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장 뒤편으로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 왔다. 작은 블록을 제조하는 소조립공장에서 크레인으로 철판을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멀리서 봐도 희뿌연 먼지가 가득했다. 용접할 때 뿜어져 나오는 가스 때문이다. 공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매캐한 냄새도 지독했다. 

“저 크레인을 운전하는 사람들도 지난해 다 분사화됐어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안전교육도 안 하고 투입시켜 여럿이 죽어나갔다니까요!” 옆에 있던 노동자가 “분사화는 미친 짓”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대의원은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고 전했다. LNG선에 들어갈 수백 톤의 가스 저장고가 크레인에서 떨어졌는데, 만약 그 아래 사람들이 있었다면 “1백 명이면 1백 명 모두 죽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분사화였다. 지난해 사측이 크레인 운전수·신호수·시설정비 등을 분사화(하청화)했다. 안전보다 비용 절감을 우선하다 보니 최소한의 안전교육조차 없이 채용 당일 무리하게 노동자들을 업무에 투입해 사고를 부른 것이다. 

반토막 임금

노동자들은 사측이 최근 올해 임금 20퍼센트 반납을 요구하고 ‘구조조정 저지 파업은 불법’이라고 몰아가는 데 불만이 많았다. 반갑게도 몇몇 노동자들은 〈노동자 연대〉가 발행한 리플릿과 신문을 봤다며 ‘사측의 논리 반박이 도움이 됐다’고 악수를 건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노동자들은 개의치 않고 집회 대열을 정비했다. 현대중공업지부 백형록 지부장은 “내일 우리는 1996년 이후 22년 만에 전면 파업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굴종을 강요하는 회사에 맞서 자신감 있게, 완강하게 파업에 나섭시다!”

노조 지도부는 파업 대열을 최대한 늘려 파업 효과를 높이자고 호소했다. 노동자들은 공장 곳곳을 돌며 동료들에게 함께하자고 외치며 순회 투쟁을 벌였다. 사측은 “불법 파업” 비난을 쏟아냈지만 노동자들은 굳건해 보였다.

집회가 끝나고 조선사업부의 노동자 일부와 함께한 뒤풀이에서, 한 대의원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회사가 파업에 참가하면 조장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조합원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자르려면 잘라라, 조장 수당 8만 원에 우리 코를 꿸 수 있을 줄 알았냐?” 즉시 여럿이 호응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라고 해라!”

“기자 양반, 내가 17년 차인데 차 떼고 포 떼고 나니 임금이 (상여금 빼면) 1백28만 원이에요. 이게 말이 됩니까? 나도 받은 만큼만 일해야지, 안 되겠어.”

“작년에 고정연장수당이 없어져서 임금 50~60만 원이 깎였어요. 휴일근무도 없어져 또 많게는 80만 원이 깎였어요. 임금이 반토막 난 거라!”

한 노동자는 보수 언론의 비난이 억울하다면서 “우리가 귀족노조예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20~30대 후배들이 형님에게 한 마디 했다. “형님, 귀족하고 노조는 애초에 어울리지가 않는 단어예요. 귀족은 정몽준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지!”

나이가 지긋한 한 노동자는 구조조정이 업무 능률을 떨어뜨린다고 꼬집었다. “평생 바쳐 일했는데, 이런 취급을 받으니 일할 맛이 안 나요. 열심히 일해봐야 임금 깎이고 비정규직 되고 희망퇴직 당하는데, 누가 일하고 싶겠어요? 그러니 작업이 부실해지고 다시 수정 작업, A/S 요구로 돌아오는 거죠.” 

“박근혜 정부가 자빠지는 것을 보니 힘이 막 나더라” 

자신감

이튿날 다시 공장에 들어가려고 정문 앞에 섰을 때, 노조와 진보정당들, 시민단체들이 걸어 놓은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 켠에 익숙치 않은 명의가 보였다. 

동구 의원 홍유준. 그는 새누리당 소속이다. 새마을협의회, 부녀회도 보였다. 이들은 “분사 사업장 탈울산 반대”를 내걸었다. 현대중공업이 분할 후 사업의 일부를 타 지역으로 옮기면 지역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얼마 전 울산 시의회가 현대중공업 분할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고, 전북도지사와 군산시장이 군산 공장 폐쇄에 반대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시장과 사업의 축소, 인력 감축을 동반하고 막대한 세금이 투여되는 문제여서, 노동자들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주들, 지방정부들 사이에 상당한 갈등과 긴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다.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탈법적 경영승계로 비난을 산 삼성의 이재용이 구속된 것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겐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박근혜가 우리 노동자들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는데, 그 정부가 자빠지는 것을 보니까 힘이 막 나더라고요.”

“이재용이 구속됐는데, 박정희 기념관 만든다고 똑같이 뇌물 갖다 바친 정몽준은 왜 안 잡아가나요? 노동자 대량 해고하고 산재로 사망하게 만든 건 범죄잖아요.”

오전 10시경, 전체 파업 대열이 다시 집회 장소로 모였다. 집회 연단에 선 한 지단장(대의원 대표)은 “현대중공업 분할은 정몽준 아들 정기선에게 부를 승계하려고 노동자 죽이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정권과 자본은 구조조정을 해서 회사를 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회사와 노동자는 공동 운명체가 아닙니다! 현대중공업은 재벌 순위 9위, 사내유보금 19조 3천억 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사측은 분할 이후에도 고용·노동조건은 보장할 거라고 말했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지금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이고 안전한 사람이 없어요. 제가 일하는 전기전자 사업부는 이미 외주화가 70퍼센트 정도 됐어요. 기업이 분리되면 외주화가 더 심해질 거예요.”

“지금도 임금 반납하라고 하는데, 분사 후에는 노조 조직력이 약화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공격이 더 심해지지 않겠어요? 저성과자니 뭐니 하면서 퇴출(해고)도 하려 하겠죠.”

이날은 1천5백여 파업 대오가 모두 함께 공장 전역을 돌며 행진했다. 수백 대의 오토바이 부대가 경적을 울리며 활력을 줬다. 일부 여성 조합원들이 파업에 동참한 것도 무척 반가웠다. 이들은 최근 대의원 선거에서 친사측 후보들을 모두 떨어뜨리고 당당히 민주파를 선출했다.

올해가 정년인 한 노동자가 함께 행진하면서 말을 건넸다. “내가 올해 정년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여기 나오겠어요. 근데 저 20대, 30대 후배들을 봐봐요. 정병모 집행부(민주파 집행부)가 들어선 뒤로 저 젊은 친구들이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게 참 많아요. 후배들이 참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 현대중공업 노조는 23일부터 파업에 돌입해, 기업 분할을 의결하는 주주총회가 예정된 27일까지 일손을 놓기로 했다.

■ 현대중공업 파업에 지지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2월 27일 주주총회에 상정된 구조조정 계획을 막으려고 파업에 나섰다. 사측이 내놓은 계획은 현대중공업을 사업부문별로 갈갈이 쪼개겠다는 전면적 구조개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분할은 지난 몇 년간 추진된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사측은 사업부문별로 수익성·실적을 끌어올리려고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짜려 한다. 노동자들이 고용·임금·노동조건 후퇴를 걱정하는 까닭이다.

현대중공업 사측이 전격적인 기업 분할 방식을 택한 데는 탈법적 경영 승계의 목적도 크다. 삼성이 그랬듯이, 정몽준은 기업 분할과 지주회사 전환으로 손쉽게 지배력을 확대해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기업들에 구조조정을 재촉하고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구조조정은 비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할 이유다.