기 능동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희미해졌다. 진보·좌파 진영에는 노동자 운동이 퇴진 운동 안에서 ‘민중’의 일부로 용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상당히 퍼져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이 퇴진 운동의 일부로 참여하면서도 자신의 고유 요구를 가지고 투쟁했다면, 큰 지지를 받으며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지는 동시에 퇴진 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고조되는 순간에도 단호한 총파업에 나서지 않았다. 정치 운동과 산업 행동을 분리하면서 정치 운동을 위해 노동자들 고유의 힘을 동원하는 일에 소심했던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은 하반기에 벌어진 다른 투쟁들에서도 거듭 나타났다. 앞에서 사례를 들었듯이 하반기에 여러 부문의 노동자들이 이러저러한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전투적 전술을 회피하면서 파업이 장기화하고 수세에 몰리거나, 성과 없이 종료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장기간의 철도 파업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현장 조합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단된 것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위협으로 현대차 파업이 용두사미로 끝난 것도 또 다른 사례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불만이 꽤 있었지만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불만은 주로 혼란과 냉소로 나타났다. 노동조합 내 좌파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집행부 배출하기라는 오래된 활동 방식 때문에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의지도 능력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그 첫 출발로 노동운동이 직면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할 사회주의자들의 응집력 있는 조직이 현장에 필요하다.

2016년 노사관계의 지배적인 양태는 정부와 노동자들의 갈등이었다.

2.

2017년 노동자 투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너무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서 전망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급변을 낳을 수 있는 요인들이 곳곳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 가지 주요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 위기다. 둘째,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과 조기 대선, 그리고 새 정부의 등장 같은 정치 상황이다. 셋째, 노동자 운동이 지난 3년 동안 자신감을 조금 회복한 상태에서 앞의 두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가 어떻게 맞물리느냐에 따라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고 역동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경제 위기는 분노를 낳지만 자동으로 계급투쟁을 촉발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경제 위기 와중에 투쟁에 불을 붙이는 것은 흔히 정치적 요인들이다. 이것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분출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과 탄핵, 조기 대선이 노동자 투쟁을 자극할 수 있음을 뜻한다. 지배계급의 내분 심화는 생활조건 악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줄 수 있다. 두어 달 동안 주말마다 거리에서 맛본 해방감은 작업장 투쟁을 자극할 수도 있다. 만약 정권이 교체되면 노동자들이 억눌렸던 요구들을 위해 투쟁하도록 만드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경제 위기와 투쟁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노동계급의 상태이다. 노동계급이 어떤 상태에서 경제 위기를 맞이하느냐에 따라 투쟁 수위가 상당히 달라진다. 진보·좌파들은 대부분 한국 노동자 계급이 약화했거나 해체됐다고 여긴다. 1987년과 1997년 투쟁은 그 직전 강력하게 성장한 중공업 노동자들이 이끌었지만 지금은 그들이 축소되거나 귀족화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새로 등장한 노동자들, 서비스 부문이나 비정규직은 너무 취약해 싸우기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집단은 이질적이어서 단결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물론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에 따라 노동자들은 재편되기 마련이지만, 한국 노동자 계급이 약화했거나 해체됐다는 것은 참말이 아니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경제적 힘에서든 조직력에서든 여전히 강력하고, 서비스 부문(특히 공공 서비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스스로 조건을 개선하며 조직화해 왔다.

조직 노동자들은 2007년 이후 상당히 사기가 꺾여 있었지만, 2013년부터 조금씩 투쟁에 나서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는 추세다. 물론 아직 그 회복이 충분한 것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올해 노동자 투쟁이 2015~16년의 연장선 상에서 벌어지면서 좀 더 전진할 가능성이 있다. 고용 조정이나 임금 삭감 등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공격에 맞선 저항, 노동개악이나 법외노조화처럼 박근혜 정부 하에서 누적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 그리고 정치 상황으로 자극받은 새로운 부문의 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퇴적물이 계급투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정치 상황의 요동 속에서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 활성화를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려면 그 앞에 놓인 장애 요인을 잘 헤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장애 요인 하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이 투쟁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고, 누적된 문제들을 새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개혁주의자들은 조직 노동자들이 새 정부를 투쟁으로 압박하면 ‘새 정부도 성공하지 못하고 노동운동도 재생의 기회를 날려 버릴 것’이라고 협박조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 태도가 ‘조직 노동자 이기주의’와 ‘경제주의’의 발로라면서 말이다. 노동조합이 “경제 불황기 사회 전체의 경제 성장을 위해 스스로의 이익 실현을 절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되더라도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 위한 공격은 계속될 것이다. 변화라고는 기껏해야 노동자들에게 강요된 앙보를 합의 모양새로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이기 쉽다.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전망을 내다보면서, 정권이 교체되기 전이든 후이든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로 그런 투쟁이 건설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지금 누적된 문제들이 산별노조 이상의 상층 차원에서 정치 협상으로 다룰 쟁점들이라면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부차화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과 일자리 공격 문제든, 임금 격차 문제든 이를 해결할 진정한 힘은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에 있다.

물론 이것은 단지 ‘투쟁’을 외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의 대안 논의에 개입해야 한다. 이미 조업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재벌 개혁과 원하청 공정 거래를 통한 노동자 격차 해소, 노사정위의 새 틀 마련을 통한 사회적 대화 추진 등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을 잘 하고 이를 경제 투쟁, 정치 투쟁과 연결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경제 위기 시기에 심화될 수 있는 노동자들 사이의 반목을 극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기업주와 정부는 노동자 투쟁이 계급 대(對) 계급의 양극화를 낳지 못하도록 노동자 계급 내부의 반목을 부추기려 애쓸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이간질 등을 통해서 말이다.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체제의 희생자를 비난하지 말고 체제를 비난하라’고 노동자들을 설득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위한 노력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연대 건설에 애써야 하며, 정규직 양보론이 아닌 진정한 계급 단결을 위한 정치를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투쟁 속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 위기 속에 구조조정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 전술을 제안하는 한편, 더 근본적인 대안도 주장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개혁주의적 대안들은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이런 일을 잘 하려면 노동조합 내 좌파 활동가들은 사회주의 정치를 바탕으로 활동하고 조직해야 한다.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만으로 지금 같은 경제·정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적 오산이다. 단지 어느어느 노조의 전투적 조합원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출발점으로 삼아 현 상황에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터 안팎에서 연대를 건설하면서 진정한 계급적 단결을 위해 애쓰고, 일터 바깥에서 벌어지는 정치 투쟁에도 관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